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계단만 남았다” 누리호 주역들의 절치부심, 새 역사 새겼다
  • 이혜영 디지털팀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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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시대 연 누리호 주역들, 12년 땀방울로 이뤄낸 ‘환희의 순간’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한국형 최초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6월21일 대전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종합관제실 관제센터에서 연구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한국형 최초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6월21일 대전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종합관제실 관제센터에서 연구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개발해 가는 과정에 있고, 이 과정을 성공이나 실패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마지막 계단 하나가 남아있다. 성공을 위해 많은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2021년 10월21일,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

우주를 향한 30년 도전이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공하며, 한국은 마침내 ‘7대 우주강국’ 반열에 올랐다.

8개월 전 1차 시도 당시 ‘절반의 성공’ ‘미완의 발사’라는 평가에 절치부심을 거듭한 연구원들은 이번엔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작년의 약속을 보란 듯이 지켜냈다.

고 본부장은 21일 오후 5시10분 전남 고흥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한 누리호 발사 결과 브리핑에서 개발 과정의 난관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눈을 감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고 답변을 이어갔다.

고 본부장은 "연구진이 2015·2016년 기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로켓 연소의 불안정을 해결하려고 1년 넘게 각고의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추진제 탱크 제작 공정이 잘 설계되지 않았다"며 "기술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언제 발사체를 만들지도 모르는 깜깜한 시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누리호 개발의 시간이 두려움과 막막함의 연속이었다고 토로했다. 고 본부장은 "우리가 액체엔진 연소시험을 원하는 대로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다"며 "시험이 잘못되면 사업 자체가 잘못되기 때문에 걱정했던 기억이 남는다"고 떠올렸다.

고 본부장은 "오늘 결과가 잘 나와 연구진이 매우 기뻐하고 있다"면서 "누리호를 통해 첫 발걸음을 뗐다. 끝이 아니고 이제부터 할 수 있는 일이 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누리호 발사를 앞둔 시각,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와 대전의 항우연 위성종합관제실엔 숨 막히는 긴장과 적막이 흘렀다. 누리호가 발사된 직후 연구원들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가는 누리호에 고정된 채 미동조차 없었다.1단 로켓과 페어링(위성 보호 덮개), 2단 로켓이 순조롭게 분리될 때마다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곧바로 정적이 이어졌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6월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2차 발사되고 있다. 이번 2차 발사는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에 실제 기능을 지닌 독자 개발 인공위성을 실어서 쏘는 첫 사례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6월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2차 발사되고 있다. 이번 2차 발사는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에 실제 기능을 지닌 독자 개발 인공위성을 실어서 쏘는 첫 사례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함성과 박수 소리가 지휘센터에 울려 퍼진 건 발사 875초 만인 오후 4시14분36초였다. 누리호 3단에서 발사된 성능 검증 위성이 지구 700㎞ 궤도에 안착한 것이 확인된 순간 “와!”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지난 12년3개월 동안 기다려 온 영광의 순간을 맞이한 항우연 연구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손을 맞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우주 산업 불모지나 다름없던 2010년 ‘누리호 개발’이라는 미션을 받아든 항우연 연구진들은 쉼없이 달려왔다. 냉소와 조롱, 질타도 함께였다.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우주 분야에서 오직 국내 기술만으로 엄혹한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지만, 연구원들은 막중한 임무를 기꺼이 짊어졌다.

특히 지난해 10월 1차 누리호 발사 실패 당시 고 본부장을 비롯한 모든 연구진들은 두 달간 밤을 새우며 원인 찾기에 돌입했다. 비행 정보를 담은 데이터 2600건을 추적하며 문제점을 찾았다. 그 결과 3단 산화제 탱크 안에 있던 헬륨 탱크 고정부가 로켓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풀리면서 산화제 탱크 내부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실패에서 얻은 또 하나의 업적이었다. 연구원들은 지난 12년 간 이런 과정을 끝도 없이 반복해왔다. 고 본부장이 1차 시도 당시 “실패가 아닌 과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항우연은 물론 누리호 사업에 참여한 300여 국내 기업의 엔지니어 500여 명도 동고동락했다. 누리호 부품 총조립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맡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로켓 액체엔진 개발에 참여했고, 발사대는 현대중공업이 주축이 돼 구축했다. 누리호의 부품 37만 개 중 극히 일부를 뺀 94.1%가 국산으로, 총사업비의 약 80%인 약 1조5000억원이 국내 산업계에 집행됐다.

누리호 성공으로 한국과 국내 기업은 우주 산업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됐다. 고 본부장은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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