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대통령 앞 ‘맞불집회’로 주민 몸살…집시법 개정될까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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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개월간 집시법 개정안 7건 발의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윤석열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24시간 집회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윤석열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24시간 집회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회 소음으로 아이가 잠을 못 자고 울고 있습니다."

"집회로 인하여 노인들 병들어간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자택 인근에 각각 붙은 현수막 문구다. 전·현직 대통령 사저 인근 집회가 진영 간 '맞불집회'로 번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소음 피해를 겪는 주민들의 호소가 계속되면서 국회에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서울의소리는 지난 14일부터 일주일째 윤 대통령 서초동 자택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앞에서 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를 중단하라며 '맞불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양산 사저 앞에서 열리는 시위 소리를 대형 확성기를 통해 그대로 내보내거나 노래를 크게 틀면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소음을 견디다 못한 아크로비스타 주민들은 최근 집회 중 마이크, 스피커, 확성기 사용을 금지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에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김건희 여사의 팬카페인 '건사랑'은 서울의소리가 내건 현수막 문구내용 등이 김 여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20일 고발장을 내겠다고 밝혀 고소·고발전으로까지 커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주민들도 같은 피해를 겪고 있다. 주민들은 문 전 대통령을 반대하는 보수 성향 단체들이 진행하는 집회 소음에 시달리다가 지난 12일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사저와 약 50~100m 정도 떨어진 도로에서 차량에 별도로 설치한 스피커로 오전 1시부터 아침까지 국민교육헌장을 반복해 트는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회를 진행해왔다.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집시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는 지난 4월부터 이달까지 약 3개월간 집시법 개정안이 7건이나 발의됐다. 국민의힘 의원이 2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건, 그리고 기본소득당 의원이 1건을 발의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전직 대통령 사저 앞을 집회 시위 금지 장소에 포함하는 안을 내놨다. 또 최근 한병도 민주당 의원 등 10명, 박광온 민주당 의원 등 15명, 윤영찬 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집회 시위 참가자가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모욕하고 심각한 소음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 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낸 개정안은 현직 대통령의 집무실 인근 집회를 막자는 내용이다. 구자근 의원 등 12명은 지난 4월 대통령 집무실도 반경 100m 이내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제11조를 고치는 안을 냈고 박대출 의원 등 10명도 이달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오면서 이전에 청와대와 100미터 거리인 사랑채 앞 분수대 또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던 집회·시위가 용산 일대로 몰리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집무실 바로 인근에 신고된 집회 신고에는 금지 통고를 해왔지만, 최근 법원이 잇따라 집무실 인근의 집회·시위를 허용하면서 결국 전쟁기념관 앞 소규모 집회는 보장하겠다는 기조로 전환했다. 

지난달 25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문 전 대통령 반대단체 집회, 1인 시위에 항의하는 마을주민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문 전 대통령 반대단체 집회, 1인 시위에 항의하는 마을주민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집회 시위의 자유와 공공안녕의 질서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의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한다. 다만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헌법 37조가 규정하고 있다. 집시법(11조)은 이를 근거로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공관에서 100m 이내'를 집회 금지 구역으로 정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과 거주지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는 집회가 가능한 곳이다.

도를 넘는 욕설시위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에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집회 시위의 자유가 정치적 공격과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공감대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논란이 되고 있는 욕설시위에 대해 "이건 시위가 아니다"라며 "시위는 자기 주장을 알리는 건데, 가서 쌍욕을 하고 사실상 테러를 하고, 사생활을 침해하고, 주민들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경찰청 상반기 집회·시위자문위원회에서도 "집회 소음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 방향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바 있다. 집회·시위 소음 기준은 이미 2020년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한 차례 강화됐지만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야간과 심야를 구분하고, 심야시간대 주거지역 소음기준을 60dB에서 55dB로 변경하는 등 기준을 높였지만 소음 측정 때만 음량을 조절하는 등 규정의 허점을 이용하는 시위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공공안녕을 이유로 대통령 사저 등 특정 장소를 명시해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진 교수는 현직과 전직 대통령을 구분해 "전직과 현직(대통령)은 다르다"며 "현직은 참아야 한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시위는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은 각종 현안을 해결할 권한이 있는 만큼 각종 목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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