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글로벌 ‘R공포’에 ‘새판 짜기’ 돌입하나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7 14: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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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환율·고금리…2분기 영업 실적도 ‘안갯속’
한국은행 ‘빅스텝’ 이어 美 연준 ‘울트라 빅스텝’ 가능성도

재계에 ‘R(Recession·경기 침체)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고물가·고환율·고금리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주가는 연일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떠받쳐 왔던 무역수지 역시 최근 적자로 돌아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은행이 세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은 ‘태풍’이 불어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불안감은 기업들의 2분기 실적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주요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늘어났지만, 글로벌 악재가 줄줄이 겹치면서 실적 둔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상승세가 꺾이면서 하반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재계는 ‘새판 짜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룹별로 경영 전략을 재정비하면서 정면돌파에 나섰지만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3연속 기준금리 인상에 재계 비상

우선 주목되는 것이 금리다. 한국은행이 최근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재계의 고민 역시 깊어지고 있다. 한은은 7월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1999년 기준금리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기준금리가 연 2.25%를 기록한 것 역시 2014년 8월 이후 처음이다. 한은은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이달까지 세 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3연속 인상’ 기록도 새로 썼다. 

하지만 향후 전망이 만만치 않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의 예상(8.8%)을 깨고 9.1%까지 치솟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7월말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0%포인트 올리는 ‘울트라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 역시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기업 경영환경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먼저 자금조달이 어려워진다. 기업의 경우 투자와 경영을 위해 자금을 융통하는데, 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가 높아지면 각종 금융 비용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한미 정책금리 역전 도래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금통위의 빅스텝에 따라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약 4조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은 당분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긴축 경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악화된 대내외 경제 여건 속에서 기업의 투자마저 줄어들 경우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기업들의 2분기(4~6월) 실적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7월7일 나란히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차질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흑자를 달성하면서 선방했지만 1분기까지 이어지던 실적 상승세가 꺾이면서 하반기에 대한 불안감도 공존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올 2분기 연결기준 잠정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77조원, 영업이익은 14조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94%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이어졌던 ‘매출 신기록 릴레이’를 이어가지 못했다. 영업이익 역시 한 해 전보다 11.38% 늘어났으나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0.85% 떨어지면서 상승 동력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DS부문(반도체)의 경우 디램(DRAM) 출하량이 증가하면서 전 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트(완성품) 부문 판매 부진이 실적 정체를 초래했다. 또 물가와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 소득이 줄었고, 이에 따라 TV·스마트폰 등의 수요가 감소한 것으로 재계와 증권가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도 부문별 수익성 등락이 혼재하면서, 비슷한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성장 둔화가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18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 터(SGBAC)를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18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 터(SGBAC)를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아직 흑자이긴 한데…성장 둔화 걱정”

올 1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한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다 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올 2분기 매출은 19조4720억원, 영업이익은 791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가량 증가했지만, 지난 1분기와 비교하면 약 19% 줄어들었다. 영업이익 역시 작년 동기 대비 약 12% 감소했고, 직전 분기 대비로는 58%가량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TV 판매 부진을 실적 하락 이유로 꼽는다.

일상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TV 시청시간이 줄고, 전 세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TV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아울러 TV 가격 하락과 경쟁 심화로 마케팅·재고 정리 비용이 증가한 점도 수익성이 악화된 한 원인으로 꼽힌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하반기에도 LG전자의 TV, 가전 등 주요 사업 부문의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물론 일각에서는 적자를 봤던 전장(자동차 전기장치) 사업의 이익 폭이 크게 개선되면서 하반기 LG전자의 전체 영업이익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으로 광고·커머스 등 주요 사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2분기 실적 성장세도 둔화하기 시작했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일상 회복으로 그간 누려온 비대면 수혜가 점차 줄어들면서 양사의 고성장세가 꺾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융정보분석 업체 에프앤가이드 전망에 따르면 네이버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36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2분기 매출액은 2조29억원으로 20.4% 늘어날 전망이다. 같은 기간 카카오는 영업이익 1900억원, 매출액 1조844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동기에 비해 각각 16.8%, 36.4% 늘어난 수치다.

양사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지만 시장 추정치를 넘지는 못했다. 광고·커머스 등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해당 사업의 수익성이 약화됐고, 검색 플랫폼 매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한다. 특히 네이버의 경우 금리 상승과 경기 위축 등 불확실한 매크로(거시) 환경이 핵심 사업인 광고와 커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광고시장 둔화에 따라 올해 네이버의 검색 플랫폼 매출 추정치를 기존 3조7200억원에서 3조64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카카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플랫폼 부문인 톡비즈(광고형·거래형), 포털비즈는 종전 전망치 대비 부진한 반면, 페이·모빌리티의 호조로 2분기에 흑자를 기록했다. 콘텐츠 부문은 스토리, 게임 등을 중심으로 종전 목표치에 미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인건비, 마케팅비 등 정책성 투자 비용이 예상치를 초과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월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위기 대응책에 골몰하는 기업들

철근 등 건설 원자재값 상승 여파로 올 2분기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등 증권사들의 실적 추정이 가능한 상장 건설사 10곳의 2분기 합산 영업이익(연결재무제표 기준)은 1조1354억원이다. 지난해 2분기보다 1.2% 늘어난 규모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국내 주택 경기 호황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4%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약화됐다. 올해 2분기 매출과 순이익도 17조3750억원, 82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6%, 18.7% 증가해 전년 증가율(14.1%, 53.8%)을 밑돌았다.

증권 업계에서는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주택 착공과 분양이 지연되면서 상당수 건설사가 실적 쇼크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의 주택 착공 규모는 3만494가구로 1년 전(5만2407가구)보다 40% 넘게 축소됐다. 이 때문에 대우건설과 DL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은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하락폭이 가장 큰 건설사는 DL이앤씨로,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2290억원) 대비 35.2% 급감했다.

LG전자가 올해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7월7일 서울 여의도 LG전자 사옥 모습ⓒ연합뉴스
LG전자가 올해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7월7일 서울 여의도 LG전자 사옥 모습ⓒ연합뉴스

재계는 하반기에도 국내외 경영환경이 불투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은 사실상 비상경영에 돌입하면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전자 계열사 사장단 25명을 한자리에 모아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SK, LG 등 기업들 역시 일제히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대외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 현안을 점검하고 위기 극복 방안을 협의했다. 현대차는 이달 중 국내에서 글로벌 권역본부장 회의를 열고 글로벌 전체 전략을 점검한다.

중소기업들은 자체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대책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중소기업 동향 6월호’ 자료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국 금리 인상, 물가·환율 상승세 등 환경적 위험 요인은 중소기업의 자체 노력만으로는 단기적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며 “정책 당국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중소기업 업계를 대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중기중앙회는 “금리가 지속해서 인상된다면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처럼 건실한 중소기업도 외부 요인에 의한 부도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이는 실물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시중은행들이 이번 기준금리 인상을 계기로 중소기업에 과도하게 불리한 대출 조건을 적용하지 않도록 금융권의 자금 공급 상황을 점검하고, 금융 지원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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