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성은 여전히 ‘인어공주’인가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31 08:00
  • 호수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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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집중된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 문제

최근 한 대학교 신입생이 자신의 학교 캠퍼스에서 같은 학교 학우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추락사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논의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학교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점(사실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피해자의 상태를 ‘알몸’ ‘옷이 벗겨진 채’ 등 선정적이고 비극적으로 묘사해 사건의 쟁점을 비켜 성적 대상화한 언론의 보도 행태, ‘만취한 상태에서 부축을 받으며’ 건물로 들어갔다는 피해자의 행실과 책임을 비난하는 2차 가해, 누리꾼들의 피해자와 가해 학생에 대한 사냥에 가까운 무차별적 신원 노출, 해당 총학생회의 입장문에서 보여준 피해자에 대한 공감 결여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분명한 성폭행이다.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술에 취해서든 약에 취해서든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이의 동의는 명백한 성적 동의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추락한 피해자를 보고도 가해 학생이 어떤 구호조치도 없이 도망가 버렸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살인죄의 필요충분 요건은 모르겠지만 맥락상 이것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최소한의 구호 노력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7월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캠퍼스 안에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연합뉴스

비극적 사건이 보여주는 진짜 문제들

최근 해당 학교에는 학내 구성원들과 학내의 성차별적 문화를 비판하며, 자성하자는 목소리를 담은 자필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그간 학교에서 지속돼온 성범죄와 그 사건들에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온 교내의 성차별적·혐오적 문화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누군가는 갑자기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잠재적 가해자로 불려서, 혹은 이 사건으로 입결(입시 결과)과 학벌이 떨어져서 ‘남성’이자 ‘대학생’으로서의 위신이 무너졌다”는 의견과 함께 “누군가는 폭력과 수치가 걱정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숨죽이며 자신과 동료 시민의 안녕을 걱정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쪽의 목소리는 입결과 위신을 당당히 목소리 높여 걱정하고, 다른 한쪽은 학내의 성폭력 사건과 성차별적 문화를 말하면 ‘성별 갈등 조장하지 마라’ ‘꼴페미’ ‘메갈 X’ 등으로 공격을 당할까봐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고 목소리를 낮추는 학내 풍토에 대한 통렬한 자성을 촉구했다. 이 대자보가 지적하는 학내의 문제들은 엄밀히는 우리 사회 전체의 갈라진 두 목소리를 보여준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모든 나라를 향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공격을 멈추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전쟁으로, 혹은 전통과 문화, 경제를 이유로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성적인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 문제들로 인해 여성은 안전하지 않다. 특히 가해자와 어떤 관계로 얽혀 있을 때 피해자는 학교와 직장, 사회로부터 비밀 유지를 종용당하고, 기관의 명예 실추를 막기 위해 억압받으며 위축된다. 많은 경우에 가해자는 보호받고 지금까지의 지위와 명예, 권위를 유지하지만 피해자는 직장을 떠나고, 사회에서 비난받으며, 사회적 관계에서 차단된다. 

특히 성적 공격일 때 피해자는 더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피해자를 공감하고 지지하고자 하는 이들조차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려워진다. 이러한 폭력과 성적 공격에 여성들은 목소리를 빼앗긴다. 피해자의 주변부터 학교 관계자까지 쉬쉬하거나 가해자를 보호하고 나서 피해자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인식하면서도 말할 수 없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야 하는 삶을 요구받는 사회는 평등하고 공정한가?

지금 우리는 여성과 여자아이를 표적으로 삼는 성적 괴롭힘과 공격이 언제 어디서나 너무나 흔하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사회에서 피해자는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없었다는 듯 견뎌낼 수 있도록 훌륭한 연기자와 뛰어난 거짓말쟁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여전히 우리 한국 사회는 여성을 성적으로 공격했다고 지목받은 사람을 보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다. 피해자의 책임과 피해자다움이 요구되고 2차 가해가 너무 쉬운 나라. 이런 현실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과 존엄을 갖기 위해 갈 길이 아직도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합뉴스
가해 학생 A씨가 7월22일 인천시 미추홀구 미추홀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연합뉴스

동화 《인어공주》가 말하는 이상한 사랑

우리는 《인어공주》를 사랑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버리고, 헌신적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생명조차 버리는 아름다운 실연의 이야기로 읽어왔다. 인어공주는 그림책으로, 동화책으로, 디즈니사의 ‘만화영화’로 어린 소녀들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임금님인 아버지의 권위에도 반항할 수 있었던 인어공주는 왕자의 곁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그 왕자가 반한 인간 여자의 성적인 매력을 가지기 위해 ‘목소리’를 버리고 ‘다리’를 택했다. 그 다리는 매끈하고 걸음걸이는 우아했지만, 바닥에 닿을 때마다 발바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 인어공주는 그 고통조차 웃는 얼굴로 훌륭히 연기하고 숨겼다. 

혀를 잘라 ‘목소리’를 버리는 과정도, ‘다리’를 얻는 과정도 그토록 험난했지만 오직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인어공주는 그렇게 했다. 정작 왕자를 매혹시켰던 목소리를 잃어 그녀는 자신이 왕자를 구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도 밝힐 수 없었고, 사랑을 고백할 수도 없었다. 결국 인어공주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앞둔 왕자를 위해 바다에 몸을 던져 생명을 버리고 공기방울이 되는 처참한 선택을 한다.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고, 노래하고, 주장하고, 논쟁하는 목소리를 포기하고 목숨까지 포기한 어리석은 이야기를 희생과 헌신의 사랑 이야기로 배워왔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여성은 누구인가? 지구 위에 남성과 함께 인간 종족으로 사랑하고, 돌보고, 존중하고, 번성해야 할 반쪽이다. 남성의 어머니이고, 딸이며, 누이며, 애인이고, 친구다.

그들에 대한 폭력과 성적 공격에 대해 대항하고, 목소리를 내고, 보호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것은 성별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 ‘인간 사랑’ ‘인간다움’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의 연대감을 지키고 회복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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