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한반도…‘위기 최고조’ 곧 현실화
  •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9 16:30
  • 호수 17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시’해야 하는 北, ‘대응’해야 하는 韓美…서로 물러서기 어려워
부담 만만찮은 김정은, ‘호흡조절’ 여부가 관건

“향후 남북관계를 판가름할 매직넘버는 에잇(8)이다.” 대북 감시자산을 운용하는 정보기관 관계자는 최근의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8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윤석열 정부의 대북 인식이나 대처는 물론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한국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정보 관계자의 말은 6월초 남북한이 각기 8발의 미사일로 세력 과시에 나선 걸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은 6월5일 오전 9시8분쯤부터 35분에 걸쳐 평양 순안비행장과 평안남도 개천, 평안북도 동창리와 함경남도 함흥 등 4개 지역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8발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여기에는 북한이 보유한 단거리 미사일 3종 세트라 할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방사포(KN-25)와 신형 전술유도무기가 포함됐다.

그러자 한미는 이튿날 새벽 4시45분부터 10여 분 동안 지대지 에이태큼스(ATACNS) 8발을 강원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900개 자탄으로 축구장 3~4개 면적을 초토화하는 위력적인 무기다. 또 다른 대북 정보 당국자는 “주목해야 할 건 8발 가운데 미군이 쏜 미사일 한 발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라고 귀띔했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연합 응징타격을 진행했다는 의미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가 미사일 발사 직후 성명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한미 연합군이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보여주고자 연합 실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15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를 소집하고 있다.(왼쪽) 윤석열 대통령이 6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미국 학계 및 전ㆍ현직 주요 인사 접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15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협의회를 소집하고 있다.(왼쪽) 윤석열 대통령이 6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미국 학계 및 전ㆍ현직 주요 인사 접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반도 위기 최고조 곧 현실화’ 경고음

이처럼 남북한의 신경전은 일촉즉발의 날카로운 국면에 놓여있다. 강대강 대치가 자칫 정면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될 정도다. 북한은 올 들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모두 18차례의 도발을 감행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3차례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9일에 한 번꼴로 전례 없이 집중적이고 강력한 도발 행보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도 강경으로 치닫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상응하는 수준의 응징보복 의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군사 대응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대통령 취임 초기 되풀이돼온 북한의 대남 길들이기성 도발 관행에 쐐기를 박겠다는 결기가 느껴질 정도다. 이런 강대강 대치 국면이 이어지다 보니 한반도 위기의 최고조 상황이 곧 현실화할 것이란 경고성 관망도 잇따른다.

현재 상황으로는 남북 간 최악의 충돌 시나리오로 가는 분기점은 북한의 7차 핵실험이다. 이미 6차례의 실험을 통해 핵 개발을 사실상 완성한 단계인 북한의 추가 핵실험은 소형 전술핵 개발을 위한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차 핵실험에 이어 미 본토를 타격할 ICBM을 시험발사하거나 한반도를 사정권으로 하는 IRBM(중거리탄도미사일)을 잇따라 쏘아올릴 경우 윤석열 정부는 물론 미국의 인내력도 바닥날 공산이 크다. 5월21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울 정상회담에서 의기투합한 한미 동맹 강화와 대북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가 작동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치킨게임으로 마냥 내달리기에는 북한 입장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한반도 주변 상황은 물론 국제정세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선택을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건 한·미·일의 군사전력이 집중적이고도 긴장된 상태에서 한반도와 인근 수역에 전개돼 있다는 점이다. 당장 2년마다 실시하는 미군의 ‘용감한 방패(Valiant Shield)’ 훈련이 괌과 북마리아나제도 등지에서 6월17일까지 진행된다.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와 에이브러햄 링컨호, 군용기 200여 대가 참여하는데, 괌 앤더슨 기지에 배치된 전략폭격기 B-1B 랜서도 함께할 가능성이 높다. ‘죽음의 백조’란 별칭을 지닌 이 전폭기는 북한 도발 징후 시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의 대표적인 전략자산 가운데 하나다. 

앞서 북한이 8발의 탄도미사일 무더기 도발에 나선 6월5일에는 한미 공군이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20대를 동원해 대북 연합 공중 무력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일본 자위대와 주일미군도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이 참가한 탄도미사일 대응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또 한미는 일본 오키나와 해상에서 합동군사훈련도 실시했다.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움직임이다. 이 훈련이 끝난 이튿날인 5일 벌어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화풀이성 대응 차원이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한미는 6월6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8발 도발에 비례해 지대지 미사일 8발을 대응 사격했다.ⓒ연합뉴스

北 핵실험 이후 美 대응 강도도 관건

올 들어 잦은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면서 북한 내부적으로 상당한 피로감에 빠져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정은이 참관하거나 전술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경우 미사일 발사 사실이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에 보도되지 않는 경우도 잦다. 올가을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3연임 성공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야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은의 도발은 반가울 리 없다. 특히 7차 핵실험의 경우 중국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과정에서 북한을 마냥 감싸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 올 수 있다. 북한 내부의 코로나 상황까지도 심각해져 2500만 명 인구 가운데 확진(북한은 열이 발생한다는 의미의 ‘유열자’로 표현)이 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어 김정은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억제할 묘책이 마땅치는 않은 상황이다. 앞서 2017년 9월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트위터에 “매우 위험하고 적대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군사 조치나 압박을 하기는 어려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를 것이란 견해도 있지만 북한의 도발 의지를 결정적으로 꺾어버릴 카드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미는 일단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상수로 놓고 대비책을 짜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다”(6월8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는 말 속에서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준비 동향을 첩보위성으로 속속들이 살피고 있는 정황도 드러난다.

넷플릭스 최신작 《인터셉터》는 극단세력에 탈취당한 러시아 핵미사일이 미국의 16개 주요 도시를 타격하기 위해 발사되는 위기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해상 기지 형태의 SBX-1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이 가까스로 모든 미사일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는 줄거리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 속 세계와 다르다. 백발백중의 요격 미사일이나 완벽한 방어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동시다발 미사일 발사와 다탄두 미사일 개발, 소형 전술핵 등 집요한 행보를 보이는 건 핵과 미사일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부풀리려는 의도다. 하루가 다르게 날카로워지는 김정은의 창끝에 맞서 방패를 담금질해야 하는 한미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 연관기사 
北 미사일 바라보는 日 정부와 시민들 ‘온도차 뚜렷’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