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국제영화제 리포트] 박찬욱이 이끌고 송강호가 마무리했다
  • 프랑스 칸=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4 14:0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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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무비 위상 실감했던 제75회 칸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
경쟁부문 내실 부족했지만 축제의 기쁨 상기시킨 무대 역할에 충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5월17~28일)가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개최 무산, 2021년 약식 개최를 거쳐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린 축제였다. 황금종려상 주인공이 된 스웨덴 영화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를 비롯, 올해 역시 다양한 영화와 이슈들이 12일간의 영화제 풍경을 빼곡하게 채웠다.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긴 《헤어질 결심》, 송강호를 남우주연상 주인공으로 만든 《브로커》 등을 통해 확실하게 달라진 한국 영화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프랑스 칸 현지에서 포착한 올해의 화제작들과 주요 이슈들을 모아봤다.

ⓒChristophe Bouillon / FDC 제공
ⓒChristophe Bouillon / FDC 제공

영화라는 세계를 다시 마주하다

칸 현지의 풍경은 팬데믹 이전으로 시계를 돌린 듯한 분위기였다. 프랑스에서 실내외 모두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덕분이다. 극장 내 마스크 착용 역시 권고 사항일 뿐 의무는 아니었다. 전 세계 취재진 및 마켓 관계자들에게 배부되는 게스트 패키지에는 칸영화제의 로고가 새겨진 마스크가 포함됐고, 기념품 판매 부스에서도 같은 제품을 판매했다. 2022년은 영화제 굿즈로 마스크를 제작해야만 하는 마지막 해일지도 모른다.

축제 기간 내내 칸영화제의 메인 공간인 팔레 드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에는 영화 《트루먼쇼》(1988)의 한 장면으로 만든 올해의 공식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모든 인생이 TV로 생중계되는 하나의 쇼였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매해 공식 포스터가 영화제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임을 생각할 때 올해 칸의 선택은 유독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관이라는 공간, 영화를 함께 보는 공통의 경험이 가로막혔던 지난 2년이 차라리 하나의 쇼처럼 비현실적이었다는 해석을 하게 한다. 영화에서 트루먼(짐 캐리)은 세상의 끝이라 믿었던 곳의 계단을 오르며 진실 대면하기를 택한다. 레드 카펫이 깔린 뤼미에르 대극장의 계단을 오르는 모든 이가 이제 다시 영화라는 세계를 마주할 때라는 것. 75회를 맞은 칸영화제가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보내는 회복의 메시지다.

올해의 개막작이었던 《파이널 컷》 역시 같은 맥락의 선택으로 보인다. 《아티스트》(2011)를 연출한 미셸 하자나비시우스의 신작으로 일본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의 리메이크다. ‘생방송 원테이크 좀비영화 만들기’라는 황당한 미션을 통해 영화 만들기의 즐거운 고단함을, 영화를 향한 사랑을 긍정하는 작품이다. ‘일본 걸작 좀비영화의 생명력 없는 프랑스 리메이크’(인디와이어) 등의 혹평도 나왔을 만큼 내적으로 견고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영화라는 매체와 극장에 대한 사랑을 되찾자는 올해 칸의 메시지에는 알맞춤인 개막작인 셈이다.

축제의 한가운데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대한 이슈였다. 5월17일 개막식 현장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으로 깜짝 등장했다. 그는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를 언급하며 “독재자와 전쟁이 있는 한 영화는 침묵해선 안 된다. 우리에겐 그것을 증명할 새로운 채플린이 필요하다”며 전 세계에서 모인 영화인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올해 칸영화제 측은 러시아 공식 대표단을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 우크라이나 지지 의사를 명확하게 표명한 바 있다. 경쟁부문 상영작 중 하나로 러시아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가 포함됐지만, 감독은 러시아 정부의 탄압을 받던 반체제 인사였다. 현재는 러시아를 탈출해 독일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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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홀리 스파이더》의 한 장면ⓒ칸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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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이 프롬 헤븐》의 한 장면ⓒ칸국제영화제 제공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영상으로 깜짝 등장

올해 경쟁부문은 유럽 내 사회문제를 넘어 하나의 견고한 주제가 된 이민자 문제를 다뤘거나(토리와 로키타, R.M.N), 인생에 대한 회고와 노스탤지어를 중심에 둔 작품들(아마겟돈 타임, 노스탤지어, 디 에잇 마운틴스), 두 번째 장편영화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신예 감독들의 선전(클로즈, 마더 앤 선), 거장 감독들의 신작(헤어질 결심, 브로커,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등 소재 및 장르적 태도, 감독의 경력과 국가 등 다양한 면에서 균형적인 시선을 보여줬다.

