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뒷맛만 남긴 ‘전남 송강고 교명 변경’ 주민설명회
  • 정성환·배윤영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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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쟁 비화’ 전남1호 공립대안학교 담양 ‘송강고→솔가람고’ 개명 논란
주민은 없고, 종친과 후손 간 고성만 오간 주민설명회…“더 이상 송강 거론 말라”
일부 종친 “송강 정철 굴레 못 벗어난 속임수 개명…솔가람고로 변경도 반대”
지난해 3월 2일 개교한 전남 1호 공립대안학교인 담양의 송강고등학교 교문 현판 자리가 교명 논란에 휩싸여 1년 넘게 비어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역사 논쟁으로까지 비화한 전남 담양에 있는 공립 대안학교인 송강고등학교 교명 변경(개명)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솔가람고라는 새 교명 추진에 대해 일부 종친들이 ‘속임수 교명 변경’이라고 다시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소나무(松)를 지칭하는 ‘솔’과 강(江)의 옛말인 ‘가람’을 합성해 만든 솔가람고도 송강(松江) 정철을 연상시키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난해 3월 2일 개교한 전남 1호 공립대안학교인 담양의 송강고등학교 교문 현판 자리가 교명 논란에 휩싸여 1년 넘게 비어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역사 논쟁으로까지 비화한 전남 담양에 있는 공립 대안학교인 송강고등학교 교명 변경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조선 선조 재임 시기인 기축년(1589년) 위관(우의정)의 직책을 맡은 송강 정철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6개 문중은 송강고가 정철을 연상케 한다며 학교 이름을 바꿀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그런데 이를 수용한 학교 측이 ‘솔가람고’로 교명 변경(개명)을 추진하자 속임수 개명이라며 다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소나무(松)를 지칭하는 ‘솔’과 강(江)의 옛말인 ‘가람’을 합성해 만든 솔가람고도 송강(松江) 정철을 연상시키기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7월 13일 오후, 전남 담양 송강고등학교 1층 시청각실. 학부모, 학교와 지역 유관기관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교명 개명을 위한 주민설명회(공청회)가 열렸다. 이번 설명회는 ‘교명 변경’에 대한 전반적인 추진과정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수용 가능한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검토하기 위해 마련됐다. 

송강고는 이날 설명회에서 지난 3월부터 추진해온 교명 개명 작업 과정과 솔가람고로 개명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학교 측은 교명 변경 추진 사유로 △조선 기축사화와 관련된 피해 가문의 지속적인 항의 △역사적 논란에 대한 학교 구성원(교직원, 재학생, 학부모)들의 재정립 요구 △민관협업형 공립대안학교 설립 취지와 특성에 맞는 학교명 수립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 설명회에서는 ‘꼼수 개명’ 논란이 불을 보듯 예상됐음에도 학교의 설명만 있었을 뿐 일부 참석자들의 의견과 이의 제기에 ‘추진위를 구성해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 ‘전남도교육청 교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반복할 뿐 적절한 답변이 이루어지지 못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뒤이은 자유토론에서는 430여년 전 기축옥사 당시 피해를 입었다는 광산이씨 등 종친들과 정철 후손 간에 한때 고성이 오가며 설명회장을 일순간 긴장시키는 일도 발생했다.

송강 정철의 한 후손이 준비해온 ‘송강 정철 동인들의 함정에 빠지다’ 등의 PPT자료를 통해 정철에 대한 역사왜곡 부문을 설명하고 있는 가운데 광산 이씨 등 종친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역사 논쟁으로까지 비화한 전남 담양에 있는 공립 대안학교인 송강고등학교 교명 변경(개명)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7월 13일 오후 전남 담양 송강고등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송강 정철의 한 후손이 준비해온 ‘송강 정철 동인들의 함정에 빠지다’ 등의 PPT자료를 통해 정철에 대한 역사왜곡 부문을 설명하고 있는 가운데 광산 이씨 등 종친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날 송강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놓고 정철의 후손들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한 후손은 준비해온 ‘송강 정철 동인들의 함정에 빠지다’ 등 제목의 영상자료(PPT)를 틀며 정철에 대한 역사왜곡 부문을 조목조목 짚었다. 또 다른 후손인 정은주 초당문화예술재단 원장은 “송강고 개명과 관련 더 이상 송강 선생을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역사논쟁은 현재 진행 중이므로 이제 그만하자”고 호소했다. 

