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증시에는 대형주보다 중소형주 눈여겨보라
  •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8 11: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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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_금융] 주가는 연말까지 박스권 유지 전망
금리·국제유가·환율 등 안정되면서 기업 실적에 눈길

주식시장을 들었다 놨다 했던 요인들이 조용해졌다. 우선 금리가 안정을 찾았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최고 3.8%에서 3.1%로 내려왔다. 배럴당 130달러를 넘었던 국제유가도 98달러까지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있다. 그 영향으로 코스피가 2400대 중반으로 올라왔다. 가격 변수 대부분이 최고 혹은 최저점에서 5~10% 정도 반대로 움직였는데,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가격 변수가 안정된 건 투자자들이 최악의 상황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상황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이미 주가도 내려갈 만큼 내려갔다. 금융위기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든지, 아니면 올해나 내년에 성장률이 -3%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주가가 더 크게 하락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가격 변수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시장이 기업 실적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작년에 상장기업은 총 242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직전 최고치였던 2018년의 197조원보다 20% 이상 많다. 작년 이익 증가는 많은 나라가 코로나 극복을 위해 재원을 쏟아부은 덕분이다. 2020년 2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8.1%에 해당하는 돈이 특별 지출 형태로 집행됐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해 쓰인 돈보다 3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금리와 국제유가, 환율 등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좌우하는 요인들이 안정을 찾으면서 기업 실적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연합뉴스

기업 호실적에도 주가는 소폭 반등 왜?

미국의 재정지출이 특히 컸다. GDP의 10%에 가까운 국가 예산을 코로나 관련 지원에 투입했다. 그 결과 1170만 명의 미국인이 빈곤선에서 벗어났고, 가계 총저축이 2조7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팬데믹 이전 8%에 지나지 않던 저축률이 2020년 4월에 사상 최고인 33.8%를 기록했다. 여기에 금리 인하와 유동성 증가가 더해졌다. 기업 이익이 늘어날 수 있는 모든 구조가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익 증가로 코스피가 3300까지 올랐지만 유지하지는 못했다. 이익 증가가 일회성 요인에 의해 이뤄졌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지난 2년처럼 정부가 무상으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앞으로는 금리를 크게 내려 기업의 비용 부담을 엄청나게 낮춰주는 일도 기대하기 힘들다.

2000년 이후 우리 기업 이익이 3년 이상 늘어난 적이 없다. 1~2년 정도 급증했다가 줄어들거나 정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9년에 시작된 이익 증가가 2년 만인 2000년에 마무리됐고, 2004년 있었던 이익 증가 역시 3년을 넘기지 못했다. 2011년의 이익 증가는 1년 반 만에 마무리됐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17년 이익 증가 역시 2016년에 시작해 2018년 마무리됐다. 조만간 이익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익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보니 2분기 실적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증권사가 이익 전망치를 내놓은 기업 중 139개사가 2분기 실적 발표를 마쳤다. 영업이익이 50조원으로 예상치 47.3조원보다 조금 많았다. 실적이 예상보다 괜찮았지만 주가는 발표 당일 조금 오르거나 아예 반응하지 않았다.

주가와 경제 변수, 기업 실적 간에는 주가가 제일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에 경제 변수가 반응하며, 기업 실적이 제일 늦게 변하는 관계가 성립한다. 지금은 주가가 떨어졌지만 아직 경제 변수 위축이 심하지 않다. 당연히 기업 이익이 줄어들 때도 아니다. 이는 3분기 이후 이익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쪽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재 이익이 역할을 못 하면 성장성 높은 기업이 등장해 주가 정체를 해결해야 하는데 사정이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때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93~94년이다. 외국인에게 주식시장이 개방된 직후인데 ‘블루칩’이란 이름하에 업종 대표주가 크게 상승했다. SK텔레콤이 16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고, 삼성전자가 액면가 5000원 기준으로 10만원을 처음 넘었다. 외국인이 업종 대표주를 매수하면서 해당 기업군의 가치가 재조명받은 덕분이었다.

7월2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연합뉴스
7월2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연합뉴스

지수 상단은 2600, 하단은 2300 전망

또 한 번은 2005~10년이다. 중국이 국제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자본재 수요가 늘어났다. 중국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놓기 위해서인데,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던 우리 대기업이 혜택을 봤다. 포스코가 76만원까지 상승하고 화학, 조선 등 대규모 장치 기업의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게 이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거기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에 내다 팔아 큰돈을 버는 회사가 주목받던 시대가 지나갔다. 대신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 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었다. 그 때문에 대기업은 과거보다 많은 이익을 내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형태가 됐다. 대기업에 의해 생긴 공백을 메우려면 새로운 성장산업이 등장해야 한다. 과거에 규모가 작았던 산업이 핵심산업으로 올라서거나 성장 단계에 머물러 있던 산업이 꽃을 피워야 한다. 2000년에 이동통신과 인터넷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관련 기업이 등장했던 것처럼.

아직은 성장주가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 등 인터넷 관련 기업은 정부의 규제와 무분별한 사업 확장 탓에 큰 타격을 받았고, 바이오 산업은 아직도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발생한 이익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익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괜찮은 실적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연말까지 주식시장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할 걸로 보인다. 상단은 2600, 하단은 2300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가가 박스권에 머무르는 동안 국내외에서 금리 인상이 계속되고, 경기 둔화가 뚜렷해지는 등 변화가 예상되지만 주가 흐름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6월 하락 때 악재의 상당 부분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월 반등 때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가 시장을 주도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투자자들은 믿을 수 있는 기업을 찾기 때문인데, 주가도 낮아 부담이 없었다. 더 이상 대형주의 상승은 힘들고, 중소형 테마주로 매수가 넘어올 것인가가 관심이다. 지수가 박스권에 갇히면 중소형주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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