그중에는 이미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들의 신작이 4편이나 포진해 있었다. 장 피에르·뤽 다르덴 형제 감독의 《토리와 로키타》,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R.M.N》,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그 주인공. 그러나 막상 영화제의 뚜껑이 열린 뒤 경쟁부문을 둘러싼 초중반 분위기는 미지근했다.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5월22일까지 공개됐던 작품 중 영화제 공식 데일리 매체인 ‘스크린 데일리’ 별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영화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아마겟돈 타임》으로, 4점 만점에 2.8점을 기록했다. 1980년대 뉴욕 퀸즈를 배경으로 감독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반영해 만든 성장물이다. 영화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예술이 숨 쉬고, 인종주의와 홀로코스트가 남긴 과거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시대의 한복판에서 유대인 이민자 가족의 소년 폴(뱅크스 레페타)이 자신과 흑인 친구의 계급 차이를 인지하며 통과하는 시간들을 담는다.

올해 각본상을 받은 《보이 프롬 헤븐》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홀리 스파이더》도 초반 공개작들이었지만 반응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두 작품 모두 종교가 법과 윤리 모두를 넘어서는 사회 안에서 양심을 걸고 분투하는 인물들을 그린 스릴러라는 중요한 공통점을 가진다. 《보이 프롬 헤븐》은 이슬람 종교대학의 국가 후원 장학생으로 뽑힌 소년이 주인공이다. 기쁨도 잠시, 그는 자신이 정부가 선호하는 종교 지도자를 위해 반대 세력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하는 정보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홀리 스파이더》는 《경계선》(2018)이라는 초현실적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였던 이란 감독 알리 압바시의 신작이다. 2000~01년 이란 테헤란에서 성매매 여성 16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로, 그를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여정을 그린 스릴러다. 영화는 신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와 그를 추앙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아이러니, 지성적 반성 없는 사회적 인식의 대물림 과정을 서늘하게 제시한다. 그 스스로가 미끼가 되어 범죄자를 체포하는 저널리스트 라히미를 담대하게 연기한 이란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으 로 감독상을 받았다.ⓒCJ ENM 제공

균형적 시선 견지했으나 미지근했던 경쟁부문

올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그나마 가장 뚜렷하게 적극적인 관객 반응을 이끌어냈던 작품이다.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전작 《더 스퀘어》(2017)에 이어 다시 한번 인간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꼬집는 영화로 돌아왔다. 패션 업계의 우스꽝스러운 풍경에서 시작해 초호화 유람선으로, 다시 무인도로 배경을 옮기는 이 영화는 인플루언서와 패스트패션에 무지성으로 열광하고, 병적인 미의 기준과 자본이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를 비웃는 블랙 코미디다. 유람선이 난파된 뒤 살아남은 승객과 승무원들 간 계급·계층 피라미드가 거꾸로 뒤집히면서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이로써 외스틀룬드는 《더 스퀘어》에 이어 두 번째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감독이 됐다.

경쟁부문의 분위기가 반등세를 보인 것은 영화제 7일 차인 5월23일 저녁 6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올해 경쟁작 중 유일하게 데일리 평점 3점대(3.2점)를 받은 이 영화는 공개 직후 현지에서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점쳐졌으나, 결과적으로는 감독상의 주인공이 됐다.

《헤어질 결심》은 한 남자가 추락해 사망한 산꼭대기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만조의 바닷가를 오간다. 박찬욱 감독의 세계를 구성하던 파격과 폭력 대신 애수와 회한이 짙게 묻어나는 멜로이자 색다른 형사(탐정) 수사물이다. 살해 용의자와 담당 형사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은 그 관계 설정만으로 이미 미묘하다. 극 중 두 사람의 취조 장면은 심문이라기보다 궁금한 대상을 향한 질문과 대답의 과정에 가깝다. 나아가 사건 현장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파악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서 사랑이라는 감정, 멜로의 장르성을 활용한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쓰는 주인공들의 상황에 착안해 일반적으로 스릴러 각본에서 방해물로 작용하는 스마트폰과 워치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색다른 설정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박 감독은 평소 즐겨 읽던 스웨덴 범죄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와 가수 정훈희의 노래 《안개》가 작품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안개》는 극 중 여러 번 등장하는 삽입곡이기도 하다.

