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은 왜 ‘구미 3세 여아’ 친모 사건을 파기환송 했나
  • 이혜영 디지털팀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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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여아=친자’ 성립해도 아이 바꿔치기 증거 없어”
‘아이 바꿔치기’ 여부 등으로 전국적 관심을 끈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여아 친모 A씨(49)가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지난해 8월17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성년자 약취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의 친모 석아무개씨가 지난해 8월17일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대구지법 김천지원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경북 구미의 한 빌라에서 사망한 3세 여아의 친모로 밝혀져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은 여성이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유전자 검사 결과로 피고인이 숨진 여아의 외할머니가 아닌 친모라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6일 미성년자 약취(납치)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석아무개(49)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유전자 감정 결과가 증명하는 대상은 이 사건 여아(사망 여아)를 피고인의 친자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불과하고, 피고인이 피해자(석씨 딸이 낳은 여아)를 이 사건 여아와 바꾸는 방법으로 약취했다는 사실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며 "유전자 감정 결과만으로 미성년자 약취라는 쟁점 공소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약취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양태)과 종류, 수단과 방법, 피해자의 상태 등에 관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씨는 2018년 3월 말~4월 초 사이 구미의 한 산부인과에서 친딸 김아무개(23)씨가 낳은 여아를 자신이 출산한 여아와 몰래 바꿔치기한 혐의를 받았다.3세 여아가 숨진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2월9일 김씨가 살던 빌라에서 아이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박스에 담아 옮기려고 한 혐의도 받는다.

숨진 여아는 이보다 약 6개월 전 김씨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빈집에 홀로 남게 됐고,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가 사망했다.

대법원은 석씨의 공소사실에 특정된 범행 시점인 2018년 3월31일 오후 5시32분께부터 4월 1일 오전 8시17분께 사이에 아이 바꿔치기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에 관한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석씨가 자신의 딸이 아이를 낳을 무렵에 출산했을 것이라는 2심까지의 추정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목격자나 CCTV 등 범죄 사실을 뒷받침 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도 없어 아이 바꿔치기 혐의를 사실로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피고인은 피해자(납치 여아)의 외할머니이므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이 사건 여아(사망 여아)와 바꿔치기한 후 데리고 간 사실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친권자(김씨)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피해자의 자유와 안전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약취행위로 평가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당초 여아의 사망 원인인 김씨의 아동학대 혐의를 수사하던 중 석씨의 아기 바꿔치기와 시신은닉미수 혐의를 추가 포착했다. 숨진 여아의 유전자 검사에서 원래 친모로 알려졌던 김씨가 사실은 언니였고, 외할머니인 줄 알았던 석씨가 실제 친모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검찰청이 각각 시행한 검사 결과 모두 석씨가 숨진 여아의 친모라는 동일한 결론이 나왔다.

3월17일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석아무개씨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석씨를 미성년자 약취 혐의 외에 시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 ⓒ 연합뉴스
지난해 3월17일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석아무개씨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석씨를 미성년자 약취 혐의 외에 시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 ⓒ 연합뉴스

석씨는 재판에서 자신의 출산과 아이 바꿔치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1·2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세 번의 유전자 감정 결과 등을 보면 숨진 아이와 피고인(석씨) 사이에 친모·친자 관계가 성립한다"며 "아이의 혈액형 등 출생 전후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자신이 낳은 여아와 친딸이 낳은 딸을 바꿔치기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석씨가 출산 한 달 전 직장을 그만뒀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 진술을 한 점, 임신 사실을 알았을 무렵 출산 관련 동영상을 시청한 점, 온라인으로 해온 여성용품 구매가 임신 의심 기간에만 중단된 점 등을 판단의 근거로 활용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석씨가 단순히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충분한 동기로 판단되지 않고, 퇴사한 경위나 당시 산부인과의 상황 등 간접 증거에 관한 의문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유전자 검사 결과의 증명력을 그 증명 대상을 넘어선 사실관계에까지 적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별도의 사실관계인 쟁점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형사증거법의 일반적 법리에 따라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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