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친문의 방식으로 친문 누른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2 13: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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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지켰던 ‘20만 온라인 당원’ 키울 ‘전자 민주주의’ 전면에 내세운 배경은?
‘사법 리스크’ 공격엔 의도된 무대응…‘어대명’ 대세론 관리에만 주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헌절인 7월17일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의원은 “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며 “첫 시작이 ‘이기는 민주당’을 만드는 것”이라며 8·28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졌다. 이 의원은 이날 출마선언문을 통해 핵심 메시지를 발신하고, 이후 공개 일정을 최소화하며 의도된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불필요한 확전을 피하고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으로 불리는 대세론을 관리해 나가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해야 할 말은 이날 다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출마선언문을 통해 세 가지 핵심 메시지를 발신했다. 언론과 정치권이 가장 주목한 것은 두 가지다. 우선 ‘명분’이다.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명분인데, 지금 이 의원에게는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이 의원은 대선 패배 후 130일 만에, 당은 패하고 자신은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6월 지방선거 이후 46일 만에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우리 정당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을 향한 ‘사법 리스크’를 막기 위해 당 대표직이라는 방탄복을 입으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책임과 성찰을 건너뛰고 당 대표직에 나서는 것에 대한 정치적 명분이 취약하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대표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대표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명분 없는 출마, 예상된 반발, 의도된 침묵

이 의원은 출마선언문을 통해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 회피가 아니라 문제 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책임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선언이다. 정면 돌파의 명분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당 대표직에 대한 그의 태도다. 이 의원은 “당 대표를 권력으로 보면 욕망이고, 책임으로 여기면 헌신”이라고 했다. 또 다른 명분도 태도다. “이기는 민주당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 책임지는 행동”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정면 돌파를 시도했지만, 메시지 발신의 효과는 썩 좋지 않았다. 다른 당권 주자들은 물론 진보언론들조차 사설을 통해 매서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치권이 가장 주목한 메시지는 차기 총선의 ‘공천’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의원은 “선거마다 유령처럼 떠도는 ‘계파공천’ ‘사천’ ‘공천 학살’이란 단어는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체제에서 공천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를 하는 친문(親문재인)계를 향한 화해의 제스처를 확실히 취한 것이다. 

친문계는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권 경쟁자인 설훈 의원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이 의원이 차기 총선 공천권을 갖게 되면 공천 학살 이상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당권 주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의원은 ‘통합의 정치’와 ‘시스템 공천의 강화’를 말했지만, 당에서는 ‘분당’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역시 성공적이지 못한 메시지 발신이다. 

이 의원과 친명(親이재명)계는 과연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숙고에 숙고를 거쳤을 출마선언문이다. 그렇다면 방어적 메시지 말고 출마선언문의 핵심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이 의원은 “전자 민주주의로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당원의 지위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는 유일한 길은 국민·당원과의 직접 소통, 국민과 당원의 적극 참여”라면서 이를 ‘혁신하는 민주당’이라고 정의했다. 

이 의원의 이런 구상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처음 도입한 ‘온라인 당원’과 ‘네트워크 정당’을 닮아있다. 당시 민주당에 가입한 ‘10만 온라인 당원’은 문 전 대통령을 고비 때마다 구하는 ‘문재인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3·9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에는 20만 명에 달하는 권리당원이 한꺼번에 가입했다. 이들 중에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2030세대 여성과 40대 지지자 등 이 의원 지지층 비율이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의원은 왜 지금 ‘소통 정당’을 말하는 것일까. 그가 그리는 큰 그림은 과연 무엇일까. ‘이재명은 합니다’의 진짜 목적어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이 살펴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5년 9월7일 당 대표 시절 ‘네트워크 정당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5년 9월7일 당 대표 시절 ‘네트워크 정당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은 왜 지금 ‘전자 민주주의’를 강조할까

이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많은 분들이 ‘여심’(여의도 국회의원), 당심, 민심의 괴리를 걱정한다”며 “민주당에 ‘민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뼈아프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이 의원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의 해결책은 뭘까. 더 많은 민주주의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과 당원, 지지자 간 차이를 좁히는 방법은 민주주의 강화뿐”이라면서 “민주당을 ‘누구나 당원 하고 싶은 정당’으로 혁신하고, 국민 속에서 여남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하는 소통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 해법”이라고 했다. 

이 의원의 소통 정당 구축 방법론은 ‘문재인의 길’과 맞닿아 있다. 문 전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네트워크 정당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온라인 당원 가입 시스템을 만들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우리 당은) 아래로는 풀뿌리 대중 기반이 없는 불임 정당이고, 위로는 정치 자영업자들의 담합 정당”이라는 발언을 했다. “당이 시민과 분리됐다”는 문제의식이 컸다. 