5월26일 공개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는 첫 상영이 끝나자마자 12분간의 기립박수가 터졌다. 다만 공개 직후의 반응은 엇갈렸다. ‘선택된 가족에 대한 세밀한 초상화’(뉴욕타임스), ‘아이를 사고파는 일에 관련된 모두를 공감하게 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결론을 따라간다’(버라이어티) 등의 호평이 있는가 하면 ‘고레에다 감독의 보기 드문 실책’(가디언), ‘스토리텔링이 아쉽고 그리 깊이가 있지 않다’(토탈 필름) 등의 의견도 나왔다. 영화는 육아를 포기한 이들이 아기를 두고 가는 베이비 박스를 소재로 한다. 아기를 다시 찾으러 온 엄마 소영(이지은), 돈을 받고 새로운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넘기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 일당이 예기치 못한 여정을 함께 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현행범으로 이들을 체포하려는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도 이들의 뒤를 쫓는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서 현지 배우들과 촬영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해외 프로젝트로, 한국 회사(영화사 집)가 제작하고 CJ ENM이 투자·배급하는 한국 영화다. 상현을 연기한 송강호뿐 아니라 전 출연진 역시 한국 배우다. 고레에다 감독은 현지에서 5월27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현실의 가혹함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법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닐지라도 아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선의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CJ ENM 제공

칸을 사로잡은 한국 영화들

경쟁부문 상영작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단편 경쟁부문에 오른 문수진 감독의 《각질》을 포함해 올해 칸에 초청된 한국 영화는 총 5편이다. 특히 5월19일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된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 《헌트》는 비경쟁부문 초청작 《탑건: 매버릭》과 함께 초반 축제 분위기를 톡톡히 견인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한 이정재를 향한 뜨거운 관심이 현지에서도 충분히 감지됐을 정도. 1983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남파 간첩 총책임자를 쫓으며 가려졌던 진실과 마주하는 첩보 액션이다. 당초 예상됐던 것보다 1980년대 한국의 정치 상황을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온다.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과 총격 액션에 방점이 찍혀있으며, 존 르 카레 작가의 첩보물과 마이클 만 감독의 액션영화 사이를 지향한 작품 같은 인상을 남긴다.

5월19일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된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 《헌트》는 초반 축제 분위기를 톡톡히 견인했다.ⓒ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비평가주간 폐막작이었던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여고생 소희(김시은)와 그를 둘러싼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유진(배두나)의 이야기다. 실적과 숫자로 줄 세워지는 비인간적 노동 환경과 취업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특성화고의 현실을 담아낸 작품이다. 동시에 소희와 같은 아이들이 겪는 일에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진짜 어른’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 감독의 칸 입성은 장편 데뷔작인 《도희야》의 2014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에 이어 두 번째다.

올해 칸영화제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팬데믹 이전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경쟁부문의 내실이 조금 부실했던 것이 공통적으로 지적되지만, 오늘날 ‘시네마’의 본질과 극장의 의미 그리고 영화제라는 축제의 기능과 기쁨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드는 무대로서의 역할에는 충실했다. 동시에 내적으로는 양적·질적 성장을 이룬 한국 영화의 성취를 목격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경쟁부문에서 하나씩 트로피를 가져간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모두 한국을 콘텐츠 허브로 아시아의 인적 자원과 자본이 교류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국경이 빠르게 허물어지는 시대 흐름에 발맞춘 시도이자, 새로운 콘텐츠를 위한 협업의 긍정적 결과인 것이다.

ⓒCJ ENM 제공

마침내 감독상까지 거머쥔 ‘깐느 박’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코로나로 국경이 높아졌지만 우리는 극장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영화인들이 영화관과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 믿는다.” 5월28일(현지시간)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신작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거머쥔 박찬욱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한국 감독이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것은 2002년 《취화선》으로 임권택 감독이 수상한 이후 두 번째다.

그는 ‘깐느 박’이라는 친근한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2004년 《올드보이》로 경쟁부문에 처음 진출해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이 시작. 2009년에는 《박쥐》로 다시금 경쟁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2016년 경쟁부문 초청작이었던 《아가씨》는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류성희 미술감독이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을 받았다.

