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기자회견 54분 진행…분위기 반전은 ‘물음표’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재건하겠습니다.”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와 경제의 회복’을 외치며 야심차게 새 정부 닻을 올렸다. 그러나 취임 후 100일, 윤석열 정부는 위기에 직면한 모습이다. ‘사적 채용 논란’, ‘인사 논란’, ‘대통령 답변 태도’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고꾸라졌다. 취임 후 지난 100일, 윤 대통령의 ‘결정적 순간’을 숫자를 통해 짚어본다.
자유만 35번…취임식부터 드러난 尹대통령의 소신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공식 석상에서는 가장 많이 강조한 단어는 ‘자유’였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만 ‘자유’라는 단어를 35번 사용했다. 이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는 13번,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6번 ‘자유’를 말했다. 그리고 지난 15일 ‘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자유’라는 단어를 모두 33번 사용했다.
‘자유의 보장’은 윤 대통령 평소 소신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담당하는 참모가 여럿 있지만, 연설문의 초안은 대통령이 직접 작성하고 있다”며 “특정 단어(자유)까지 참모가 일일이 바꾸지 않기에 연설문은 곧 대통령의 소신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도어스테핑 36회…언론과 가장 많이 접촉한 대통령
자유를 강조한 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겼다. 일반 직장인처럼 출‧퇴근하며 국민, 언론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함께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을 도입했다. 아침마다 기자들을 만나 각종 현안에 대해 짧게는 30초, 길게는 5분 가량 질문을 받았다. 16일까지 윤 대통령이 진행한 도어스테핑 횟수는 총 36회다. 이명박(18회)·박근혜(16회)·문재인(19회) 전 대통령이 임기 전반에 걸쳐 기자들과 만난 횟수를 이미 뛰어넘었다.
4번의 낙마…계속된 ‘장관 후보자 부실검증’ 논란
윤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구상과 달리 ‘불통 논란’이 불거졌다. 야당과 언론의 지적에도, 각종 논란에 휘말린 장관 후보자를 연이어 지명‧임명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11명, 인사청문회 없이 2명을 각각 임명했다.
장관 인사 성적표는 ‘낙제점’이었다. 장관 및 장관 후보자만 4명이 낙마했다. 김인철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정호영·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신상 의혹에 휩싸여 줄줄이 물러났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신임을 받던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논문 표절’,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논란 끝에 지난 8일 자진 사퇴했다. 공정거래위원장도 송옥렬 후보자가 지난달 10일 사퇴 뒤 후임을 구하지 못했다.
24% 지지율…‘탄핵 사태’만큼 차게 식은 민심
24%. 지난 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윤 대통령 지지율이다. 부정평가는 66%였다. 국민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윤 대통령의 국정 능력에 ‘물음표’를 띄운 셈이다. 악화된 경제 상황, 이어진 인사 논란, 여당의 내홍이란 ‘삼중고’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는 심상치 않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개입 의혹으로 탄핵당하기 직전인 2016년 10월3주차(25%)와 비슷한 수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중 지지율 최저치는 2021년 4월5주차 29%였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윤 대통령이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산 수입 소고기 광우병 논란에 휘말렸던 이 전 대통령은 취임 70일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고, 100일 되던 시점엔 10%대까지 추락했다.
이에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지난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윤 대통령의 성적을 “25점”이라고 혹평했다. 이 전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자신을 향해 ‘이 XX’라고 욕설했다며, “개인적으로 수모”라고 덧붙였다.
54분 기자회견…12개 질문으로 해소하지 못한 ‘물음표’
우려 속에 취임 100일을 맞은 윤 대통령은 17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난 휴가 기간 정치를 시작한 후 1년여의 시간을 돌아봤고,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면서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다. 국민께서 안심할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으로 모두 20번 등장했다.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단어는 ‘경제’(18번)였다.
지난 100일간 이어진 논란도, 산적한 현안도 많았다. 이에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예정됐던 회견 시간(40분)을 약 14분 가량 넘겼다. 기자들은 ▲지지율 침체 원인 ▲인사 논란에 대한 해결 방안 ▲여당 내홍에 대한 입장 ▲대북‧대일 외교 정책 방향 ▲폭우피해 방지 계획 등 12개의 질문을 던졌다. 이 때마다 윤 대통령은 원고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전했다.
그러나 이날 관심을 모았던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사적채용’, ‘취임식 초청자 추천’ 논란, 야당을 겨냥한 ‘사정 정국’ 등에 대한 질의는 없었다. 윤 대통령이 ‘긍정적인 숫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한편, 기사에서 인용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지난 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를 조사한 결과다. 무선(90%)·유선(10%)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11.7%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