온라인 정당으로의 변모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며 폭발력을 보였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이들과 디지털 정당이란 플랫폼이 결합하자 폭발력은 예상을 웃돌았다. 당시 10만 명에 달하는 새로운 당원이 새로운 물결을 타고 유입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폐쇄적이었던 민주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좀 더 수평적으로 변화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친문’ 성향의 온라인 당원들은 뚜렷한 동질성을 가진 만큼 상대에 대한 배타성도 강하게 드러냈다. ‘친노 패권주의’란 말이 한동안 민주당에서 유령처럼 떠돌게 된 하나의 이유였다. 

‘이재명의 길’은 ‘문재인의 길’과는 무엇이 같고 다를까. 이 의원에게는 문 전 대통령 부럽지 않을 강력한 팬덤이 존재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늘 중요한 것은 구체성에 있다. 이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당원투표 상설화, 온라인 당원청원제, 지역위원회별 당원총회 정례화 등 당원 소통창구를 늘리고, 이러한 당원의 집단지성을 당의 의사결정에 활용하겠다고 공약했다. 한마디로 당원의 힘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공직 후보, 당직 후보, 정책 등을 분리해 투표권 행사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더 많은 국민이 민주당에 입당하고 관심을 갖게 하겠다”고도 했다. 현재 당내 여론 흐름, 특히 당의 권리당원 구성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대선 이후 대거 유입된 당원들이 8월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한다. 하지만 대선 이후 가입한 당원이라면 현행 당규에 따라 8월 전당대회 투표권이 없다. 선거권은 권리행사 시행일로부터 6개월 이전 입당, 6회 이상 당비를 납부한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당원 투표 상설화’ 공약의 숨은 의미

이 의원은 왜 당원투표 상설화와 온라인 당원청원제 등을 ‘혁신하는 민주당’의 구체적 상(像)으로 적시했을까. 지금 이 의원의 정치적 자산 대부분이 당 밖에서 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 대표가 되더라도, 최고위원에 친명계를 많이 당선시키더라도, 지금의 민주당은 ‘친문’이 주류다. 공천권을 행사하는 건 2년 후의 일이다. 당내 금기어였던 분당은 이제 흔한 말이 됐다. 친문의 견제를 이겨낼 동력을 자신을 두텁게 지지하는 당원들로부터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 의원은 전당대회에 출마하며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다시금 꺼냈다. 당 대표가 돼서 ‘이기는 민주당’을 보여주려면 이재명식 혁신안을 관철시켜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혁신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을 해체하고, 오랜 관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때마침 의미심장한 뉴스가 나왔다. 친명계 중에서도 핵심 측근으로 평가받는 김병욱 의원이 최근 “당 강령에서 재벌 개혁과 금산분리 문구를 삭제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굳어진 반(反)기업 이미지를 해소하자는 차원인데, 엄청난 후폭풍이 뒤따를 수 있는 제안이다. 만약 이 의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향후 이 정도 파급력이 있는 혁신안을 추진할 것이라면, 훗날 당원투표와 당원청원제 등은 이 의원이 의사결정과 여론을 주도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 의원의 이런 구상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반발이 상당할 수 있다. 지금도 이 의원을 둘러싼 정치 팬덤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은데, 이를 제도화해 당으로 흡수하는 방안은 엄청난 반대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여론에 기대는 정치가 부메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현실론에 강성 지지층이 반응하면, 혁신안 도입이 아니라 혁신안을 거꾸로 뒤집을 수도 있다. 그간 민주당의 혁신안을 뒤집은 의사결정 상당수는 전(全) 당원 투표로 이뤄졌다. 2021년 4월 보궐선거에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기로 한 것도, 2020년 총선에서의 비례위성정당 참여도 모두 전 당원 투표로 결정됐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시절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전 당원 투표를 거쳐 철회했다. 당시엔 모두 ‘현실론’ 속에 당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던 안들이다. 

이 의원 앞에는 ①대표 당선 ②당 혁신 ③총선 승리라는 세 개의 험난한 고비가 기다린다. ①을 넘으면 진짜 고비인 ②가 시작된다. 여기에 ‘사법 리스크’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 지금은 의도된 침묵으로 애써 공격을 피해 가고 있지만, 결국은 맞닥뜨려야 한다. 

이 의원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때 그의 곁에는 과연 누가 자리할까. 그는 출마선언문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굴곡진 인생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함께 걷는 동지가 많다면 아픔도 절망도, 새 길을 만드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승부사 이재명’이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길은 과연 박수를 받으며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강성 지지층이 아닌, 민심일 것이라는 점이다. 최종 승자는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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