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거리의 미술가 되고파” 김대년 前 선관위 사무총장의 변신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1 13: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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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강골’ 장관 “이제 그림으로 사회 참여”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제가 사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4년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길 바라며 용퇴한 사무총장이 있었다.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중앙선관위에서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했다. 결국 장관급인 사무총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에게 선관위와 선거는 삶 그 자체였다. 공정과 중립 등 선관위의 핵심 가치가 흔들리자 직을 내던지면서까지 쇄신을 열망한 이유다. 이런 그의 정신은 선관위 구성원은 물론 국민 마음에 지금도 깊이 박혀 있다. 

제주에서 ‘해녀’ 주제로 첫 개인전 개최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대년(63) 전 선관위 사무총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후 미술작가로 제2의 인생길을 열어젖혔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고, 공직생활 중에도 놓지 않고 연마해 온 그림을 드디어 본업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선거 행정이 아닌 그림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세웠다. 

정치권 등 각계의 러브콜도 고사하고 묵묵히 그림만 그려 온 김 전 사무총장이 제주도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8월22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주제는 제주 해녀(海女)다. 그가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20여 개 작품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8월12일 그의 전시·창작 공간인 경기도 파주 ‘김대년 갤러리’를 찾았다. 

김대년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8월12일 경기도 파주 ‘김대년 갤러리’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첫 전시의 주제를 제주 해녀로 정한 이유는. 

“퇴직하고 이듬해인 2019년 5월부터 개인 SNS(인스타그램)에서 ‘사심가득’이란 제목으로 그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제주해녀문화보존회 측에서 이 콘텐츠를 보고 제주 해녀 관련 전시를 먼저 제의해 왔다. 제주 출신이 아니고, 해녀에 대한 이해도도 별로 없어 고사하다가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 해녀가 ‘검은 고무 잠수복’이란 다소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로만 대표되는 점이 안타까운 동시에 변화를 시도할 만한 여지도 눈에 많이 띄었다. 맘을 바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한국 문화 알리미로 유명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흔쾌히 전시 기획을 도와줘 더욱 탄력이 붙었다.” 

어떤 변화를 시도했나. 

“우선 해녀의 검은 고무 잠수복에 색동 채색을 입히면 딱 어울리겠다 싶더라. 제주 해녀를 밝게, 긍정적으로 비치도록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치였다. 이어 ‘어린아이와 연예인을 해녀 모습으로 그리면?’ ‘유명 브랜드 로고나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해 본다면?’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펜 수채화와 드로잉, 연필화, 디지털 아트 등으로 구현함으로써 제주 해녀의 삶과 가치를 풍성히 드러낼 수 있었다.” 

김대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첫 개인전을 앞두고 SNS를 통해 소회를 밝혔다.ⓒ김대년 전 사무총장 인스타그램
김대년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미술 작가로서 첫 개인전을 앞두고 SNS에 소회를 밝혔다.ⓒ김대년 전 사무총장 인스타그램

준비 과정에서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제주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제주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자료를 수집하고 해녀들과 만나 인터뷰해도 지역 고유의 정서와 역사성 등을 완벽히 이해하긴 어려웠다. 사실 전체적으로는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지기 어렵다. 제주인이 아니라서 제주 해녀를 주제로 전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렸나. 

“그림이라는 게 자리에 앉는다고 딱 그려지는 게 아니다. 어떨 때는 밤을 꼬박 새워 그리는데,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잠시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전시를 앞두고는 꿈에 제주 해녀가 나올 정도로 몰입해 작품을 준비했다. 그림 외에 챙겨야 할 부분도 어찌나 많던지.” 

공직생활 때와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있겠다. 

“창작의 고통은 분명 있어도 즐기면서 한다. 그러고 보니 선관위에 근무할 때는 정말 숱하게 투개표 관리를 하는 꿈을 꿨다.”(웃음) 

전시의 타이틀이 ‘해녀 랩소디Ⅰ- 더 비기닝’이다. 후속 전시를 염두에 둔 듯하다. 

“제주 해녀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도해 볼 소재가 너무나도 많다. 물꼬는 텄으니 앞으로 계속 전시를 진행해 제주 해녀와 그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제주 해녀가 아닌 다른 주제의 전시도 계획 중인가. 

