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기 어려운 벽이었던 ‘MLB 아시아 내야수’, 김하성은 달랐다
  • 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0 15: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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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주전 유격수로 단단한 뿌리내려
아시아 출신 투수·외야수는 즐비…내야수로는 김하성이 새 역사 써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메이저리그 3000안타 달성자 33명 중 가장 늦은 나이(만 27세)로 데뷔한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마쓰이 히데키. 뉴욕 양키스의 4번타자였던 그는 아직도 양키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MVP로 남아 있다. 한국의 추신수. 아마추어 선수 신분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그는 200홈런을 유일하게 기록한 아시아 선수다. 그리고 다른 아시아 선수들은 한 번도 하지 못한 3할-20홈런-20도루를 두 번이나 달성했다.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MVP가 된 그는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 그리고 최초의 10승-20홈런에 이어 15승-30홈런도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김하성이 6월10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4회 안타를 친 뒤 1루로 질주하고 있다. ⓒAP 연합

유격수 수비, 내셔널리그 3위… 골드글러브도 노려볼 만

이렇듯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 도전해 성공한 아시아 출신 야수는 딱 4명이다. 야수가 아니라 ‘투수 겸 타자’인 오타니를 제외하면 추신수·이치로·마쓰이 3명으로, 이들은 모두 외야수다. 많은 아시아 내야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야구의 꽃으로 불리는 유격수는 더더욱 그랬다. 마쓰이 가즈오 등 일본을 대표하는 유격수들이 도전했지만 강한 어깨와 놀라운 스피드를 지닌 중남미 선수들에게 밀려 다른 포지션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 경쟁을 이겨내고 있는 아시아 유격수가 있다. 바로 김하성이다.

아시아 유격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왜 실패했을까. 메이저리그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은 시속 151km로 KBO리그 평균인 144km보다 무려 7km 빠르다. 강속구 투수가 한국보다 더 많은 일본도 평균 구속은 KBO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투구가 빠르다는 건 타구 속도 역시 빨라진다는 걸 의미한다. 평균 신장이 185cm인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거구인데도 더 빨리 달린다. 그만큼 더 빨리 날아오는 공을 더 빨리 처리해야 한다.

아시아 내야수들은 자국 리그에서 했던 수비를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더 빨리 잡고 더 빨리 공을 빼내며 더 빠른 송구를 해야 한다. 대다수가 실패한 이 과정을 김하성은 통과했다. 그리고 이제는 최고의 수비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현대 야구는 더 이상 타율·홈런·타점으로 야수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동안 등한시됐던 수비 플레이까지 하나하나 따져 공격·수비·주루가 모두 포함된 ‘종합 기여도(WAR)’를 계산한다. 2할4푼을 치면서 뛰어난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는 30홈런을 치는 지명타자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메이저리그 현지 중계진으로부터 ‘Awesome(경이로운) Kim’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하성의 수비는 어떤 수준일까. 김하성의 유격수 수비는 내셔널리그 3위 수준으로,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는 골드글러브도 노릴 수 있다. 지금까지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아시아 선수는 우익수로 10개를 따낸 이치로가 유일하며, 내야수는 아예 없다. 더 대단한 건 다른 유격수들과 달리 2루수와 3루수를 틈틈이 오가고 있다는 것으로, 김하성은 2루와 3루 수비에도 빈틈이 없다.

2020년 12월 김하성은 포스팅을 통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했다. 계약 조건은 4년 2800만 달러로, 강정호의 4년 1100만 달러와 박병호의 4년 1200만 달러를 넘어서는 한국인 야수 역대 최고 대우였다. 연평균 700만 달러는 메이저리거 평균인 438만 달러를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김하성은 몸값을 해내고 있을까.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총연봉을 WAR의 총합으로 나누면 1.0당 700만 달러 수준이다. 700만 달러 선수가 1.0을 기록하면 평균은 했다고 할 수 있다. 김하성은 지난해 2.0을 기록했고, 올해는 시즌의 3분의 2를 소화한 시점에서 3.0을 기록하고 있다. 몸값을 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 진출 후 김하성의 모습이 어색한 건 그가 KBO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유격수였기 때문이다. 김하성은 KBO리그에서 마지막 두 시즌 동안 종합 공격력이 146과 147로 리그 평균인 100을 크게 상회했다. 반면에 메이저리그에서는 지난해 70에 그쳤고, 올해에는 101을 기록 중이다. 101은 메이저리그 유격수 평균인 92보다 크게 좋으며, 토론토의 스타 유격수인 보 비셰트(104)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샌디에이고의 단장인 A. J. 프렐러는 자신이 원하는 선수가 나타나면 물불 안 가리고 영입하기 때문에 ‘매드맨(Mad Man)’으로 불린다. 엄청난 추진력은 김하성을 영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샌디에이고의 김하성 영입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미국 통계분석 사이트의 높은 평가 때문이었다. ‘팬그래프’는 김하성의 공격력이 첫해 117부터 시작해 올해 118을 거쳐 내년에는 121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120을 기록할 수 있는 700만 달러 유격수를 놓칠 프렐러가 아니었다.

 

최고의 유격수 타티스 밀어내고 주전 굳힐 기회

메이저리그에서도 선구안이 좋은 김하성의 문제는 빠른 공 대처다. 방망이가 늦을 때가 많다 보니 공의 아래를 때린 팝 플라이 비중이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높다. 지금까지 실패한 아시아 타자들은 모두 이 문제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김하성은 적응하기 시작했다. 타구 속도 95마일 이상 하드 히트 비중이 6월까지는 메이저리그 평균인 35.8%보다 낮은 24.2%였지만, 7월 이후로는 41.3%를 기록 중이다. 95마일 이상 공을 공략한 안타도 6월까지 70경기에서 두 개뿐이었지만, 7월 이후로 36경기에서 5개다. 김하성은 조금씩 구속을 따라잡고 있다.

김하성에 대해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초반에 고전할 수 있지만 결국은 평균 이상의 타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적이 있다. 만 25세의 나이로 도전한 김하성은 전성기가 지나고 건너오는 다른 아시아 타자들과 달리 ‘시간’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샌디에이고와 김하성이 계약했을 때 사람들이 놀랐다. 샌디에이고에는 이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라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샌디에이고와 김하성의 선택은 갈수록 절묘한 수가 되고 있다. 지난겨울에 모터사이클을 타다 당한 부상으로 시즌의 3분의 2를 결장한 타티스가 최근 금지약물 검사에 적발돼 80경기 출장 정지를 받음으로써 올 시즌 남은 경기와 내년 시즌 초 33경기를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샌디에이고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김하성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수비를 완성한 김하성이 공격에서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샌디에이고는 200경기 가까이를 결장하고 돌아오는 타티스의 포지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샌디에이고의 동료들과 현지 팬들은 김하성을 각별히 아낀다. 한 경기만 보게 되더라도 김하성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고 있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하성은 도전하고 있다. 아시아 출신 최고의 유격수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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