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어록 “아베 계파, 13명이었는데 내가 88명으로 키워줬다”
  • 유재순 재일 작가 (yjs2009@jpnews.kr)
  • 승인 2022.07.17 10: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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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암살로 논란의 한복판에 선 통일교와 일본 정치 커넥션 추적
암살범 “어머니, 전 재산 통일교에 헌금하고 집안 풍비박산…형은 자살”

요즘 일본 열도가 대단히 뒤숭숭하다. 왜냐하면 고(故)아베 신조(安倍晋三·향년 67세) 전 총리와 통일교 때문이다. 7월8일 오전 11시 반경, 나라현 야마토 사이다이지역 광장에서 아베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7월10일 실시) 유세 연설을 하던 중, 해상자위대원 출신 한 남성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아베가 누구인가? 자민당 내 최대 파벌(93명)의 수장이자, 두 차례에 걸쳐 8년9개월 동안 최장기 집권하고, 총리직을 퇴임한 후에도 스가→기시다로 이어지는 두 총리의 내각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던 절대 권력자가 아니었던가. 그래서였는지 일본 국민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즉사’에 가까운 비극적인 죽음이었기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국민도 많았다. 한마디로 일본 열도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사실 7월8일 피격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베에 대한 일본 국민의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가 장기집권하는 동안 국내 정치와 경제, 그리고 외교 문제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일본을 경제대국에서 중진국보다 못한 후진국으로 후퇴시켜 놓은 장본인이 바로 아베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이나 택시운전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의에 찬 표정으로 아베 비난 일색이었다.

ⓒD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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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하면 자위대가 선제공격” 입장

또한 그가 참의원 선거 유세 지원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한 이유가,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헌법을 개정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2015년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한, 일명 안보법 개정에 이어 자위대를 육해공군 군대(현 일본 헌법에는 무장할 수 있는 육해공군을 보유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로 격상시키고 전장에 나갈 수 있는 군대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

실제로 아베 전 총리는 만약 북한이 일본 쪽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래서 일본 해역에 근접한다면 일본 자위대가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도록 일본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해 왔다. 그런 국수주의의 상징이었던 최고위급 거물 정치인이 대낮에 총격을 받아 사망하니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힐 수밖에.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41)의 범행동기가 다시 한번 일본 열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범인이 통일교 때문에 아베를 살해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청이 밝힌 범행 동기는 이렇다.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통일교 신자가 된 것은 1998년. 그녀는 통일교에 빠져 집안의 재산은 물론 남편이 유산으로 남겨준 건설회사의 자금까지도 모두 통일교에 헌금으로 바쳤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가기 위해 며칠씩 집을 비우는 것도 예사였고, 때문에 야마가미의 가족들은 늘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친척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야마가미나 그의 형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급기야 장애를 가지고 있던 범인의 형이 자살하고, 야마가미 자신도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해상자위대에 자원 입대한 것도 생활고 때문이었다는 것. 그래도 그의 어머니는 통일교를 그만두지 않았다고 한다.

ⓒDP 연합
아베 전 총리는 통일교 단체인 천주평화연합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2021년 9월 경기도 가평군 청심평화 월드센터에서 개최한 ‘신통일 한국 안착을 위한 싱크탱크 2022’ 출범식에서 영상 연설을 했다.ⓒ피스링크TV

아베, 인천에서 열린 통일교 관련 행사 때 영상 연설

이 때문에 야마가미는 집안을 풍비박산 낸 통일교를 증오하게 되었고, 그 증오심은 점점 통일교 지도자를 자신이 직접 단죄할 수밖에 없다는 결심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통일교 지도자는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에 가는 것이 여의치 않자 단죄 대상을 아베로 돌렸다. 그 이유는 통일교가 일본에 확산될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은 이가 바로 아베라고 생각했기 때문. 범인은 통일교에 대해 조사하던 중 작년 9월, 통일교 단체인 천주평화연합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 ‘신통일 한국 안착을 위한 싱크탱크 2022 출범식’에서, 아베가 영상으로 기조연설을 한 것을 보고 살해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정치적 신조 때문에 아베를 살해한 것이 아니다. 원래 타깃은 통일교 최고 간부였지만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기시 노부스케 때부터 통일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베를 선택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이 같은 보도에 일본 국민은 거리에서 비명횡사한 것도 모자라 통일교와 관련이 있어 아베가 살해당했다며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범인의 주장을 납득하는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7월12일 장례식이 끝난 뒤 일본 언론들은 앞다퉈 아베와 통일교, 통일교와 기시 노부스케의 관계에 대해 매일같이 파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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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27일 통일교 행사 상에 등장한 고 문선명 교주와 부인 한학자 총재ⓒ뉴시스

