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주기엔 미흡했던 공급 대책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0 12: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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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안정세 돌아섰지만 시장 우려는 여전
베블런 효과 막기 위해서는 시장에 확신 심어줘야

정부가 270만 가구의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세부 계획을 보면 신도시 등 공공택지를 통해 88만 가구, 재개발·재건축과 도심복합사업 등으로 52만 가구를 각각 공급하고 나머지 130만 가구는 도시개발과 지구단위계획구역, 기타 일반주택사업 등을 통해 공급한다. 핵심은 정비사업 활성화와 민간 도심복합사업이다. 민간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초과이익환수제와 안전진단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다.

그동안 분양가 상한제와 함께 재건축 ‘3대 규제’로 꼽혀 온 것이 바로 안전진단 제도와 초과이익환수제다. 분양가 상한제가 사업성을 떨어뜨린다면, 안전진단은 재건축을 막고 초과이익환수제는 사업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초과이익환수제에 의한 재건축 부담금은 2006년 도입됐지만 법 적용이 유예됐다가 2018년 재시행돼 올해 처음으로 부과될 예정이었다. 정부는 부과 기준을 현실화하고, 1주택 장기보유자와 고령자 등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8월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인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8월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인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여전히 불안한 집값 대책

안전진단 규제는 구조 안전성의 비중을 현행 50%에서 30~40% 수준으로 낮출 예정이다. 3년 전 구조 안정성 비중이 높아진 이후 서울에서 재건축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은 곳은 5곳에 불과했다. 반면에 제도 개정 이전 3년 동안에는 56곳이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만큼 안전진단 규제는 재건축을 막는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준의 적용 범위나 적용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연말까지 제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재건축 사업 조합원들에게 부과되는 부담금을 낮추는 것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 관한 법’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가능하다. 국토교통부는 세부적인 내용을 9월에 확정한 뒤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민간 도심복합사업은 과거 공공기관만 주도할 수 있었던 도심복합사업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 주기 위한 것이다. 신탁사나 리츠 등 민간 전문기관도 공공기관처럼 도심과 노후 역세권에서 복합개발을 추진하도록 허용한다. 해당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사업 주체에 최대 700%의 용적률과 세제혜택을 제공할 방침이다. 민간 도심복합사업 제도 도입을 위해서도 국회에서 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책의 방향전환은 돋보이지만 여전히 공급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다. 공급 대책이 기대만큼 빠르게 진행되려면 부지 확보와 민간 협력, 재원 마련 등이 모두 확실히 제시돼야 한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부동산 시장 침체, 기준금리 인상 등이 맞물린 결과로 최근 인허가를 받고도 실제 착공을 주저하는 민간 건설사가 많다. 집을 지을 땅은 넉넉하지 않은데 어떻게 부지를 찾고, 어디서 재원을 마련할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상당수 정책이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변수다. 재건축 규제완화 방침도 당초 시장의 기대보다는 신중한 편이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고,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역시 규제를 완화해야 하지만 규제완화가 자칫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집값 ‘우상향’ 가능성

요즘 부동산 시장은 드디어 안정세를 찾은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가격은 8월8일 기준으로 13주 연속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값도 5월 말부터 11주 연속 하락 중이다. 하락 폭도 늘고 있다. 8월 첫 번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8% 하락했다. 한 주일 전의 0.07%보다 하락 폭이 커졌다. 이는 2019년 4월 이후 3년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서울 아파트 매수심리는 14주째 하락했다. 아파트 거래량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8월16일 기준으로 7월 한 달 동안의 서울 아파트 매수 신고는 534건에 불과했다. 작년 8월에는 4064건이었다. 거래량은 계속 줄어들어 8월에는 현재까지 신고된 거래가 겨우 61건뿐이다.

전세의 경우도 갱신 계약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하향조정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주택시장의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역시 금리 인상일 것이다. 코로나19 직후 연 0.5%까지 내려갔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현재 연 2.25%로 올라섰다.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최고 금리는 10년 만에 연 6%를 넘어섰다. 만일 연 6%의 금리로 2억원을 빌린다면 연간 이자는 1200만원이다. 매달 이자로 100만원씩을 내야 한다. 금리 인상은 대출로 집을 사려는 이들에게 그만큼 부담을 주면서 주택담보대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1.0%포인트 오를 때 1년 후 주택가격은 최고 0.7%, 2년 후에는 최고 2.8% 하락한다고 추정했다.

현재의 안정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아파트가격은 장기적으로 보면 역시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자산으로서 우리나라 주택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6년간 서울 지역 아파트는 주식과 비교할 때 변동성은 크게 낮으면서도 연평균 수익률은 비슷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가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큰 이유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요를 꼽을 수 있다. 서울은 2020년 기준 100대 기업 중 70곳이 위치해 양질의 일자리가 많고 생활 인프라도 다른 지역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좋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연결하는 교통환경 개선 사업도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서울의 가치를 더 높여 주는 측면이 있다. 수요는 계속 늘지만 집을 지을 땅은 한정돼 있어 주택 공급에는 제한이 있다. 재고도 충분치 않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를 나타내는 주택 재고에서 OECD 34개국 중 27위를 기록했는데, 특히 서울의 주택 재고는 31.5%로, 40.7%의 지방보다 적다. 가구 수가 늘어나는 만큼 해마다 고정적인 신규 주택 수요가 발생한다. 주택 공급이 부족해지면 그리 넓지 않은 국토에 사는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압도적으로 커진다.

여전히 ‘비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 경실련이 6월19일 발표한 ‘2004년 이후 서울 주요 아파트 시세변동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04년 30평 기준 3억4000만원이던 서울의 평균 아파트가격은 올해 5월 12억8000만원으로 4배 가까이 상승했다. 주택시장은 언제든 불안해질 수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주택 공급은 11만4000가구로 연초 목표치인 21만3000여 가구의 53%에 그쳤다. 주택 투기자의 수요는 때로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늘어나 우상향을 그린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는 일반 재화와는 달리 가격이 오르는데도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언제든 베블런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주택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공급을 발표한 270만 가구는 인허가 기준일 뿐, 현 정부 임기 내에 다 지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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