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인맥의 덫’에 걸린 전남 순천 패션 거리 발칵…무슨 일이?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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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사건 연루 추정 5명 연쇄 사망…“몇명 더 나올 것” 소문에 민심 ‘흉흉’
높은 이자 지급에 속아 수십명 100억원 대 피해 입은 듯...경찰 수사 착수
20일 낮 1시 30분경 국내 유명 의류 대리점들과 카페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전남 순천시 연향동 패션의 거리. 땡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 탓인지 거리와 의류 가게에는 손님 없이 한산했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이날 순천의 대표적 번화가인 이곳은 큰 혼란에 빠졌다. 높은 이율이나 수익률을 미끼로 한 대규모 사기 사건에 휘말린 의류가게 주인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상가에 퍼진 것이다. ⓒ시사저널 정성환
20일 낮 1시 30분경 국내 유명 의류 대리점들과 카페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전남 순천시 연향동 패션의 거리. 땡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 탓인지 거리와 의류 가게에는 손님 없이 한산했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이날 순천의 대표적 번화가인 이곳은 큰 혼란에 빠졌다. 높은 이율이나 수익률을 미끼로 한 대규모 사기 사건에 휘말린 의류가게 주인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상가에 퍼진 것이다. ⓒ시사저널 정성환

20일 낮 1시 30분경 국내 유명 의류 대리점들과 카페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전남 순천시 연향동 패션의 거리. 땡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 탓인지 거리와 의류 가게에는 손님 없이 한산했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이날 순천의 대표적 번화가인 이곳은 큰 혼란에 빠졌다. 높은 이율이나 수익률을 미끼로 한 대규모 사기 사건에 휘말린 의류가게 주인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상가에 퍼진 것이다. 현재까지 사기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사망자는 5명에 이른다. 투자자들 가운데는 지인이나 가족까지 끌어들인 경우도 적지 않아 총 피해 금액이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해 안 되는 악재 발생” vs “‘인맥의 덫’ 곪아 터진 것”

상가 일대는 이날 낮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한 상인은 “이해가 안되는 악재가 생겼다”며 탄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상인은 “그간 은밀하게 형성된 ‘인맥의 덫’이 곪아 터진 것 아니겠느냐”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연이은 극단적 선택 소식에 민심도 흉흉해졌다. 특히 상인들은 언제든 파편이 바로 옆 가게로까지 날아들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당했다. “언제 추가 피해자가 내 옆 가게가 될지 모릅니다. 모두 무탈하길 바랄 뿐이에요.” 이날 순천 연향동 중심가에서 만난 의류판매점 업주 손 아무개(여·55)씨의 말이다. 

손씨의 덧붙이는 말이다. “두달 전부터 사우나 등에서 사기사건 관련 소문이 퍼졌다. 한동안 잠잠해 잘 해결됐는가 싶었는데 결국 터지고 말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금 터진 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벌써 몇몇 가게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은 쉬쉬하며 속앓이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추가 피해자가 나올 것 같아 걱정이다.” 지금은 폭풍 전야로 이번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은 전조에 불과하다는 우려다. 

지역사회 일각에선 A씨가 종사했던 의류업계나 생명보험 관계자들 사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더 나올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상인들 사이에 웃음소리가 사라졌으며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한 상인은 “광양 등에 들어선 대형 의류 쇼핑몰에 밀려 가뜩이나 상권이 위축된 상황에서 불미스런 일까지 발생해 상가 민심도 덩달아 흉흉해지고 있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서로 교류가 뜸한 편인데 상인들 간 불신의 벽이 더 두꺼워 지지 않을까 앞날을 걱정하는 이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남 순천 연향동 패션의 거리 사기사건 관련 A씨가 운영한 의류 매장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순천 연향동 패션의 거리 사기사건 관련 A씨가 운영한 의류 매장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피해자 가게, ‘15년 간의 영업을 종료하며’ 눈물의 폐점 정리
‘불신감 고조’ 일부 상인, 오해 살까봐 매장 리뉴얼 미루기도

