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은 왜 유통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6 10:00
  • 호수 17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우물 파면서 유통 지형 뒤흔들어
정육각·인어교주해적단·오늘회 등 신선식품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의 성공 DNA

쇼핑의 전제는 ‘다양성’이었다. 한 곳에서 얼마나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는지가 장을 보는 곳을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부흥했던 오프라인 유통 시대가 저물면서 소비자들의 니즈(욕구)는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향했다. 그래서 쿠팡, SSG닷컴 등 이커머스 플랫폼은 온라인의 특성을 살려 카테고리를 무한대로 확장하고 소비자들을 락인시켰다. 구매 채널과 아이템이 세분화되자 ‘전문성’이라는 화두가 두드러지기 시작하더니,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플랫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카테고리에 집중해 소비자를 공략하는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이다.

이 중 신선식품을 다루는 플랫폼들에 왜 주목해야 할까. 신선식품은 신선도와 빠른 배송 속도가 생명이다. 원재료 수급과 물류 시스템은 유통 산업의 지형도를 움직인다. 식품을 주력으로 하는 스타트업으로 인해 본격적인 새벽 배송 시대가 열렸고, 유통시장은 익일 배송을 넘어 더 빠른 배송 속도를 추구하는 퀵커머스 시장으로 진화했다. 이제 ‘전문’ 카테고리는 더 세분화됐다. 정육, 수산물 등 한 우물을 파는 신선식품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이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가 앱을 오가며 장을 보게 만드는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 그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대표적인 신선식품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들은 ‘○○은 여기’라는 자신감에서 출발한다. 그 기반은 전문성에 있다. 주식회사 더파이러츠가 운영하는 인어교주해적단은 대표적인 수산물 전문 플랫폼이다. 시작은 수산시장 시세 정보였다. 수산물 시세를 기록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출발한 이 플랫폼은 2015년 자체 플랫폼과 앱을 출시했는데, 주력은 ‘정보’였다. 매일 수산시장 내 가게들의 시세를 공개하고, 품목별로 가격을 비교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가격이라 불리는 ‘시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수산시장에서 ‘호구’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소비자들의 고민을 해결한 셈이다.

실제로 거주지나 여행지의 수산시장을 이용하기 전에 인어교주해적단 앱을 통해 수산물의 시세 정보를 검색해 보거나, 공개된 가격으로 회나 해산물을 예약해 구매하는 이가 늘어났다. 인어교주해적단 앱의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100만 명 이상이다. 이렇게 시세 정보를 표준화하면서 규격화된 기준이 없던 수산물 사이즈, 수율을 평가할 수 있는 등급을 만들었고, 소비자들이 품질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앱 내에서 회 포장이나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영역도 넓혔다.

ⓒfreepik

전문성 기반으로 소비자 신뢰 확보

전문성을 부각하는 장치 중 하나는 콘텐츠다. 수산물 구매 팁, 재료 손질 방법, 레시피 등을 앱 내 콘텐츠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제공하고, 생선 전문가와 셰프, 어류 칼럼니스트와의 만남 영상을 공개한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직접 수산시장을 찾고, 전문가의 설명을 더해 채널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다에 관련된 모든 것을 보여 드린다’는 설명처럼, 수산물을 구매할 때 인어교주해적단을 떠올릴 수 있는 배경을 콘텐츠를 통해서도 마련했다. 이렇게 수산시장 ‘정보’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전문성을 확립한 인어교주해적단은 수산물 중개 서비스를 넘어, 온라인 쇼핑을 통해 산지 수산물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배송으로 연결하면서 수산물 전문 플랫폼으로 자리를 굳혔다. 네이버스토어에 입점한 수산물 전문 이커머스 플랫폼은 네이버 쇼핑 수산 분야 1위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판매되는 품목은 500여 가지가 넘는다.

속도보다 중요한 식품 이커머스 플랫폼의 필수 DNA는 신선도다. 코로나19 시국을 거치면서 식품의 온라인 거래 비중은 더욱 높아졌지만, 아직 신선식품의 온라인 거래 비중은 20% 정도에 그친다. 식재료를 장기간 보관하는 것이 어렵고, 가공식품에 비해 포장과 배송 과정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유통 산업 지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떠오르는 식품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들은 ‘고기와 생선은 눈으로 보고 골라야 한다’는 말을 옛말로 만들고 있다.

최근 축산물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육각의 핵심 콘셉트는 ‘초신선’이다. 정육각은 주문받은 시점부터 가장 가까운 때 도축·도계하거나 조업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축 후 최장 45일까지 시중에 유통되던 돼지고기를 도축 4일 이내에 유통되게 함으로써 신선하다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다. 포장 전면에 도축일자나 조업일자 등을 커다랗게 표시하면서 신선도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식품이라 더 중요한 ‘초신선’ 키워드

정육각은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신선도를 결정짓는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유통 단계를 간소화하는 것. 농장-도축장-육가공 공장-도매-중도매-소매점으로 이어지는 유통 단계를 농장-도축·육가공-정육각으로 단축했다. 정육각은 김포와 성남의 스마트팩토리를 운영하며 상품들을 직접 생산하는데, 소비자 주문이 들어오면 실시간으로 고기를 썰어 포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서울의 경우 최종 포장을 마친 뒤 최소 3시간이면 배송받을 수 있다. 당일 물량을 예측하거나, 공정을 최적화하는 데는 IT 기술을 이용한다. 축적된 구매 데이터와 날씨·요일 등에 기반해 수요 물량을 예측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구매-취식 경험을 완성하는 것은 재료와 물류다. 구매와 배송으로 이어지는 플랫폼 내 서비스 역시 신선함을 전제로 한다. 신선식품, 특히 축산물 특성상 배송할 때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육각은 IT 물류 솔루션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배송 과정뿐만 아니라, 배송 완료 후 소비자가 식품을 수령하기까지의 공백 시간에도 식품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포장재와 보냉재를 연구했다.

