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초등 입학’ 기습 발표…교육계·학부모, 충격 속 대혼돈
  • 이혜영 디지털팀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7.30 15: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尹 “신속 강구” 속도전…거센 반발 속 치열한 논쟁 예고
교육부가 전국 학교에 거리두기 해제와 일상 회복에 맞는 새 방역지침을 발표한 가운데 4월2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 연합뉴스
70년간 유지돼 온 학제가 이르면 2025년부터는 모든 아이가 1년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유보통합)하고 초등학교 진입을 현행보다 1년 앞당기는 학제 개편 방안을 포함한 새 정부 교육부 업무계획을 7월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사진은 지난 4월2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 연합뉴스

교육계와 학부모가 대혼돈에 빠졌다. 윤석열 정부가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학제개편 추진을 기습 발표하면서다. 교육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거센 반발이 이어지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30일 온라인 맘카페나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초등학교 입학을 현행보다 1년 앞당기겠다는 교육부 방안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많아 보인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긴 한건가"라며 "초등 1학년 때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부모나 경력단절 여성이 많이 생기는 것은 그만큼 돌봄 공백과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여서인데, 7살에 입학하면 그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과 부모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2025년 만 5세 입학 첫 대상자로 분류한 2019년 1월~3월생 아이를 둔 부모들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2019년 2월생 아이를 뒀다는 한 부모는 "아이들은 한 두달 차이로도 신체·정서 발달에 격차가 큰 경우가 많은데 입학 또래들과 최대 1년 넘게 차이가 나는데도 함께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한글부터 시작해 더 이른 나이에 사교육 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 보듯 뻔하고, 학교 폭력·집단 따돌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 이것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 맞느냐"고 지적했다. 

이번 정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초등 입학을 앞당겨 돌봄 부담을 덜고,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지만 현장 반응은 다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경우 종일 돌봄이 가능한 구조지만, 초등학교는 다르다. 특히 1학년의 경우 수업 종료 시간이 더 빠르고, 돌봄교실과 방과후 프로그램도 인원 제한이 있어 지역에 따라 경쟁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해마다 '추첨 전쟁'이 일어난다.  

맞벌이를 하며 8세, 4세 자녀를 뒀다는 한 학부모는 "첫 아이 입학하면서 돌봄교실에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아이는 4~5교시 끝난 후 태권도, 미술학원 등으로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데 이걸 7살부터 한다고 생각하니 부모는 또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정부가 2025년까지 현장 시스템과 인력을 보충할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당장 '1학년 담임 기피' 현상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7세 입학 아동들의 경우 학교 생활 적응은 물론 화장실 이용 등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교사들의 손이 훨씬 더 많이 갈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전날 정부 발표 이후 "유아기 아동의 발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며 "현재도 개인 선택에 따라 초등학교 조기 입학이 허용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선택하지 않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취학연령을 낮추는 방안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꾸준히 검토돼 왔지만, 여러 현실적 장애물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실행되지 못했다. 전문가들 역시 공교육이 포괄하는 아동의 범위를 더욱 넓혀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초등학교 입학연령 조정으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특히 입학연령 하향 조정은 당초 윤 대통령의 교육공약에도 포함되지 않았다가 전날 기습적으로 발표되면서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입학연령 조정은 유·초·중등 교육 전반과 대학입시, 취업, 결혼 등 개인의 생애 전반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정부가 일방적인 발표 전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과정을 밟았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는데, 백년지대계인 교육 정책은 '신속히' 추진하는 데 방점을 둬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입직연령(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나이)을 낮춰 초혼연령을 앞당기고 노동기간을 늘리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하고 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제개편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취학연령 하향조정은)사회적 약자도 빨리 공교육으로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악영향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