러시아산 원유·가스 의존도 낮추기 나선 EU의 속내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8 10:0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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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자금 우회 지원 비판에 ‘수입 금지’ 강수
경제 충격 극복하고 성공할지 여부에 전 세계 이목 집중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일 넘게 진행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 및 주요 원자재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EU(유럽연합)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러시아에 대해 다양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러시아로부터 전체 석유의 27%, 가스의 40%를 공급받고, 연간 4000억 유로(약 531조원)를 지불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이런 높은 에너지 의존도는 과거부터 우려의 대상이 돼왔다. 전쟁 발발 후에는 EU가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EU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공급원 확보도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미칠 충격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EU는 더 이상 이런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5월초부터 우선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입 금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원유의 경우 가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체 공급원을 확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헝가리를 비롯한 일부 회원국의 반대가 있었지만 EU는 2022년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부분 금지하기로 5월30일 최종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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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세계가스총회 개막 이튿날인 5월25일 현대자동차그룹과 영국 BP, 독일 유니퍼,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공사의 주요 간부들이 대구 엑스코(EXCO) 컨벤션홀에서 탄소중립 관련 기조발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독일은 카타르와 10년간 가스 도입 계약

당초 전면 수입 금지를 추진했으나 헝가리의 반대를 수용해 유조선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먼저 금지하는 것으로 범위를 조정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EU에 수출하는 원유의 3분의 2가 수입 금지 대상이 됐다. 폴란드와 독일의 경우 EU의 조치 외에도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는 원유 수입도 중단하겠다고 별도로 발표함으로써 러시아산 원유의 EU 수출 90%가 중단될 예정이다.

원유와 더불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논의도 본격화됐다. 우선적으로 추진되는 방안은 러시아 이외 지역으로부터 천연가스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다. 유럽 내 생산국인 노르웨이의 생산량을 확대하고,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돼 있는 북아프리카 알제리로부터 수입하는 양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LNG 도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공급 방식이 LNG에 비해 월등하게 저렴하기 때문에 유럽은 LNG 도입을 위한 설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러시아로부터 거리가 먼 국가들의 경우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LNG 도입이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독일 및 동유럽 국가 대부분은 이러한 설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LNG 수입 확대를 위해 EU는 LNG 수입 설비가 있는 국가가 LNG를 수입하고, 이를 파이프라인으로 다른 국가로 보내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대규모 LNG 수입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스페인이지만 유럽 다른 지역으로 보낼 파이프라인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영국을 통해 LNG를 수입하고, 이를 유럽으로 보내는 방법을 추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에 LNG 물량이 영국에 집중되면서 한때 영국의 가스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체 천연가스의 55%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독일의 경우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40%로 낮췄지만 이것으로 부족하다는 비판에 따라 LNG 도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 카타르와 10년간 도입계약을 체결했으며, LNG 도입 시설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3기의 부유식 저장 및 가스화시설(FSRU)을 임차하는 30억 유로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 카타르로서는 독일과 같은 대규모 수입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20년 이상의 장기계약 체결을 희망했지만 독일은 재생에너지 100% 전환 시기까지만 천연가스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10년 계약을 체결했고, 육상 수입터미널 건설 대신 FSRU를 임차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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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야말-유럽 가스관 모습ⓒAP 연합

천연가스는 탈탄소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

5월18일 EU집행위원회는 러시아 에너지 의존 중단 및 친환경 전환 가속화를 위해 2027년까지 2100억 유로를 투입하는 REPowerEU 계획을 발표했다. REPowerEU는 2021년 러시아로부터 수입되는 1550억 입방미터(bcm) 규모의 천연가스 도입량을 3분의 1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LNG 수입 확대와 다른 지역으로부터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입 확대로 600억 입방미터를 대체하도록 했으며, 바이오메탄과 같은 대체연료의 보급 확대, 난방온도 하향과 히트펌프 보급 확대를 통한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 절감, 옥상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 감축 등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 절감의 경우 당초 2030년까지 9%로 설정돼 있던 에너지 소비 감축 목표를 13%로 확대했으며, 심각한 공급 교란이 발생할 경우 우선공급 대상 선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도록 했다. 이와 더불어 EU 차원의 에너지 플랫폼을 구축하고, 공동 구매협상 및 계약을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2025년까지 역내 태양광 발전 용량을 2배로 확대하는 것과 함께 2030년까지 EU 역내에서 1000만 톤 규모의 수소 생산역량을 갖추고 1000만 톤 수입원을 확보함으로써 고온생산 등 전력으로 대체하기 곤란한 산업 부문에서의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도록 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경우 2025년까지 태양광 발전설비를 2배로 확대하고, 신축 공공·상업 건축물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EU는 그동안 20년 넘게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을 선도해 왔으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가장 앞장서왔다. 2050년까지 순탄소발생량을 0으로 하는 ‘넷제로’를 추진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과 더불어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급속도로 낮췄지만, 천연가스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석탄에 비해 대기오염물질 발생량이 매우 낮고 온실가스 발생 역시 절반 수준인 천연가스 사용 확대는 완전한 탈탄소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30년간의 징검다리 역할로 간주됐다. 특히 러시아로부터 공급되는 천연가스는 저렴했으며, 과거 냉전 시기부터 이어져온 공급 안정성 역시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황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전제가 붕괴한 상황에서 다른 화석에너지 사용 확대를 통한 기후변화 전략의 일시적 후퇴보다는 오히려 기존 계획을 더 가속화함으로써 빠르게 탈탄소 사회로 이행한다는 EU의 전략이 과연 예상되는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고 성공할 것인지에 대해 앞으로 면밀한 관찰과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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