보통 이커머스 쇼핑몰은 ‘얼마 이상 구매 시 무료 배송’이라는 정책을 따르는데, 이를 위해 필요 이상으로 상품을 구매할 경우 상품 소비 기한이 길어져 신선한 상태에서 섭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3500원으로 한 달 동안 총 4번의 무료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신선플랜’이나, 상품을 추가할 때마다 배송비를 추가로 할인해 주는 ‘신선할인’ 등 서비스를 도입한 이유다. 신선도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플랫폼의 성장세로 이어진다. 정육각의 누적 가입자 수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나 81만 명을 넘겼고(2021년 말 기준), 고객당 월 재구매 빈도는 2배 이상 높아졌다.

정육각은 지난해 3월 이마트에브리데이, 마켓컬리, 바로고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초록마을 인수에 성공하면서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400여 개에 이르는 오프라인 매장과 이를 기반으로 한 당일 배송 인프라를 손에 넣은 셈이다. 차별화 포인트인 ‘초신선’과 IT 기술 개발 역량을 통해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축산물과 과채류·가공식품, D2C(소비자 직접 판매) 제조 역량과 전통적인 유통 네트워크 등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게 다른 두 기업이 원팀으로 만나게 됐다. 틀에 갇히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를 제공해 식품시장 판도를 바꿔보고 싶다”고 말해 정육각의 영역 확장을 예고한 바 있다.

 

이용자 경험 확대로 MZ세대 공략

하나의 카테고리에 집중하기 때문에 충성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식품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 경험이다. 경험의 질을 상승시키기 위한 노력은 물류가 뒷받침한다. 최근의 식품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들은 배송을 위한 물류 시스템에 집중하고 있다. 정확한 배송시간이 고객의 신뢰를 확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산물 커머스 플랫폼 오늘회를 운영하는 오늘식탁은 물류에 집중하는 대표적인 회사다. 유통기간이 짧고 냉동·냉장 보관이 중요한 신선식품 유통에 최적화된 풀필먼트 시스템을 만들었다.

수산물은 생산부터 배송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선도를 보장하기 위해 수요 예측 알고리즘을 통해 제품 판매량을 예측한다. 물류 시스템을 통해 또 한 번 오늘회의 배송시간을 앞당겼는데, 새벽 배송보다 시간을 더 앞당긴 ‘당일 배송’이다. 배송을 하루 3번으로 늘리면서 퀵커머스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오전 11시까지 주문하면 오후 3시까지, 오후 3시까지 주문하면 저녁 7시까지, 저녁 7시까지 주문하면 밤 11시에 당일 손질한 수산물을 받아볼 수 있다. 생산부터 배송까지 8시간이 걸리지 않고, 배송기사의 정시 배송률은 99%에 이른다. 해산물의 ‘도착일자’가 아닌 ‘도착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제품의 신선도와 맞물려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4월까지 누적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44% 증가한 131억4000만원. 오늘회의 누적 회원 수는 65만 명에 달한다.

서비스는 MZ세대를 주 타깃으로 한다. 강점은 손질된 수산물이다. 일상에서 편하게 먹도록 뚜껑만 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손질된 수산물’이 ‘정해진 시간’에 도착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여기에 이용자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는 서비스들이 더해진다. 앱을 통해 제철 해산물을 안내하거나 시즌에 맞는 수산물을 추천하는 것. 기존에 다양하게 접하기 어려운 해산물들을 소개하고, 직접 구매한 고객들의 사진 후기를 기반으로 메뉴 정보를 제공하면서 젊은 층의 미식 경험을 확장시키고 있다. 김재현 오늘식탁 대표는 평소에 타깃층이 모여있는 인스타그램을 자주 살핀다. 실제로 오늘회 태그가 돼있는 사진이나 후기에 직접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이 공감하는 키워드와 니즈를 반영해 ‘꿀 조합’으로 추천하고, 직접 레시피를 개발해 제안한다. 1인용 회를 판매하고, 인원별로 적당한 양을 소개하는 등 인원과 상황에 맞는 상차림이 가능하다는 것도 오늘회의 장점으로 꼽힌다.

전문성, 신선도, 맞춤형 등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가 되면서 대표적인 분야에 올인하는 스타트업의 시장 주도가 가능해졌다. 특히 취향 소비, 가심비를 선호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신선식품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이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신선식품 플랫폼들의 활동 공간은 수도권에 그쳤지만 이제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오늘회는 수도권 지역에서 운영했던 신선식품 오늘드림 서비스를 부산과 경남, 충청권에서도 오픈하면서 배송 지역을 확대했고, 정육각은 대전·세종에서도 새벽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