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어렵다는 편견 깬 《왜 그리 심각해?》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9 12: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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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화가 필립 그뢰징어 개인전 동시 개최
팝아트 우세로 전통 화풍과 만화 스타일 사이 위계도 희미해져

둥그런 덩어리에 가까운 단색 몸통과 약호처럼 간략한 눈과 입이 붙어있는 얼굴을 가진 인물. 몸통에 붙은 두 팔도 손쉽게 늘여 이것저것 전천후로 붙잡으려고 매달린 긴 줄에 가깝다. 이 간략한 인물의 뒤로 우주 공간을 닮은 짙은 밤하늘이 펼쳐졌고, 주변엔 정체불명의 7각형 패턴과 유선형 붓질이 만드는 정체 모를 곡선들이 가득하다. 독일 화가 필립 그뢰징어(Philip Grzinger)의 전시가 서울 강북과 강남 전시장 세 곳에서 같은 시기에 열린다. 바로 《Why So Serious?(왜 그리 심각해?)》(초이앤초이갤러리·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라운지, 7월7일~8월25일)다.

아이의 동심을 가감 없이 옮긴 것 같은 화면 위로 꽃, 물고기, 7각형 패턴 그리고 둥그런 단색 덩어리를 닮은 인체 등이 무작위로 배열돼 나타난다. 동화책에서 흔히 만나는 만화 스타일 그림이다. 만화 스타일의 그림은 미술계에선 하위 범주로 간주됐지만, 팝아트가 전면적으로 우세해지면서 어느덧 전통적인 미술 화풍과 만화 스타일 그림 사이의 위계도 희미해졌다.

필립 그뢰징어 《Curious Incident》, 2021ⓒ반이정 제공
필립 그뢰징어 《Loop quantum gravity》, 2021ⓒ반이정 제공

숙련되지 않은 시각 이미지가 오히려 호감 불러일으켜

만화 스타일 그림은 대중적 소구력도 높기 때문에 틈새 수요가 있고, 나름 안정적인 지분까지 갖고 있다. 미적인 미숙함과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 그림 같은 화풍이 현대미술사에 하나의 사조로 자리매김한 때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제도권 미술의 꽉 짜인 완벽과 세련미에 반해서, 고의로 엉성하게 마감한 듯한 작품이 대안적인 흐름을 형성했는데, 이를 아르 브뤼(Art Brut)라 부른다. 이처럼 어딘지 미숙련된 시각 이미지는 후련함과 호감을 주는 역설을 가진다.

“흰색의 몬스터가 광선을 방출하는 수수께끼의 장치를 다룬다. 배경이 되는 우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사로잡히고, 이러한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잠시라도 멈출 수 있다면 무엇이든 유토피아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체적인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그뢰징어의 작품들은 재난과 카오스뿐만 아니라, 낙관주의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필립 그뢰징어의 작품을 호의적으로 풀이한 어느 독일 미술인이 쓴 평문의 일부다. 구체적인 스토리나 심각한 주제를 기대하기 어려운 그림에 관해 너무 진지하게 접근한 글처럼 보인다. 전적으로 주관적인 창작물을 이성적으로 억지로 끼워맞추다 보면 무의미한 말잔치처럼 들리기도 한다. 미술이나 연주 음악 같은 비언어적 예술을 언어로 풀이하는 일이 비평이지만, 언어로 풀이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예술작품도 있는 법이다. 빗대자면 비평이 언어와 이성의 기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 영역에 가깝다면, 언어로 풀이하기 어려운 어떤 종류의 미술은 말이 통하지 않고 신속하게 직감으로 반응하는 편도체의 영역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발산하는 색채와 동심의 순간순간을 즉흥적으로 화면에 옮겨놓은 필립 그뢰징어의 그림은 주류 미술판보다는, 긴 설명 필요 없이 직감으로 호오를 판단하는 어떤 관객 그룹에게서 호응을 얻을 것이다.