한 점주는 예정했던 매장 리뉴얼을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미루기로 결정했다. 행여나 사기사건과 관련 있는 가게로 지목되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그보다는 서로간의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온 결정인 듯 했다. 한 카페 주인은 “조용하던 상가에 도대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사건이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까지는 이번 사기사건의 주모자로 A(여·57)씨와 B(여·54)씨가 지목되고 있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매우 막역한 사이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경우 H생명보험사에서 팀장급 설계사로 5년 정도 일하며 두 번에 걸쳐 ‘연도 영업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초 동료 3명과 함께 보험대리점(GA)으로 이직한 뒤 보험설계사로 계속 활동하면서 연향동에서 골프전문 의류판매점을 운영해왔다. 

A씨는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접근해 대기업인 제철기업 또는 법인체에 투자하고 있으며 높은 이자를 준다는 명목으로 투자자를 유인하고 안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다수의 투자자들이 3개월에 5% 이상의 높은 수익이나 이자를 주겠다는 말을 믿고 A씨에게 100억원이 넘는 돈을 건넸는데, A씨가 숨지면서 돈을 못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A씨가 대기업 투자가 아니라 코인 또는 주식에 투자했다가 최근 코인과 주식시장의 폭락 장세에 막대한 손해를 봐 돌려막기에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찾아간 A씨가 운영하던 골프용품 매장은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하교하던 중학생 서너명이 가게 건너편 간이의자에 앉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건 지난달 중순이다. 옆 가게 주인은 “언제부터인가 매장 문이 닫혀있고 주인도 만날 수 없었는데 최근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A씨 의류점에서 직선거리로 3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등산 의류용품 판매점에서는 ‘7월13일부터 15년간의 영업을 종료하며’라는 자극적인 현수막을 내걸고 폐점정리 세일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 사건 피해자로 추정된 상인이 운영하던 가게로 알려졌다. 

A씨가 사망한 이후 연향동 A씨 가게 인근에서 역시 의류 판매업을 하던 C씨(남)와 D씨(여)가 6월23일과 26일 연달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서는 이들의 극단적 선택이 A씨 사기사건과 연관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0억 대 이상의 돈을 빌려줬던 생명보험 설계사 E씨(여)와 부동산 관련 일을 했던 광양시 거주 F씨(남)도 최근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들 모두 눈덩이처럼 늘어난 부채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순천 패션의 거리 사기사건 피해자로 추정된 상인이 운영하던 순천 조례동 한 의류 점포가 ‘7월 13일부터 15년간의 영업을 종료하며’라는 자극적인 현수막을 내걸고 폐점정리 세일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순천 연향동 패션의 거리 사기사건 피해자로 추정된 상인이 운영하던 한 의류 점포가 ‘7월 13일부터 15년간의 영업을 종료하며’라는 자극적인 현수막을 내걸고 폐점정리 세일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숨진 A씨와 가까운 사이였던 B씨로부터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석달에 5% 이상의 높은 이자를 줬고 피해자들은 이자로 받은 돈을 다시 B씨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전언이다. 그런데도 B씨는 막상 A씨가 숨지자 ‘자신도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피하고 있다는 게 일부 피해자의 주장이다. 60대 중반의 한 피해자는 처음에는 B씨에게 5억여원을 빌려주며 거래했다가 나중에는 A씨의 높은 이자 공세를 받고 70억여원을 A씨에게 빌려줬다가 큰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진 A씨나 B씨가 실제로 사기 행각을 주도한 것인지, 이들 역시 금융사기에 얽히게 된 것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들 뒤에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배후설도 흘러나온다. 피해자들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장이 제출된 B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A씨 등의 사망 경위를 추가로 파악한 뒤 금융 사기와의 연관성이 있는지 들여다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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