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당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민주당 [쓴소리 곧은 소리]
  •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8 12: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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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8월 전당대회 앞두고 팬덤정치 몰두…‘개딸들과의 동맹’ 선언
트럼프는 극렬 지지자 믿고 재기 모색하나 출마 반대 여론 60% 넘어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아프리카보다 못한 최악의 후진정치가 드러났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2021년 1월 대선 때 성난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이 몽둥이와 총기를 들고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초유의 사건 말이다. 이는 미국 정치사(史)의 치욕이자 팬덤정치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 대사건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도 8·28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팬덤정치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과연 민주당은 팬덤정치의 늪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8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8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박지현 “폭력적 팬덤, 민주당과 이재명에 다 위험”

민주당은 7월17~19일 후보등록과 7월29일 예비경선(컷오프)을 거쳐 8월28일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 대표와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당 대표에는 이재명 후보를 비롯한 7명의 후보가, 5명을 선출하는 최고위원 선거엔 15명가량이 ‘친(親)이재명계’(친명계)와 ‘반(反)이재명계’(친문계) 두 쪽으로 갈라져 혈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윤영찬·고민정 의원 등 친문계 후보들은 연일 이재명 후보 측을 향해 ‘정치 훌리건’ ‘폭력적 팬덤’ ‘옹졸한 기득권 세력’ 같은 고강도 표현으로 맹비난하고 있다. 이른바 ‘개딸’들로부터 1만 통이 넘는 문자폭탄을 받았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과거 송영길 대표를 망치로 내리친 분이 민주당 지지자였다는 것을 잊지 말라”면서 “폭력적 팬덤은 민주당에도 위험하고 이재명 후보에게도 위험하다. 팬덤정치와 결별하라”고 촉구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민주당의 팬덤 세력을 겨냥해 ‘빠시즘’(빠+파시즘), ‘권력의 숭배자들’ ‘권력 중독자들’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요즘 팬덤정치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 민주당의 상당수 의원이 불과 얼마 전까지 ‘문빠’ ‘대깨문’이라고 비판받았던 팬덤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구(舊)팬덤이 신(新)팬덤을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신구 팬덤 간 대결은 무더운 여름을 지나 8월28일 전당대회 당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 측 팬덤 세력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있다. “XX놈아 얼른 꺼져. XX통을 뽀개버려!” 이른바 개딸이 이 후보 측을 비판한 신동근 의원에게 보낸 문자폭탄의 일부다. 이재명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과도한 표현은 공격의 빌미가 된다”며 자제를 당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 7월9일 새벽 트위터에 혀 짧은 표현으로 “또금만 더 해두때여”(조금만 더 지지해 주세요), “참~잘 해떠요(했어요)”라며 지원을 요청했고, 다음 날인 10일에는 팬덤 세력의 본산인 광주를 방문했으며, 다시 11일 새벽 트위터에 “주인 노릇 잘해야 주인 대접 받는다”며 권리당원 입당을 독려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 다음 날인 3월10일 개딸들이 주도해 만들어 지금은 회원 20만 명이 넘는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대표직을 수락하면서 ‘개딸들과의 동맹’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 모두 손잡고 동막골 같은 행복한 마을 한번 만들어 봅시다. 개딸, 냥아, 개삼촌, 개이모, 개언니, 개형, 그리고 개혁동지와 당원동지 시민 여러분 모두 깊이 사랑합니다!” 이후 개딸들은 이재명을 ‘재명아빠’ ‘잼파파’(재명+파파), ‘친칠라’ (Chinchilla·남미의 설치류)라고 불렀고, 검수완박을 위해 위장탈당한 민형배 의원에게는 1004원(천사)의 후원금으로 돈쭐을 내고, 검수완박에 반대한 양향자 의원에게는 18원을 보내는 등 좌표찍기와 융단폭격으로 팬덤정치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재명 대세론’에 편승하려는 팬덤 동조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청래·서영교·장경태 의원 등 대다수의 최고위원 출마자는 ‘이재명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20여 년간 적극적 지지층→열성 지지층→극렬 지지층이 당을 주도하면서 팬덤당원, 팬덤정당, 팬덤정치인이 넘쳐난다는 당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노사모·박사모·친문정치, 得 아니라 毒

팬덤정당이 위험한 이유는 국민정당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기 때문이다. 팬덤정당의 주류가 되면 강력한 배타성과 폭력성을 지니게 된다. 쓴소리나 비판 세력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차별 공격을 가하면서 오로지 내 편만을 지지하는 우상주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극단주의적 선동정치 성향을 갖는다. 하바드대 캐스 선스타인(C. Sunstein) 교수는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GOING TO EXTREMES)》에서 팬덤정치 최악의 폐해는 진실을 초토화하는 데 있다고 경고했다. 팬덤정치는 끼리끼리만 뭉치는 ‘집단 극단화’를 통해 폭력적 반지성주의를 부추켜 거짓의 왕국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사실 팬덤(fandom)이라는 어원 자체가 광적인(fan)+왕국(dom)이라는 뜻이다.

팬덤정치는 처음에는 득(得)이 되지만 나중에는 독(毒)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노사모 정치는 2008년 대선에서 패배했고, 박사모 정치는 2017년 탄핵으로 끝났으며, 친문 정치는 2022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의 팬덤통치도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지금 이재명 후보 진영은 팬덤이 당권 장악에 유리하나 대권 탈환에는 불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세를 판가름하는 중도층이 도망가기 때문이다. 오늘날 팬덤층이 강한 정치인일수록 스스로의 벽(壁) 속에 포위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와 강성 지도부가 당을 장악할 경우 윤석열 정부와 사사건건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대장동 수사, 강제 북송 수사, 검찰 수사 등등…. 조언컨대, 이재명 후보는 당권이 아니라 대권이 목표라면, 과격한 팬덤정치와 분명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극렬 지지자들의 힘을 믿고 2024년 대선에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지만, 바로 그런 극렬 지지자들 때문에 그의 출마를 반대하는 여론이 60%를 넘어서고 있다. 민주당이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려면, 깨어있는 ‘깨당원’과 중도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8·28 전당대회는 이재명 후보와 경쟁자들과 당원들이 합심해 폐쇄적인 팬덤정치의 틀을 깨고 변혁적 리더십을 창출해야 밝은 미래가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br>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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