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보류에 ‘칩4’ 압박까지…반도체 한파 불어 닥치나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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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기 침체로 공급 축소 기조
“당분간 전략적 모호성 유지할 필요”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올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반도체 설비투자가 감소하는 등 ‘침체기(다운사이클)’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설상가상 미국의 ‘칩4(Chip4) 동맹’ 참여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 정치적인 요인으로 자칫 우리 기업들이 사면초가 상황에 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가격 떨어지고 설비투자 줄고

국내 기업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다. D램은 분기 기준 평균 가격이 2년 만에 떨어졌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11개월 만에 내림세를 기록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수요 감소가 원인이다.

하락 흐름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3분기 D램 가격이 2분기보다 10% 가까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3분기(7~9월) 낸드플래시 가격 전망도 종전 ‘3~8% 하락’에서 ‘8~13% 하락’으로 조정했다.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도 줄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액(68억7975만 달러)은 전년 동기보다 27% 감소했다. 설비투자가 지난해보다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이미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1분기 반도체 생산라인 신·증설 및 보완에 집행한 설비투자액은 6조6599억원이다. 전년 동기(8조4828억원)보다 21%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청주 신규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했다. 업황이 불투명해지고 재고가 쌓이자 보수적인 투자 기조로 선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며 “소비 시장이 약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큰 폭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론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AP=연합뉴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AP=연합뉴스

‘칩4 동맹’에는 “반도체 이외 영역 경제보복 대비해야”

국내 기업에겐 또 다른 고민거리가 있다. 미국의 반도체 동맹 ‘칩4’ 참여 요구다. 미국은 현재 반도체 공급망 협업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설계에 강점이 있는 미국, 생산 강국인 한국·대만, 소재·부품·장비 역량을 갖춘 일본을 하나로 묶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대응하는 조치다.

반도체 업계는 난감한 상황이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 시장이 한국 반도체 수출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터라 참여 여부를 쉽사리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와 충칭에서 각각 공장을 가동하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세계 경제가 깊이 서로 융합된 상황에서 미국 측의 이런 행태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민심을 얻지 못하며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1일자 사설에서 “한국은 미국의 위협에 맞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불참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참여 여부를 특정 시점까지 통보해 달라고 명시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개발 측면에서 미국과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반도체 이외의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제 보복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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