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민주당에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없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6 07:3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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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맞서며 국민통합 역설했던 리더십 실종
극단주의와 팬덤정치가 지배하는 정당으로 전락

더불어민주당이 또 졌다. 그것도 지난 대선보다도 훨씬 가혹한 심판을 받았다. 지난해의 4·7 재보선, 올해의 3·9 대선에 이어 3연패를 당한 것이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민심은 이미 정권교체를 선택했음에도 민주당은 대선 결과에 사실상 승복하지 않는 태도를 줄곧 보여왔다. 민심이 등 돌린 이유를 성찰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민주당이 했던 일은 ‘검수완박’으로 상징되는 입법폭주였다. 선거마다 아무리 패배를 안겨줘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니 민심이 더 강력하게 민주당을 심판한 것이 이번 선거 결과다.

반복되는 이런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분강개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 보인다. 어떻게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계속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민주당과 그 팬덤층의 생각으로는 유권자들의 그런 선택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이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운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악의 세력인 국민의힘이나 윤석열을 찍는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3월10일 이후 아예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열혈 지지자들의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변함없이 민주당은 ‘선’, 국민의힘은 ‘악’이라는 선악의 이분법에 갇혀있다. 

4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주최한 당 혁신방안 소통간담회에서 안민석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4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주최한 당 혁신방안 소통간담회에서 안민석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정치에 발목

민주당 진영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선악의 이분법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을 지지했다가 이제는 돌아서서 심판자로 나선 많은 사람의 눈에, 지금의 민주당은 예전의 그 민주당이 아닌 것이다. 

과거 민주당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정치사에서 민주주의를 선도했던 역사를 가진 정당이었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민주당은 때로는 국회에서 때로는 거리에서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이루어졌던 직선제 개헌, 그리고 결국은 이루어낸 수평적 정권교체의 역사는 그런 피와 땀이 낳은 결실이었다. 그 뒤로도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 이르면서 민주당은 우리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선도하는 정당으로서 존재 가치를 보여주었다. 보수정당은 수구였고, 민주당이 개혁을 대변했던 시절이 우리 정치사에 오랜 기간 이어진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민주당의 역사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민주당에는 자신들의 정치적 뿌리였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민주당사에 가면 지금도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해마다 8월18일이 되면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이 참석한 가운데 김 전 대통령 추모식을 갖곤 한다. 그리고 이보다 먼저 돌아오는 5월23일이면 민주당 정치인이 대거 봉하마을에 모여 노 전 대통령의 추모식을 갖곤 한다. 민주당은 예나 지금이나 김대중과 노무현의 역사를 잇고 있는 정당이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도 과연 그럴까. 유감스럽게도 지난 몇 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에서는 정작 김대중과 노무현을 볼 수 없다. 지금 민주당은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과 사진은 있지만, 그들의 정치가 추구했던 정신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은 극단주의와 팬덤정치가 지배하는 정당이 되어버렸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노빠’를 자처하는 팬덤층이 존재했지만, 그때만 해도 지지자들의 다양성으로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과 같은 극단적 정치 행태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야당 시절 ‘문재인의 민주당’이 되면서였다. 문재인을 지키기 위해 강성 지지층이 대거 민주당에 입당했고, ‘친문’들끼리 공천을 주고받으면서 다양성도 균형도 사라진 채 강경한 목소리들만 남은 정당이 돼버렸다. 혹여 당의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가는 문자폭탄과 공천 탈락의 응징 속에 견뎌낼 수 없는 당이 된 것이다. 오늘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가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의 정치, 지지층만을 대변하는 팬덤정치로 요약된다.


DJ는 동진정책, 盧는 대연정으로 통합 시도

그런 극단주의 정치는 정작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두 전직 대통령은 상대를 악이라고 간주하는 이분법에 갇히지도 않았고, 오히려 국민통합을 위해 보수정치 세력과의 연합이나 통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이라고 그 시절의 보수정당에 여러 문제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연대가 필요함을 생각했던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의 연합이자 호남-충청의 지역 연합인 DJP연합을 통해 50년 헌정사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동진(東進)정책으로 표현되는 영남 보수 세력과의 화합에 공을 들였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용서와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세력까지도 껴안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극단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치를 했다. 그의 꿈은 국민의 통합이었다. 그 또한 영·호남의 화합을 추구하며 ‘영남 보수 세력’을 껴안는 데 공을 들였다. 급기야 임기 중인 2005년에는 전격적으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했다. 물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도 거부하고 지지층 내에서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대한 반발이 커 제안으로만 끝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보수정당과 연정을 해서라도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결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은 지지층 내부에서 반발이 거세자, 대연정을 제안한 자신의 진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는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니까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선거제도를 고치고 싶습니다. (중략)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자, 이 제안입니다.”

비록 김대중-노무현의 국민통합 노력이 당대에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정치가 가야 할 큰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했다. 그렇게 국민통합의 길을 갔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당이었건만, 이제는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데만 몰두하며 공존을 거부하는 정당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정치가 무엇인가를 알던 지도자들이었다. 정치란 민심을 따르며 상대와 공존하고 타협하는 것임을 두 사람은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더 이상 김대중과 노무현이 아니라 ‘처럼회’가 되었다. 이제라도 민주당이 민심에 맞서온 극단주의와 결별하지 못한다면 2년 뒤 총선에서는 더욱 혹독하게 심판받을지 모른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보였던 통합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극단주의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인지, 다시 민주당에는 선택의 시간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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