정 원장은 그러면서 “정철이 기축옥사 때 전라도인을 1000명 넘게 죽였다는 내용은 터무니없고 ‘사자명예훼손’이나 다름없다”면서 “그동안 송강 정철에 대한 역사적 왜곡과 폄훼 등이 많았다. 이제는 후손으로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잘못된 내용으로 조상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발생한다면 법적 소송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에서 온 일부 종친들은 솔가람고로의 개명을 반대했다. 발언에 나선 광산이씨 도문중 이남원 총무이사는 “추호도 송강에 대한 나쁜 감정의 발로에서 학교 명칭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며 “역사적으로 송강은 문학적 재능이 높게 평가된 반면, 정치인으로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호인 ‘송강’을 전남1호 공립 대안학교의 명칭으로 사용은 부적절해 개명을 요청했는데, 변경될 교명이 결국 송강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 속임수 개명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고 성토했다. 솔가람은 송강을 우리말로 풀어 쓴 것으로 솔가람고는 정철의 호가 연상되는 도로 송강고라는 것이다. 

개교 당시부터 광산 이씨를 비롯해 나주 나씨, 문화 류씨, 고성 정씨, 전주 이씨, 창영 조씨 종친회 등은 송강고 교명 사용을 강력 반대해왔다. 이들은 기축옥사를 주도한 정철로 인해 호남의 무수한 인재들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역사를 감안하면 그의 호를 딴 교명 사용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들은 학교를 수차례 항의 방문하는 한편, 전남교육청과 전남도의회, 담양군에 교명 개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역사 논쟁으로까지 비화한 전남 담양에 있는 공립 대안학교인 송강고등학교 교명 변경(개명)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7월 13일 오후 전남 담양 송강고등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광산 이씨 문중 이남원(오른쪽 첫 번째) 총무이사가 솔가람고로의 개명 부당성을 설명하고 있는 가운데 송강 정철 후손인 정은주(맨 왼쪽) 초당문화예술재단 원장이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역사 논쟁으로까지 비화한 전남 담양에 있는 공립 대안학교인 송강고등학교 교명 변경(개명)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7월 13일 오후 전남 담양 송강고등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광산 이씨 문중 이남원(오른쪽 첫 번째) 총무이사가 솔가람고로의 개명 부당성을 설명하고 있는 가운데 송강 정철 후손인 정은주(맨 왼쪽) 초당문화예술재단 원장이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에 교명변경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단한 송강고는 올해 3월 교명 변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학교 측은 변경할 학교명을 자체 공모해 마을이름에서 따온 양지고, 담양의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의미의 담쟁이고, 소나무와 강의 옛이름인 솔가람고 가운데 송강고를 대체할 교명들에 대한 여론 수렴을 했다. 그 결과, 솔가람고(44%)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어 양지고(21%), 담쟁이고(14%) 순이었다. 학교 관계자는 “공청회를 가진 뒤 전남도교육청의 교명 개명 관련 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 내년 3월 1일부터 교명을 솔가람고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광산이씨 등 종친회에서 솔가람이 송강을 우리말로 풀어쓴 속임수 개명이라며 반발함에 따라 송강고 교명 변경을 둘러싼 역사논쟁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송강고는 담양군 봉산면 양지리 옛 봉산초 양지분교에 교육부 특별교부금 40억원, 도교육청 예산 28억원, 담양군청 예산 10억원 등 총 78억원을 재원으로 지난해 3월 개교했다. 재학생은 모두 4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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