1992년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연출 데뷔한 박찬욱은 한국과 세계가 사랑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올드보이》 이전에도 남북 분단 소재를 인간적 우정의 이야기로 풀어낸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시애틀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복수는 나의 것》(2001)은 이탈리아 필름누아르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박 감독은 이번 영화를 ‘어른의 사랑’에 빗댄다. 그는 5월24일 칸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물들이 속마음을 감추는 장면이 많다. 대사가 적지 않은 영화지만 그 속뜻을 하나하나 파악하려면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파격적인 묘사와 설정으로 화제가 되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되레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성적 영역에 더 많은 자리를 내어주는 영화다. 기품마저 느껴질 정도다. 인물들의 사랑은 감독에게 모티프를 제공한 노래이자 극 중 삽입곡인 《안개》의 가사처럼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의 풍경 같은 것에 가깝다. 영화는 산을 상징하는 여자 서래와 바다를 상징하는 남자 해준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고 인식하는 순간, 그 사람을 떠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은 언제이며 무엇이 그 결심을 추동하는지를 자문한다.

감독이 “이번에 영화제에서 상을 못 받는다면 (외국 관객들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 때문일 것”이라고 농담 섞인 발언을 했을 정도로, 중국어와 한국어를 넘나드는 언어의 뉘앙스가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서래를 연기한 탕웨이는 이를 위해 문맥까지 살펴가며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고, 그 결과 의뭉스러운 범죄자의 태도와 사랑을 품은 여인 사이에서 해준을 바라보는 인물인 서래로 완벽하게 분했다. 그는 5월24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어제 첫 상영이 끝난 후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님, 당신이 내 인생의 일부를 완성시켰다’고 감사를 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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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으로 값지게 증명된 그의 소망

《브로커》 송강호

송강호와 칸영화제의 인연은 올해로 일곱 해째다. 《괴물》(2006)의 감독주간 초청을 시작으로 《밀양》(2007)이 경쟁부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비경쟁부문, 《박쥐》(2009)가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2019년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는 순간에도 송강호는 현장에서 기쁨을 만끽했다. 영화제가 약식으로 열린 지난해에는 《비상선언》이 비경쟁무문에 초청됐고, 송강호는 경쟁부문 심사위원 자격으로 칸을 찾았다.

그리고 올해 《브로커》는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한국 남자배우 사상 최초이자 아시아 배우로서는 《인생》(1994)의 갈우, 《화양연화》(2000)의 양조위, 《아무도 모른다》(2007)의 야기라 유야에 이어 네 번째 기록이다. 수상 직후 “메르시 보쿠(Merci beaucoup,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운을 뗀 그는 “위대한 예술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함께했던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전했다.

《브로커》에서 송강호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을 돈을 받고 넘기는 ‘브로커’ 상현을 연기한다. 언뜻 보기에는 세탁소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후반부에는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하며 관객에게 서늘한 뒷맛을 안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인간이 가진 본연의 비애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송강호가 제일이었다”는 말로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그는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현장에 나와 편집본을 확인하고,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배우이기도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어 연기를 세세하게 판단할 수 없기에) 송강호의 조언은 불안했던 내게 언제나 좋은 가이드가 돼주었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고레에다 감독 세계를 일컬어 “인간과 삶에 대한 가장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인, 동시에 보고 나서 우리가 어떤 따뜻함을 원하는지 느끼게 해주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브로커》 역시 비정한 가운데 온기를 잃지 않는 작품이며, 능청스러운 태도로 브로커 일당과 소영의 여정을 이끄는 상현은 이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 같은 인물이다. 송강호는 “고레에다 감독의 철학을 담은 작품 세계에 충실한 얼굴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남우주연상으로 그 소망은 이미 값지게 증명된 셈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어떤지, 남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이들을 쫓던 형사들이 ‘진짜 브로커는 우리가 아닐까’라는 대사를 한다. 핵심은 어쩌면 그것이다. 여정을 통해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고귀함을 깨닫는 것. 일반적인 장르 문법으로 접근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고레에다 감독의 철학이자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문법이었으니 후회는 없다.”

2022 칸국제영화제 수상 리스트

황금종려상 |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심사위원대상 | 《클로즈》(루카스 돈트), 《스타즈 앳 눈》(클레어 드니)

심사위원상 | 《EO》(예지 스콜리모프스키), 《디 에잇 마운틴스》(샤를로트 반더미르히, 펠릭스 반그뢰닝엔)

감독상| 《헤어질 결심》 박찬욱

남우주연상 | 《브로커》 송강호

여우주연상 | 《홀리 스파이더》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각본상 | 《보이 프롬 헤븐》(타릭 살레)

75주년 특별 기념상 | 《토리와 로키타》(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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