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 박지원, 지역구 옮기나…부담스런 목포 아닌 해남·완도·진도?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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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판 열하일기’ 2박3일 순례길 코스 목포~해남~완도~진도로 잡혀
‘호남 맹주 자리매김·탈목포 지역구 옮기기’ 민심 정찰?
현실화 할 경우 ‘양지로 피신’ ‘지역구 쇼핑’ 등 비판 직면할 수도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최근 남도지방을 둘러보면서 지방정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전 원장의 여행지 동선에 전남 목포와 해남·완도·진도가 포함되면서다. 목포는 박 전 원장이 내리 국회의원 3선을 한 정치적 텃밭이다. 해남, 완도와 동일 지역구로 묶인 진도는 그의 고향이다. 이에 따라 ‘영원한 현역’을 자처한 박 전 원장이 내후년 22대 총선에 나설 지역구로 목포를 포기하고 해남·완도·진도 출마로 선회한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박 전 원장이 차기 총선에 출마한다는 전제에서다. 

5일 지역정가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목포~해남~완도~진도 지역을 돌며 해당 지역 전현직 단체장은 물론 정치인, 주민, 관광객 등을 두루 만났다. 1일 밤늦게 목포에 도착한 박 전 원장은 목포대교와 고하도가 눈앞에 보이는 대반동 S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해남 송지 미황사를 들른 뒤 땅끝마을 근처 어불항에서 배를 타고 완도로 갔다. 이후 완도에서 저녁식사를한 후 숙소가 있는 진도로 이동했다. 다음날 낮에는 진도 세방낙조와 팽목항을 둘러본 뒤 다시 육지로 나와 해남 두륜산 대흥사를 방문해 주지스님과 차담을 나눈 뒤 상경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이 6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박지원 전 국정원이 6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박 전 원장은 출발하기 전 페이스북에 해남 땅끝마을의 60여 학생들의 초청으로 강연 차 해남으로 간다고 적었다. 상경 후에는 “올 여름엔 해남·완도·진도 관광을 추천한다”며 여행후기를 남겼다. 특히 박 전 원장은 해남, 완도, 진도 곳곳에 대한 견문과 감상을 상세히 기록했다. 마치 조선 후기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칠순잔치) 사절단을 따라가면서 압록강과 북경, 열하를 열하 지방을 다녀온 것을 기록한 ⟪열하일기⟫를 보는 듯 했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수레는 하늘이 낸 물건이로다. 조선은 수레가 다니지 않기에 백성의 살림살이가 가난한 것이다”라고 썼다. 물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박 전 원장은 완도여행에서 “완도는 활력이 넘쳤다. 섬이 곳곳에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김이나 전복 등 양식 어장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다 전체가 ‘돈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강연 차 남도를 다녀온 여행,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지역정가에선 박 전 원장의 남도 순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단순히 강연 목적의 여행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향후 정치행보를 염두에 둔 발걸음이라는 것이다. 해남 명현관 군수를 비롯 완도 신우철 군수, 진도 김희수 군수를 만난 것은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이들 군수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막강한 조직 동원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 정치권의 한 인사는 “만약 박 전 원장이 차기 총선에 출마한다면 지역구를 옮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번 여행도 박 전 원장이 다음 총선에 등판할 지역구 폭을 넓히기 위한 명분 쌓기로 ‘민심 정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막상 출마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 단계에선 측근들도 목포 출마를 극구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명도 높은 거물 정치인에 대한 선호 면에서도 도시보다는 농어촌지역이 더 유리한데다 무엇보다 해당 지역 현역의원과 대항마들의 면면이 상대적으로 약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목포에서 출마할 경우 경쟁 상대는 초선의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다. 정작 김 의원 뒤에는 “후배를 도와 박지원을 손보겠다”고 잔뜩 독을 품고 있는 손혜원 전 의원이 버티고 있다. 만약 다시 목포 출마를 고집할 경우 이른바 ‘손혜원 리스크’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만큼 부담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를 찾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명현관 해남군수와 함께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페이스북
지난 2일 전남 해남 송지 미황사를 찾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명현관 해남군수와 함께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송지초등학교에서 송지지역 초,중,고학생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학생의 정치 참여와 민주시민교육'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페이스북

앞서 지난 2019년 1월,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손 의원과 목포를 지역구로 둔 박 전 원장(당시 20대 국회의원)은 서로 상대를 향해 ‘배신의 아이콘’ ‘투기의 아이콘’이라며 독설을 주고 받았다. 손 의원은 민주당 탈당을 발표한 국회 기자회견에서 “배신의 아이콘이자 노회한 정치인을 물리치는 방법이 있다면, 제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의 뜻이 있는 후보의 유세차에 함께 타겠다”고 말했다. 손 전 의원의 이 발언은 박 전 원장을 낙선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에 박 전 원장은 “섞이고 싶지 않다. 어둠 속에서도 기차는 달린다”며 “제발 손 의원에 대해 질문하지 말라. 저는 지금 떨고 있다”고 했다. 이를 놓고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 의원이 먼저 휴전을 선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 손 전 의원이 6.1지방선거에서도 특정후보 지지 유세에 나서는 등 목포 정치판에서 발을 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야권의 한 인사는 “현재 목포의 여론이 김원이 의원에게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 목포 출마설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고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한쪽에서는 민주당의 심장부인 호남이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로 정치적 공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무주공산 격인 호남맹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제기된 정치권의 가설이 현실화된다면 지역구 쇼핑 논란은 물론 입신양명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손쉽게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양지로 피신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에도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박 전 원장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등원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하방한 그는 2010년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3선을 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생당 후보로 다시 목포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김원이 후보에게 패하며 결국 낙선했다. 여전히 화제성이 뛰어나긴 하지만 고령의 나이인지라 다음 총선 출마도 불투명하고 민생당도 원외정당으로 전락했기에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이라는 추측이 돌았다. 그러나 일단 박 전 원장은 '영원한 현역'을 선언하며 정계에 간접적으로나마 남아있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문재인정부에서 35대 국정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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