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푸드는 왜 팩우유의 빨대를 없앴나 [김정희의 아하 ! 마케팅]
  • 김정희 마케팅 컨설턴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6 11:00
  • 호수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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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치즈불닭볶음면’부터 이니스프리 ‘그린 프로슈머’까지…
제품 개발 단계부터 개입하는 ‘프로슈머’ 전성시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 자신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자신의 소비에 들어가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일부를 생산할 수 있는 ‘프로슈머(Prosumer)’의 시대를 예측했다.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친 말로, 오늘날에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 및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참여형 소비자를 뜻한다. 단순히 브랜드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하는 브랜드를 창조하는 데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소비자다.

40년도 더 전에 미래학자가 예견한 ‘프로슈머의 시대’는 왔을까? 호언장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비자가 크게 변하고, 또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과거 대량생산된 제품과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그대로 수용하던 것과 달리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 브랜드를 찾고, 맞지 않으면 브랜드에 개선과 변화를 적극 요구하고, 필요하면 직접 만들기도 한다. 기업이 내놓은 최종 상품에 만족하지 않거나, 만족으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2019년 6월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법적 사용 금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바다거북이 분장을 한 참가자가 빨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뛰는 브랜드 위에 나는 고객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프로슈머는 자신에게 맞는 효용가치를 찾기 위해 브랜드를 탐구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브랜드를 재창조한다. 그들의 탐구와 열정에 맞는 맞춤화를 기대하고 요구하기도 한다. 브랜드를 즐기며 스스로 생산하고 싶은 것을 생산한다. 또 브랜드와 협력하고 공동 창작하기를 좋아한다. 그 과정에서 브랜드의 수용과 변화를 경험하면 브랜드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고, 반대로 브랜드가 그들의 소리에 대해 외면으로 일관하면, 브랜드를 떠난다.

롯데푸드는 지난 5월 자사몰에서 빨대 없는 바른목장우유 판매를 시작했다. 이른바 ‘불편한 우유’로 알려진 빨대 없는 우유는 유치원 어린이들의 요청 사항을 반영한 제품이다. 지난해 세종 도란유치원 어린이들이 롯데푸드에 빨대 없는 우유를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미사용 빨대 1200여 개를 보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힌 바다거북이 사진을 본 아이들이 급식 우유 제조사인 롯데푸드에 빨대를 만들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롯데푸드는 내부 논의를 거쳐 NO빨대 팩우유를 생산하기로 하고, 기존 팩우유의 빨대도 친환경 인증을 받은 빨대로 교체했다. 이후 롯데푸드는 해당 내용을 동화 형식의 발표 자료로 준비해 아이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시간도 갖고, 절감한 빨대 비용을 바다를 지키는 프로젝트에 기부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진심 어린 요청에 응답한 롯데푸드의 NO빨대 팩우유 판매 소식에 고객들은 “이 정도의 착한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는 프로슈머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고 있다. 정보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브랜드 및 메시지를 통제할 수 있고, 브랜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공유하며 공감을 이끌어내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제 프로슈머를 강력한 지지자로 바라본다. 브랜드에 진심이고 진정으로 즐기는 프로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성장을 함께 이끌 파트너로 본다. 그들은 점점 더 브랜드의 기획과 제작, 그리고 생산 과정 등에 참여하며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은 프로슈머의 맞춤화 요구에 호응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구와 장을 제공한다. 소비자들이 제안하는 아이디어와 생산한 것들을 수용해 상품으로 만들기도 하고 콘텐츠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고객 만족으로 이어져 둘 다 이기는 전략이 된다. 고객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브랜드를 만날 수 있으니 성공적인 경험을 해서 좋고, 브랜드는 옹호자는 물론 최소한의 안정적인 고객층을 확보해 시장에 나올 수 있어 좋다.

뷰티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현재 ‘그린 프로슈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고객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는 활동이다. 이들은 고객 입장에서 제품 기획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전달하고, 상품기획자와 함께 아이디어도 제안한다. 개발 중인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고 품평도 한다. 시장조사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도 참여한다. 이니스프리 측은 “그린 프로슈머가 이니스프리의 혁신적인 신제품을 이끌어내는 일등 공신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불닭볶음면ⓒ연합뉴스

고객의 소리는 브랜드를 혁신시킨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프로슈머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제품이다. 매운맛 도전기는 기본이다. 불닭볶음면을 이용해 고객이 직접 만든 다양한 음식 조합과 레시피가 온라인에 무수히 존재한다. 일부는 명성을 얻고, 삼양식품의 제품 개발에도 반영됐다. 2012년 출시된 이후 ‘극강의 매운맛’으로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진 불닭볶음면은 꾸준히 고객의 요청 사항을 제품 개발에 반영해 제품군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치즈불닭볶음면’도 그 한 예다.

불닭볶음면은 다양한 시리즈로 계속 출시되며 10년간 누적 판매량이 40억 개를 넘어섰다. 해외에서도 매운맛으로 인기를 끌며 90여 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제품이 출시되면 안정적인 구매층 역시 확장된다. 고객의 요구에 맞춘 제품 개발 및 생산은 고객 중심 브랜드 마케팅의 핵심이 된다. 고객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기업이 내놓은 제품 그대로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하고 재창조하거나 자신이 직접 만들어 브랜드로 론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대량생산된 브랜드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에 맞는 브랜드를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생산할 것이다. 가성비, 가심비, 가치소비 등 고객이 살피고 따지는 것들이 다양한 시대가 아닌가. 지금 고객은 자신의 개성과 성향을 존중하는 브랜드와 관계를 맺고, 디지털 채널을 통해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의 파도를 타고 프로슈머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제품의 탄생과 단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이 프로슈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공동 창조하는 전략을 펼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은 고객의 동향을 살피고, 고객의 요구를 반영한 제품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프로슈머는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형성하고 자신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기업은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관심이 줄어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수용하며 혁신을 꾀해야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고 싶어 하고 그럴 가능성이 큰 제품이나 서비스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고객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진짜 고객의 권력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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