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황제노역’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1400억원대 채권 횡령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8 10:0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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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 회사에 계열사 부실채권 넘긴 뒤 현금화…뉴질랜드 호화생활의 원천?

2014년 ‘황제노역’ 논란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수천억원 규모의 계열사 채권을 횡령한 정황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차명으로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 그룹 계열사들의 채권을 저가에 넘긴 뒤 이를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다. 개인 자산이 없다는 이유로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을 자처한 허 전 회장이 뉴질랜드에서 호화생활을 이어올 수 있던 배경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제의 페이퍼컴퍼니는 2009년 9월 설립된 코너스톤홀딩스다. 당시는 대주그룹 주력사인 대주건설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계열사들이 연쇄부도 위기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코너스톤홀딩스는 부실채권(NPL채권)을 인수한 뒤 회수 및 양도하는 일을 주 사업목적으로 했다.

‘황제노역’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사진)이 차명회사에 계열사 채권을 넘긴 뒤 이를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드러났다.ⓒ연합뉴스
‘황제노역’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사진)이 차명회사에 계열사 채권을 넘긴 뒤 이를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드러났다.ⓒ연합뉴스

코너스톤홀딩스 대표이사는 최대주주(40%)인 전아무개씨가 맡았다. 그는 허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1983년부터 동양저축은행(현 신동해그룹 계열사)과 대한화재해상보험(현 롯데손해보험), 대한상선(현 SM그룹 계열사) 등 대주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해온 전씨는 코너스톤홀딩스 설립 직전까지 그룹 재무본부에 몸담았다. 다른 주주들도 허 전 회장의 주변인들로 구성됐다.

코너스톤홀딩스 내부자료와 사정기관 문건 등을 종합하면, 이 회사에는 설립 직후부터 대주그룹 계열사 및 관계사들의 부실채권(NPL채권)이 집중됐다. 채권 매입을 위한 원천자금은 동양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마련한 50억원이었다. 대주그룹 계열사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의 채권을 사들인 셈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대주그룹 계열사들의 채권은 시사저널이 파악한 것만 1400억원대에 달한다. 코너스톤홀딩스는 설립 첫해인 2009년에만 대한시멘트와 대한페이퍼텍 등 대주그룹 계열사 12곳에 대한 808억5500만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 13건을 60억3000만원에 인수했다.

같은 해 대한화재해상보험이 보유 중이던 앵커씨티 부실채권 26억6500만원을 3억6200만원에 사들였고, 2010년 5월과 2011년 4월에는 미래알에이씨 관련 부실채권(126억3600만원)과 대주주택에 대한 부실채권(270억원)을 각각 3000만원과 1000만원에 인수했다.

코너스톤홀딩스는 이들 채권을 직접 추심하거나, 특수관계인 또는 특수관계법인에 저가에 넘긴 뒤 수익을 올리도록 했다. 코너스톤홀딩스는 특히 추심 과정에서 대주그룹의 자금 관련 내부정보를 적극 활용했다. 계열사로 입금될 자금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가져가는 식이었다.

미래알에이씨에 지급될 예정이던 국세환급금을 추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코너스톤홀딩스는 미래알에이씨의 2010년과 2011년도 국세환급금을 두 차례 추심해 총 36억600만원을 확보했다. 허 전 회장 측과의 공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너스톤홀딩스는 또 모든 추심 과정에서 관할법원에 전부명령을 신청했다. 전부명령이 내려지면 채권의 권리가 모두 전부채권자에게 이전된다. 이 경우 다른 채권자들은 해당 채권에 대한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하청업체 등 제3 채권자들의 채권 추심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대주그룹이 연쇄부도 위기에 내몰린 2009년 그룹 계열사 들의 채권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차명회사로 의심 되는 코너스톤홀딩스로 흘러들어갔다.ⓒ연합뉴스
대주그룹이 연쇄부도 위기에 내몰린 2009년 그룹 계열사 들의 채권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차명회사로 의심 되는 코너스톤홀딩스로 흘러들어갔다.ⓒ연합뉴스

내부정보 이용한 추심으로 최대 130배 수익

채권 거래와 추심 과정에서는 허 전 회장의 첫째 사위인 법조인 김아무개씨와 대주건설 사장이던 둘째 사위 이아무개씨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 전 회장은 당시 임원회의 석상에서 자금은 둘째 사위와, 법적 문제는 첫째 사위와 상의해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대주그룹 전직 임원의 설명이다.

