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처분 인용’에 대비한 윤핵관들의 세 가지 시나리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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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복귀 막아야 한다”는 ‘동상(同床)’, 방법론엔 ‘이몽(異夢)’
‘기각’시 조기 전대 급물살…이준석은 장외서 ‘끝장 여론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심문을 마친 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진행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심문을 마친 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이제 막 100일차를 넘긴 집권여당의 운명이 송두리째 법원 손에 맡겨졌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여권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가처분 첫 심문 기일이었던 17일,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법정에서 맞붙은 이준석 전 대표와 국민의힘은 법원의 인용 또는 기각 결정에 따른 각자의 돌파구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국민의힘, 그 중에서도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은 대체로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혹여라도 인용 결정이 날 경우 당 전체가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만큼, 인용 시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다만 윤핵관으로 한 데 묶인 이들 사이에서도 당의 미래를 가를 여러 갈래의 시나리오가 흘러나온다. 각 시나리오의 확고한 공통분모라면 오직 ‘이준석의 복귀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이 전 대표는 법원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윤핵관과의 전쟁’을 예고한 상태다. 윤핵관들이 ‘이준석 결사반대’를 외치는 만큼 이 전 대표도 윤핵관이 주도하는 국민의힘을 더는 두고 볼 생각이 없다. 이러한 치킨게임 속에서 법원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 여권은 카오스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당이 선포한 ‘비상상황’은 이제 진짜 오게 될지 모른다. 현재 당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비상시 대피’ 시나리오를 정리해봤다.

 

[인용 시나리오 1] 일부 절차 수정해 주호영 비대위 강행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할 경우 갓 출범한 주호영 비대위는 첫 발도 떼보기 전에 무산된다. 하지만 주호영 위원장은 가처분이 인용되더라도 당장 비대위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주 위원장은 “인용 이유에 따라 절차가 미비하다고 하면 절차를 다시 갖추면 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법원에서 지적한 절차상 문제만 수정해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겠단 계산이다.

가처분 인용 시 국민의힘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 가지 시나리오를 주 위원장이 직접 제시한 셈이다. 주 위원장의 경우 당내 윤핵관으로 분류되진 않지만, 이 전 대표의 복귀를 차단하려는 데 있어선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예정대로 비대위를 운영하며 내년 1월 이 전 대표가 복귀하기 전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주 위원장의 구상에 대해 이준석 전 대표는 17일 법원 심문을 마치고 나오며 “그런 방향으로 법원 판단에 대처한다면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비상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법원이 이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일부 절차만 수정해 비대위 체제가 지속된다면, 이 전 대표로선 당이 시도할 그 어떤 시나리오보다도 크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전 대표의 장외 투쟁 명분과 동력도 그 어떤 시나리오보다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용 시나리오 2] 원내대표 체제 회귀 후 조기 전대

윤핵관 내에선 가처분이 인용돼 위기를 맞더라도 결코 ‘무리수’를 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한 중진 의원은 시사저널에 “가처분이 인용되면 비대위는 위법한 조직이 되므로 유지되기 어렵다”며 “그럴 때일수록 윤 대통령이 강조해 온 ‘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통스러워도 꼼수를 부려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당 대표 없는 ‘원내대표 체제’로 다시 돌아가 당분간 ‘미국식’의 원내대표 중심 정당으로 운영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권성동 원내대표 겸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로 회귀하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이 경우, 당을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며 직무대행 사퇴 의사까지 밝힌 이가 다시 당을 이끌게 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일각에선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가처분 심문이 있기 전날인 16일 당 의원총회에서 권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자연히 조기 전당대회에 대한 목소리는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가 곧장 당무에 복귀할 수 없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고, 권 원내대표는 잇단 논란으로 이미 리더십을 잃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당권을 노리고 있는 윤핵관들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새 지도부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이 전 대표의 복귀는 역시나 차단된다.