1960년대 문선명 교주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의기투합

통일교가 정식으로 일본에 설립된 것은 1959년. 한국에서의 창설보다 5년 뒤였다. 그 후 1968년 1월 국제승공연합이 한국에서 창설됐고, 이어 4월에는 일본국제승공연합이 설립됐다. 이때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이 단체에 가담했다. 당시 기시는 오래전부터 정치가이자 사회사업가, 기업가이기도 한 사사카와 료이치로부터 문선명 교주를 소개받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터였다. 기시, 사사카와는 모두 A급 전범 출신으로 반공을 모토로 하는 우익 정치인들이었다. 이런 연고로 같은 가치관을 지닌 문선명 교주와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기시와 사사카와 같은 우익 정치인들 덕분에 통일교는 일본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고, 다른 정치인들과도 원만하게 관계를 확대시켜 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통일교가 일본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력을 해준 이가 다름 아닌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였던 것이다. 1974년 5월, 1976년 12월에 도쿄에서 개최된 문선명의 강연회 ‘희망의 날 만찬회’는 기시가 두 번 모두 명예실행위원장을 맡아 지원했다. 기시 전 총리는 1984년에도 통일교가 개최한 ‘세계언론인회의’ 의장을 맡았고 또 문선명과 함께 대담을 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문선명이 미국에서 탈세 의혹으로 투옥됐을 때 그의 석방을 탄원하는 의견서를 연명 형식으로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기시 저택과 통일교 본부가 가까이에 있어 기시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일본 세계일보의 기록도 있다. 이렇게 기시는 1987년 사망할 때까지 통일교와 긴밀한 교류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 후에는 다른 거물 정치인들과의 교류가 있다. 1993년 통일교에서 발행된 문선명 어록 제191권에 구체적인 일본 정치인의 이름이 연달아 나온다.

“이것은 역사적 비밀인데 본래는 나카소네(전 총리)와 가깝습니다. 40일마다 한 번씩 내가 정치 배경에 대한 것을 전부 문서로 보고해 방향을 제시해 왔어요.”

“아베상은 선거할 때 계파 의석수가 13석밖에 안 됐어요. 이것을 내가 88명까지 전부 교육해 키워준 것이에요.”

문선명 교주가 통일교와 아베가 얼마만큼 밀착되어 있는지 스스로 증언하고 있는 기록이다. 시사주간지 ‘주간현대(1999년 2월27일자)’는 아예 일본 공안으로부터 극비 자료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승공연합통일교’와 관계를 맺고 있는 현직 국회의원 128명의 리스트를 폭로하기도 했다. 이 리스트에는 당시 오부치 총리, 고무라 외무장관, 세키타니 건설장관, 요사노 통산성장관 등 거물 정치인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런가 하면 주간아사히(2015년 10월23일자)는 이번 살해 사건의 범행 동기가 되고 있는 아베의 종교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아베 정권을 지배하는 종교’라는 타이틀로, “아베 정권은 극우적인 신도정치연맹, 일본회의, 그리고 통일교가 지원하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잡지 ‘신조 45’는 2016년 11월 개최된 아베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담도 사실은 통일교가 주선해 주었다고 보도했다. 이렇듯 통일교와 아베를 포함한 일본 정치인들의 밀착관계는 일부 일본 언론과 일본 통일교가 부인하고 있지만, 그 정황 증거가 차고 넘친다.

문제는 정치인들과의 유착관계뿐만 아니라 ‘영감상법’으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살해범 야마가미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통일교에 빠져 집안의 전 재산을 헌금으로 바치고 가정이 풍비박산돼 가족 관계가 해체되는 등의 부작용이 대단히 심하다는 것이다.

ⓒDP 연합
1957년 기시 노부스케 신임 총리(가운데)와 그가 품에 안은 아베 신조(오른쪽)의 아이 때 모습ⓒAP 연합 

“34년간 피해액 3만4000건에 1200억 엔 접수”

7월11일, 다나카 도미히로 일본 통일교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범인이 종교단체와 우호단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오해해 아베를 살해한 것 같다”고 발표하자, 피해자 모임인 ‘전국 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가 즉각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통일교와 정치권의 지지 표명, 유착관계는 자제해야 한다. 1987~2021년까지 변호사연락회에 접수된 피해 액수가 자그마치 1237억 엔(3만4537건)으로, 최근 5년간만 해도 54억 엔(580건)에 달한다.”

그러면서 2020년 2월 있었던 판결도 소개했다. “헌금 요구는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부당한 방법이다. 피해자에게 470만 엔을 반환하라”는 판결도 있었다는 것. 말하자면 통일교에 의한 피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40대 일본 여성은, 통일교 신자인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한국 남성과 합동결혼식을 올리고 살았지만 남편의 폭력성 때문에 이혼했다고 전하면서, 어머니는 문선명의 신체로 만들어진 미륵불을 수천만 엔에 사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이 여성은 “살인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지만 범인의 그 심정만큼은 이해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통일교로 인해 피해를 본 일본인들은 아베와의 커넥션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들은 작년에 아베가 ‘신통일 한국 안착을 위한 싱크탱크 2022 출범식’에 한학자 총재를 존경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보내자, 정치인으로서 자제해 달라는 항의문을 아베 사무실로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단체 사무실로 반환돼 왔다는 것.

한편, 통일교와 아베가 밀착관계를 계속해온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생전 문선명이 북한의 김일석 주석을 만났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아베 입장에서는 북한 관련 사소한 정보 하나라도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과 관련해서는 통일교가 아베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외 또 하나의 유착 동기는 한일 해협을 잇는 ‘해저터널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1980년대부터 통일교가 은밀히 진행해 오던 프로젝트였다. 도쿄에서부터 북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달리는 것. 물류 운송이 주목적이다. 이 계획은 성사만 된다면 일본 우익 정치 세력에게 반가운 일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처럼 한반도를 거쳐 저 넓은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꿈을 다시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야심만만하던 아베는 사망했다. 그동안 온건파로 한일 관계의 진전에 기대를 모았던 기시다 현 총리는 극우 성향의 아베파 의원들로부터 압력을 받았는지, 아베의 유지를 받들어 빠른 시일 내에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일명 평화헌법으로 육해공군 보유를 금지하고 무장하는 것조차 금지한 일본 헌법 9조 제1, 2항이 역설적이게도 아베의 피살로 더욱 앞당겨지는 모양새다. 최악의 상황인 한일 관계가 이제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도 불투명하게 되어 버렸다.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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