전시 제목으로 뽑은 ‘Why So Serious?(왜 그리 진지해?)’는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일반의 통념과 진입장벽에 대한 반어법으로 선택된 것 같다. 괜히 심각해할 필요 없는 대안적 미술 소비에 대한 화두 던지기랄까? 혹은 까다롭고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해 평소 기죽어서 말을 못 했던 익명의 관객들의 불만을 대신 털어놓는 후련함 같은 제목인지도 모른다.

ⓒ반이정 제공
신조우 《나는 호랑이 소녀다》, 2021ⓒ반이정 제공

독일 현대화가의 국내 개인전이 열린 때와 같은 시기에, 약호화된 이목구비와 인체 묘사, 원근법을 무시한 소묘 등 아이의 동심을 옮긴 인물화를 그리는 일본 현대화가의 개인전도 열렸다. 신조우의 《지금 이 순간!》(7월13~30일, 갤러리담)이다. 《나는 호랑이 소녀다》 시리즈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호랑이해에 태어난 작가에게 ‘호랑이처럼 기운차게 살라’는 뜻에서 붙은 어린 시절 애칭이 ‘호랑이 소녀’였단다. 한데 어느덧 장성해 남편과 아이의 생계를 근심하느라 몸을 끈으로 동여맨 꼴이 됐고, 이 모습이 흡사 호랑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림과 제목을 저렇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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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우 《아기와 젖가슴》, 2021ⓒ반이정 제공

또 다른 작품 《아기와 젖가슴》은 기혼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육아 경험을 두 팔을 뻗어 엄마의 젖가슴을 쥔 아이를 통해 코믹하게 재현했다. 수치심 없이 자기 스타일을 확보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처럼 미숙하게 막 그린 듯한 그림에서 남다른 매력을 느낄까? 필립 그뢰징어와 신조우는 모두 미술대학을 나왔다. 미술 비전공자의 미숙련에서 고유한 매력을 발견한 아르 브뤼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순 없다.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 사이에서 기량과 숙련도로 경합하지 않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순박함과 직감의 틈새 시장에서 자기 스타일을 발견한 경우라 하겠다. 눈, 코, 입을 멋대로 배치한 얼굴 그림으로 대표되는 피카소가 10대 초반 완성한 정교한 인체와 비둘기 소묘를 본 사람들은 당황해서 놀란다. 피카소의 천재성은 소묘 실력으로 경쟁자들과 경합하지 않고, 대상을 해체해 제멋대로 재결합시키는 스타일을 고안하면서 주목을 받은 경우다. 자신이 고안한 공식에 따라 해체된 인물화를 내놓으면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기 스타일을 굳힌 것이다.

ⓒ반이정 제공
필립 그뢰징어 벽화 작업 《호리아트스페이스》ⓒ반이정 제공

최소한의 언어만 필요한 ‘편도체 미술’이 대세로

그뢰징어의 전시 제목이 그랬듯이, 신조우의 전시 제목 ‘지금 이 순간!’도 현대인의 보편적인 불만과 욕구를 대리하는 것 같다. ‘지금’과 ‘순간’은 과거와 미래를 향한 후회와 불안에 발목이 잡혀 현재를 잃어버리는 현대인에게 여러 멘토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키워드다.

인생이란 찰나의 연속이니 목표 같은 걸 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사는 것으로 족하다는 내용의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나 위험할 걸 뻔히 알면서도 자동차 경주 같은 어드벤처 스포츠에 몰입하는 이유도 그것이 ‘지금’에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의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지금’에 전념하라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같은 책의 메시지가 그렇다. 신조우의 간략한 그림과 어딘지 미숙하고 대충 마감한 것 같은 그림의 질감에 역설적인 호감을 보이는 관객들은 전시 제목처럼 ‘지금 이 순간’에서 군더더기 없이 만난다. 말이 필요 없거나 최소한의 언어만 요하는 ‘편도체 미술(감상)’이 차츰 늘어나는 추세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모든 종류의 예술을 평하는 일도 업종 변경 내지 변화의 선택 압력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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