 

[인용 시나리오 3] ‘친윤’ 집단 탈당 후 재창당

조금 더 극단적인 시나리오로, 가처분이 인용돼 이 전 대표를 원천 배제하려는 시도가 무산될 경우 윤핵관을 비롯한 당내 친(親)윤석열계의 ‘선(先)집단 탈당-후(後) 재창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가처분이 인용되고 당내 이 전 대표의 입지가 되살아날 경우, 이들은 윤 대통령을 구심점 삼아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도모할 거란 관측이다. 특히 이 전 대표 혹은 이심(李心)을 실은 인물이 차기 당권을 잡게 될 경우 이른바 ‘보수판 열린우리당’ 탄생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무현계 인사들은 새천년민주당에서 대거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고 새로운 여당으로 만든 바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최근 윤 대통령이 김한길 전 의원을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신빙성을 더했다. 김 전 의원은 정계에서 ‘창당 전문가’로 불릴 만큼 그간 숱한 정계개편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의원 주도의 정계개편설은 지난 대선 기간, 김 전 의원이 후보 직속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을 때부터 강하게 제기돼왔다. 당내 친윤 세력은 물론 민주당 내 일부 인사들까지 더해 연합 정당을 꾸리겠다는 구상이었다.

6·1 지방선거 당시 윤 대통령이 직접 충남지사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윤핵관’ 김태흠 지사는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재창당’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운동권 출신 좌파를 제외한 세력 중 정권 교체를 갈망했거나 국민의힘 당원이 아니면서 윤석열 정부 탄생에 기여한 당 바깥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민통합형 재창당’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표현은 다를지라도 이 역시 결국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엔 윤 대통령 지지율을 떠받치는 강성 보수 성향의 지지자들도 조속히 ‘친윤 신당’을 꾸려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정계개편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 전 대표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탈당 및 창당 가능성을 일축하는 동시에 윤핵관들을 가리켜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창당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함께 출연한 패널들이 “그들이 정계개편을 시도하기엔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이 너무 낮다”고 지적하자 이 전 대표는 “‘나는 너무 잘 하고 있는데, 당이 안 좋아서 지지율이 안 나온다’는 판단을 한다면, ‘당을 갈아야만 지지율이 오른다’는 본말이 전도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8월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한 장제원 의원(왼쪽)과 김기현 의원 ⓒ시사저널 박은숙
8월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한 장제원 의원(왼쪽)과 김기현 의원 ⓒ시사저널 박은숙

[기각 시나리오] 이준석은 장외로…‘윤핵관 vs 윤핵관’ 경쟁 본격화

물론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도 절반이다. 이 경우 당 권력의 무게추는 윤핵관에게로 쏠리고,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에도 당장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내 상황 또한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보다는 일단 덜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표의 징계가 결정된 후부터 윤핵관을 중심으로 추진해 오던 ‘이준석 지우기’와 ‘조기 전당대회’를 보다 원활히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처분 기각 시 본안 소송까지 이어가겠다고 이미 공언한 이 전 대표는 긴 소송전에 대응하며 더욱 활발한 ‘장외 정치’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전 대표는 더 적극적으로 당원 가입을 독려하고, 또 직접 만들고 있다는 ‘당원 소통 공간’을 활용하며 2024년 총선에 대비한 ‘내 편 쌓기’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재개한 대(對)언론 행보도 더욱 늘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즉, 가처분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윤핵관을 향한 이 전 대표의 공세 수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최근 여러 지표에서 이 전 대표 지지세가 그와 대립하는 윤핵관들의 지지세보다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극한 갈등을 거치는 동안 이 전 대표가 여론의 우위를 점한 것이다.

여기에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2030 남성 중심으로 책임당원 가입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차기 전당대회에서의 투표권 행사를 벼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발판 삼아 이 전 대표는 차기 전대에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지난 징계와 가처분 기각으로 움츠러든 전세의 재역전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법적 다툼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이 전 대표의 성 접대 관련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여전히 막강한 변수로 남아있다.

가처분 기각은 당내 윤핵관들끼리의 경쟁을 본격화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공공의 적’이었던 이 전 대표를 다시 장외로 내모는 데 일단 성공한 이들이 이제 당 주도권을 두고 서로를 겨눌 것이란 얘기다. 당장 전당대회 시점부터 경선 방식 등 디테일을 두고 크고 작은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전 대표는 물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유승민 전 대표까지 최근 차기 당권 주자로 급부상하면서, 견제와 연대 사이 윤핵관 주자들의 물밑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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