문제는 대주그룹이 계열사들의 채권을 NPL채권으로 분류해 헐값에 넘겼지만, 사실은 충분히 회수 가능한 채권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코너스톤홀딩스에 넘어간 채권의 대부분은 대주그룹 계열사 간 대여 등 자금 거래로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저가에 거래된 채권들은 막대한 수익을 낳았다. 실제 코너스톤홀딩스는 총 4000만원에 사들인 미래알에이씨와 대주주택 채권을 추심해 51억7100만원을 확보했다. 취득가 대비 130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대주그룹과 코너스톤홀딩스의 행태는 채권을 활용한 신종 비자금 조성 수법으로 보인다”며 “부실채권이 부동산이나 주식 등과는 달리 추적과 파악이 어려운 숨겨진 재산이라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계열사들의 자금만 가져간 게 아니다. 코너스톤홀딩스는 대한화재해상보험으로부터 비계열사인 삼부이엔씨에 대한 158억1700만원 규모의 채권을 20억원에 인수했다. 이를 통해 삼부이엔씨가 시행한 경기도 양주시 그랑시떼상가 164실에 대한 가등기권 및 근저당권을 이전받은 뒤 이 중 132실을 49억5000만원에 매각했다.

하청업체와의 허위 거래를 통해 코너스톤홀딩스에 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주그룹 계열사이던 미래알에이씨는 2009년 서희건설에 남양주 소재 아파트 신축공사(391억800만원)를 맡겼다. 미래알에이씨는 이듬해인 2010년 15억원이던 추가 공사비용을 33억원으로 증액하는 변경계약서를 작성하고 이 중 15억원을 코너스톤홀딩스에 지급하는 이면합의를 했다.

이후 서희건설은 ‘설계변경에 따라 관할 관청에 대한 업무 등에 대한 용역을 제공한다’는 취지의 용역 계약서를 작성한 뒤 두 차례에 걸쳐 코너스톤홀딩스에 자금을 전달했다. 그러나 실제 코너스톤홀딩스는 서희건설에 아무런 용역도 주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너스톤홀딩스는 대주건설이 지분을 보유한 서울 용산구의 빌딩 임대료를 100년간 회수 위임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코너스톤홀딩스는 대주건설의 다른 채권자들을 배제하고 매년 해당 빌딩 임대료로 10억원 이상을 회수해 오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계약 기간 내 1000억원의 주인 없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코너스톤홀딩스는 최근까지 100억원 이상의 임대료를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을 종합하면, 결국 대주그룹이 해체되기 직전 계열사들에 남은 자금을 채권 추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허 전 회장 일가의 차명회사로 이전한 것이다. 그러나 코너스톤홀딩스로 넘어간 대주그룹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시사저널이 확보한 코너스톤홀딩스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관련 문건(2014년도)에는 자금의 향방 일부가 담겨있다. 문건에는 ‘채권 추심 과정에서 오간 수표들에 대한 금융추적조사 결과, 확인된 금액 대부분이 허재호 일가에 흘러갔다’고 명시돼 있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코너스톤홀딩스 내부자료와 사정기관 문건 등에는 비자금 조성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코너스톤홀딩스 내부자료와 사정기관 문건 등에는 비자금 조성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청업체 줄도산에도 허 전 회장은 호화생활

일련의 일탈행위로 인한 피해는 수백여 곳에 달하는 대주그룹 하청업체에 그대로 전달됐다. 대주그룹이 붕괴할 당시 하청업체들에 대한 미지급금은 5000억원에 달했다. 당시 대주그룹은 하청업체들에 미지급금의 절반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실제로 지급된 대금은 전체 미지급금의 10%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대주그룹 하청업체들과 재하청업체들의 도산이 줄을 이었다. 이 때문에 한순간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거나 빚더미에 올라 도피생활을 하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일부 하청업체는 현재까지도 미지급금을 회수하기 위해 대주건설 등을 상대로 법적 분쟁을 벌여오고 있다.

대주그룹으로부터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도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대주그룹 계열사이던 지에스건설(GS건설과 무관)이 2010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지구에 분양하기로 한 대주피오레 아파트 수분양자 283명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대주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하고 수백억원에 달하는 분양대금을 잃게 됐다.

분양 피해자들은 지에스건설을 상대로 분양대금 반환 청구의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분양대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지에스건설은 분양대금을 다른 계열사에 대여금 형태로 전달했는데, 이후 모든 계열사의 자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반면, 허 전 회장은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최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며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허 전 회장이 고급 카지노 VIP실에서 도박을 하거나 요트와 낚시, 골프 등을 즐기는 모습이 수차례 포착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호화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 출처는 아직까지도 베일에 가려있는 상태다.

시사저널은 이번 의혹과 관련해 코너스톤홀딩스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표이던 전씨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취했으나, 그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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