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퇴마 정치’ 시즌2: 윤석열 악마화하기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2.07.29 17:00
  • 호수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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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보는 여섯 종합일간지 중 세 개에 판문점에서 탈북민이 북한 군인에게 넘겨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13일자에 한 컷도 없었다…한국의 주요 종합지가 3대 3으로 양분된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이 쓴 ‘충격의 판문점 사진 3대 3’(7월14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신문들의 정파성이 심하다. 특정 정치 세력의 재정 후원을 받아 먹고살던 옛날 옛적의 정파지 모델로 되돌아간 걸까?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야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보겠지만, 나는 종이신문을 다섯 개나 구독하고 있다 보니 매일 아침 이상언이 말한 ‘충격’ 비슷한 걸 느끼곤 한다.

똑같은 사건을 각자 다른 시각으로 보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는 사건·사고는 소속 진영에 대한 유불리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나는 늘 학생들에게 보수·진보 신문을 동시에 보라고 권하곤 했었다. 양쪽의 시각을 다 아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누가 내게 “그 권유는 여전히 유효한가?”라고 묻는다면, 이젠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학생들이 언론에 대한 환멸을 가질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자기 색깔에 맞는 신문 하나만, 아니 유튜브에 푹 빠져 살라고 말하는 게 더 현실적인 게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신문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조건 우리 편을 지지하고 반대편을 공격하는 정파 저널리즘은 ‘공급’보다는 ‘수요’ 쪽의 문제이며, 이는 디지털 혁명이라는 문명사적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악화시킨 문재인 정권은 “대중운동은 신에 대한 믿음 없이는 가능해도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에릭 호퍼의 금언을 신봉한 것처럼 보였다. 문재인이 실천한 ‘전투적 팬덤정치’는 사실상의 대중운동으로 악마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것처럼 보였다.

문재인의 적폐청산은 적폐 대상을 악마화한 퇴마 의식에 가까웠다. 그건 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지만 ‘조국 사태’ 때 수석 퇴마사였던 윤석열이 ‘퇴마의 공정’을 외치자 온 나라가 정치적 내전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문 정권에 의해 악마로 규정된 윤석열을 내쫓거나 죽이려는 ‘퇴마 정치’와 ‘퇴마 저널리즘’이 극성을 부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대학교수는 “윤석열은 악마” “국민의힘은 박멸해야 할 박테리아”라고 선포했다. 문 정권 고위 인사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라거나 “민주주의를 악마한테 던져주는” 등의 ‘악마 타령’을 앞세워 윤석열을 공격했다. 반면 조국은 “인간이 만든 인간 최고의 악마 조직과 용맹히 싸우다 만신창이가 되어 우리 곁으로 살아서 돌아”온 인물로 추앙되었다.

그런 오판 덕분에 윤석열은 대선에서 이겼지만, 이는 ‘악마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윤 정권 출범 이후 문 정권 인사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퇴마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윤석열 탄핵’까지 거론하는 ‘퇴마 정치’에 목숨을 걸었다. 역시 싸움엔 능했다.

윤석열 역시 오판의 덫에 갇히고 말았다. 자신이 누렸던 지지는 문 정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권 교체와 함께 소멸됐다고 봐야 했건만, 그는 오만했고 둔감했다. 온갖 실수로 정치적 자해를 일삼곤 했으니, 세상에 무슨 이런 악마가 있는지 모르겠다. 추락하는 윤석열이 바보일지언정 악마는 아니라는 게 확인됐건만, ‘퇴마 정치 시즌2’의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그 결말이 궁금해진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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