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軍 레이더 안전하다”던 정부… 법원이 뒤집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5 10:0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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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전자파-공무상 재해’ 상관관계 최초 인정...국방부 “레이더 안전과 무관”

“군용 레이더는 안전하다.” 레이더의 인체 유해성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정부가 보여온 반응이다. 박근혜 정부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 군이 운용 중인 레이더의 전자파 강도를 공개 측정하기도 했다. 결과는 매번 유해성이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법원이 군 레이더로 인한 사망 사건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레이더 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때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군 부사관으로 임관한 고인 A씨는 그해 말부터 2018년까지 약 6년간 레이더 정비사로 근무했다. 그러다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2019년 사망했다. 이때 나이 28세였다. 국방부는 유족연금 지급을 거부했다. “레이더의 전자파로 인해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A씨 어머니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11월 공군 방공포병학교에서 열린 패트리엇 미사일 인수식ⓒ연합뉴스
2018년 11월 공군 방공포병학교에서 열린 패트리엇 미사일 인수식ⓒ연합뉴스

군의 자체 측정 결과…법원 “믿기 어렵다”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국방부를 향해 “(방사선이나 유해물질 노출 여부에 관해) 실제 확인조치를 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확인했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판시했다. 레이더의 유해성을 따져볼 근거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취지다. 이에 국방부는 항소심 때 자료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2심 재판부는 “그 내용을 믿기 어렵다”며 5월20일 역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법부가 군 레이더와 공무상 질병·사망 사이의 상관관계를 인정한 건 이번이 최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국방부는 법원에 제출한 레이더 전자파 측정 자료를 통해 “전 부대 측정 위치에서 인체보호기준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또 측정 과정에서 공군본부 지침과 정부 산하기관인 국립전파연구원의 고시를 따랐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는 외부 기관이 아닌 군 자체에서 분석한 결과다. 본지가 이에 대해 묻자 국방부 대변인실은 메일로 “전문 능력을 갖춘 부대가 측정한 것”이라고만 밝혔다. 측정 자료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배경이다.

또 전자파 측정 시점은 A씨가 근무했던 시기와 3년 이상 차이가 났다. 국방부는 지난해 6월 약 9일 동안 측정했다. 그런데 A씨가 레이더 정비사로 마지막까지 일한 날은 2018년 1월이었다. 게다가 측정 시점인 ‘지난해 6월’에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즉 전자파 측정 결과를 갖고 있으면서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셈이다.

이에 관해 국방부 대변인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심 재판의 주된 쟁점은 근무수칙에 따라 레이더 작동 시 근무자가 대피 및 철수해 전자파에 노출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으로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근무수칙, 근무형태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국방부의 대응을 두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A씨 소속 부대의 군의관도 “(A씨는) 지속적으로 전자파 환경에 노출됐다”며 “발병 및 악화의 원인이 업무와 관련 있다고 추정된다”는 조서를 작성했다.

결정적으로 국가보훈처는 국방부와 달리 A씨의 공무상 사망을 인정했다. 보훈처가 의학자문을 구한 김규원 전문의(서울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주임과장)는 “A씨의 백혈병은 공무와 관련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전문의는 시사저널에 “군 레이더가 내뿜는 극저주파(전자파의 일종)와 백혈병의 상관관계는 논란이 많은 부분”이라며 “다만 해외 군 당국의 연구 결과와 A씨의 특수한 근무 상황을 고려하면 위험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군인 재해보상법에 따르면,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기준은 ‘상당한 인과관계’다. A씨 측 법률대리를 맡은 박재범 법무법인 금성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군사시설의 경우 인과관계 증명 책임을 진 유족이 근거 자료에 접근할 수 없어 인과관계를 밝히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국방부가 처음부터 유족연금을 줬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공무상 사망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객관적인 근거 자료도 제출하지 않아 일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이번 2심 판결에 대해 상고하지 않았다. 판결 내용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재심의를 거쳐 A씨 유족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단 레이더 전자파와 공무상 사망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원고(A씨)가 근무하면서 레이더 전자파에 노출됐는지 여부”라며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된 것과 레이더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미미하거나 안전하다고 강조한 국방부의 입장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6월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사드 철회 평화회의 주최로 ‘사드기지 정상화 반대, 성주, 김천 주민 상경 투쟁’ 기 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6월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사드 철회 평화회의 주최로 ‘사드기지 정상화 반대, 성주, 김천 주민 상경 투쟁’ 기 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전자파 허용기준 2.8%인데 사망

A씨가 몸담았던 부대는 수도권을 방어하는 공군 방공포대다. 이곳은 패트리엇 레이더를 운용·관리한다. 국방부는 2016년 패트리엇 레이더의 전자파 측정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유해성에 관한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에서다. 당시 패트리엇 레이더 전방 40m의 전력 밀도는 국내법상 인체 노출 허용기준의 2.8%였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A씨와의 법적 공방에서 객관적이고 시의적절한 근거 자료를 꺼내놓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패트리엇 레이더의 유해성이 재점화되면 다른 레이더 기지도 안심하기 힘들 전망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용 중인 그린파인 레이더와 사드 레이더의 출력은 패트리엇보다 더 높다.

군 레이더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공군은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구 장산에 ‘슈퍼 그린파인 레이더’를 설치했다. 일반 그린파인 레이더보다 출력이 높고 탐지거리가 뛰어난 기종이다. 이는 올 상반기에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웅희 장산마을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시사저널에 “공군이 7월 중순에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다시 전자파 측정을 하겠다고 한다”며 “전자기기의 전자파는 최고 출력 상태에서 측정해야 하는데 이번에 과연 그렇게 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 정부는 최근 경북 성주 사드 기지에 대한 정상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성주 주민들은 6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반대 시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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