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친문-친명 구도, 김동연·박지현이 깨트릴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3 10:0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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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부재에 시달리는 민주당, 차기 당권 안갯속
여의도 입성 대가 톡톡히 치른 이재명, 쇄신파·친문 거센 저항 예상

패배의 순간은 짧지만 수습의 과정은 길다. 더불어민주당 앞에도 녹록지 않을 재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이후 줄곧 0.73%포인트 차 석패를 위안 삼아왔다. 마땅히 이뤄져야 했던 패배에 대한 논의들은 자연히 수면 아래로 잠겼다. 6·1 지방선거로 매서운 회초리를 맞은 민주당은 이제 미뤄뒀던 숙제를 다시 꺼내야 할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패했는지, 이제 ‘누구’를 내세워 폐허가 된 당을 ‘어떻게’ 다시 세울지 골몰해야 한다. 그 답을 어떻게 찾아가느냐에 따라 선거 패배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될 수도, 더 깊이 곪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그 첫 시험대는 오는 8월로 예정된 당대표 선거가 될 전망이다. 이번에 뽑히는 당대표의 경우 2년 후 총선에서 공천권이 주어지는 만큼, 향후 당 장악력을 확실히 취할 수 있다. 대선 직후만 해도 전국 1614만여 표심과 두터운 팬덤을 가진 이재명 상임고문이 독보적인 당권 주자로 거론됐다. 친(親)문재인계와의 일부 갈등은 생길 수 있지만 결국 대세는 이 고문에게로 기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당장 대선 후 2주 만에 치러진 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재명계 박홍근 의원이 이낙연계(범친문) 박광온 의원을 꺾고 당선되면서 이 고문이 확실한 당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국회 입성으로 향후 친문-친명 간 계파 갈등이 예고된 가운데, 김동연·박지현 두 인물의 역할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국회사진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국회 입성으로 향후 친문-친명 간 계파 갈등이 예고된 가운데, 김동연·박지현 두 인물의 역할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국회사진취재단

친문, 대선부터 쌓여온 ‘이재명 책임론’ 제기 시작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며 오히려 그의 대세론이 크게 힘을 잃었다. 인천 계양을 당선으로 자신은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상처뿐인 승리’라는 지적이 많다. 나아가 이 고문의 출마가 전체 선거판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그나마 최대 승부처였던 경기도에서 김동연 후보가 간신히 승리해 체면치레는 했지만, 그 역시 이재명 효과라는 분석은 많지 않다. 오히려 김동연이라는 막강한 대권 경쟁자가 추가됐다. 대선 때부터 누적된 이 고문에 대한 책임론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참패는 이재명의 출마 때문”이라는 당내 비판은 지방선거 개표가 완료되기도 전에 곳곳에서 쏟아졌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이원욱 의원은 대선 때 불거진 이 고문의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사용 의혹 등을 ‘최대 악재’로 지목하며 “이재명은 본인의 당선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고 계양으로 ‘도망’갔다”고 직격했다. 친문 홍영표 의원 역시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며 이 고문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 친문 성향의 의원 역시 “당은 죽고 이재명만 살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고문의 당권 도전 가능성은 높다. 여전히 당내에 당권을 잡을 리더가 뚜렷하지 않지 때문이다. 이재명계 우원식 의원 등이 당대표 출마를 예고하고 있지만 이 고문이 직접 등판해 교통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고문의 당권 도전은 2012년 대선 패배 후 2015년 당 대표로 선출된 뒤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됐던 ‘문재인 코스’를 압축적으로 밟겠다는 계획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고문이 문재인 코스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선 친문과의 고질적인 갈등 해소는 필수적이다. 이번 당권 경쟁 역시 결국 또다시 친문 대 친명(친이재명)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대선을 거치며 쪼그라들었던 친문의 입지는 당대표 선거에서 다시 커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을 지킨 중진 의원 출신 장관들의 복귀가 큰 변수다. 4선 의원인 이인영 전 장관을 비롯해 3선 박범계·전해철·한정애 전 장관 등 7명이 당으로 돌아왔고, 전해철 의원 등은 직접 당권 도전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친문 홍영표 의원도 일찍이 당권 재도전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이들은 문 전 대통령이 역대 최대 지지율로 임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을 내세워 다시금 친문 결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 패배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 때문’이라는 친명과 ‘이재명 후보의 개인 리스크 때문’이라는 친문 간 책임론 갈등부터 당장 재현될 수 있다. 이 경우 당의 자중지란은 장기화하고 이 고문 역시 또 한 번의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질적 존재’ 김동연·박지현, 당 체질 바꿀 듯

이처럼 기시감 강한 계파 구도 속에서도 과거와 분명히 달라진 부분이 있다. 바로 김동연·박지현이라는 두 이질적인 존재의 등장이다. 당초 ‘친명’ 인사로 민주당에 합류한 이들은 향후 당을 재건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재명 고문을 위협하는 거대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드라마를 만든 김동연 당선인은 단숨에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경기지사로 몸값을 올린 후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이재명 코스’를 밟게 된 김 당선인은 역설적으로 이 고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참패한 민주당의 ‘구세주’로서 김 당선인은 책임론에 빠진 이 고문과 한동안 나란히 비교될 것으로 보인다.

김 당선인은 부족한 정치 경력 대신 탄탄한 행정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부터, 자수성가한 ‘개천용’ 서사까지 이 고문과 상당 부분 이미지가 겹친다. 여기에 김 당선인은 옅은 계파색과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이미지를 상대적 우위로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재에 따르면, 대선 당시 이 고문을 도왔던 성남라인이 상당수 이번 지방선거에서 김 당선인을 지원사격했다. 그러나 잠재적 경쟁 관계이니만큼 둘 사이 직접적인 교감은 그리 깊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당선인이 당장 이번 당권 경쟁에 깊이 개입할 가능성은 적다. 다만 그가 향후 어느 편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지에는 관심이 쏠린다. 대선 때처럼 이 고문과 ‘가치연대’를 이룰지, 라이벌인 이 고문과 더욱 차별화를 둘지, 얼마나 당내 독자적인 세력화를 할 수 있을지 등이 주목되고 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차기 당권의 또 다른 축이 될 전망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선거 과정에서 당내 가장 막강한 존재감을 뽐내왔다. 특히 ‘팬덤정치와의 결별’ 등을 약속한 당 쇄신안을 내놓으며 선거 후에도 당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 과정에서 ‘개딸’로 불리는 2030 여성 지지층과 당내 강경파 의원들의 강한 비토가 쏟아졌고, 당내 다수는 이에 침묵했다.

이번 선거 패배로 당내에선 박 위원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와 그의 쇄신안을 실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대표적인 소장파로 분류되는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를 비롯해 당내 개혁 성향 인사들이 박 위원장에게 협조한다면, 향후 당 재건 과정에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박용진 의원은 이미 “박지현 옆에 서겠다”고 공언했고, 조응천 의원 역시 “박지현의 답답함을 이해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권과 대권을 둘러싼 친문·친명 간 대결 속에서, 연대한 개혁 세력이 어느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당내 구도는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탄핵 정국 이후 전국 선거에서 4연속 참패를 겪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은 기득권 세력과 이준석 대표 등 개혁 세력 간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던 보수정당은 당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 결국 쇄신의 길을 택했다. 이후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승가도를 걷고 있다. 이 과정에서 30대 이준석·50대 원희룡·60대 오세훈 등 차기 유력 주자들을 띄워냈다. 폐허의 역설이다. 거물급 리더를 대부분 잃어버린 민주당이 더 이상의 참패를 막기 위해선 지금의 위기를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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