“그렇다. 오는 11~12월 중에 탤런트 장나라를 주인공으로 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장나라는 선관위 사무관 시절인 2001년 공명선거 홍보대사로 발탁하는 과정에서 처음 만나 퇴직 후인 현재까지 교류를 이어 왔다. 장나라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통, 인연 등 키워드를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선관위에 재직할 때 못지않게 의욕적이었다. 형형한 눈빛도 그대로다. 그는 선관위에서 ‘고졸·9급 신화’로 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이 된 후 장관급인 선관위 사무총장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전업 작가가 된 지금도 김 전 사무총장은 공직자 출신이란 정체성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고졸에다 행정고시 출신이 아니고 선관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능력을 인정받고 장관직까지 맡았다. 사회에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공직 퇴임 이후의 삶은 사회공헌으로 채우고 싶다. 그림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번 전시 수익금부터 제주 해녀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김대년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8월12일 경기도 파주 ‘김대년 갤러리’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김대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파주 ‘김대년 갤러리’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정권이 선관위에 관여하면 안 돼” 

선관위와 선거에 대한 애정도 여전하다. 김 전 사무총장은 SNS 그림 에세이를 통해 종종 선관위 재직 시절을 추억한다. 최근 게시물에선 “국민의 무한신뢰와 사랑 속에 완벽하고 공정한, 아름다운 선거를 실현해 나가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선관위에서 좋은 기억만 쌓인 건 아니다. 그는 선관위 사무총장 임기 후반인 2018년 4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정치 후원금 ‘셀프 기부’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앞서 청와대가 위법 여부를 선관위에 물어 왔다.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었으나 김 전 사무총장은 개의치 않고 철저히 법과 원칙에 따랐다. 이에 정권 실세였던 김 원장이 즉각 사의를 표명했고, 엄청난 후폭풍이 일었다. 

비슷한 시기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사태도 불거졌다. A-WEB는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의 민주적 선거제도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선관위 주도로 출범한 국제기구다. 선관위는 A-WEB가 국내 투표기 제조업체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하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A-WEB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더 커지자 김 전 사무총장은 “A-WEB를 지도감독할 위치에 있는 선관위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며 임기를 두 달가량 남기고 전격 사퇴했다. 선관위 안팎에서 아쉬워하는 반응이 잇따랐다. 2020년 김 전 사무총장을 선관위에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무위에 그쳤다. 당시 여당이 중앙선관위원 자리에 김 전 사무총장을 앉히기로 야당과 합의했다가 돌연 번복하면서다. 선관위는 아직도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부정선거 시비를 자초하며 국민적 지탄과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다. 

2018년 3월5일 김대년 당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년 3월5일 김대년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이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하는 모습ⓒ연합뉴스

위기에 빠진 선관위를 지켜보며 안타까움이 많겠다. 

“선관위는 나 같은 이력의 사람도 편견 없이 받아들여 성공할 기회를 준 대단한 기관이었다. 선거 행정에서 간간이 실수는 있었을지언정 제 역할을 다했고, 국민 신뢰도도 높았다. 총체적 부실에 빠져버린 현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위기 상황이 앞으로도 한참 더 이어질 듯하다.” 

선관위가 망가진 원인을 진단한다면. 

“정권이 선관위에 지나치게 관여하려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일단 대통령이 상임위원을 임명하면 안 된다. 국회 몫의 선관위원 3명 중 여야 합의로 선출하는 1명이 상임위원이 돼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상임위원을 맡으면 정권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여야에서 공동으로 추천한 상임위원이라면 상대적으로 살아 있는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겠나. 선관위가 진정한 헌법기관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줘야만 한다.” 

공직 복귀나 정계 입문 가능성이 일각에서 거론되기도 한다. 

“공직으로 다시 돌아갈 일이 없다. 공정과 중립을 기치로 삼는 선관위 출신이니 정치권에도 일절 기웃대지 않는다. 내가 잘나서 선관위 최고위직까지 오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사무총장 퇴임 전후로 소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오랜 기간 건강을 상해 가며 식당을 운영해 자산을 일궈준 덕이다. 아내와 선관위 후배들이 눈에 밟혀서라도 비겁하게 살 수 없다. 다만 선관위가 위기를 극복해야 나라가 잘된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다. 선관위와 선거를 위한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피하지 않고 나설 것이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비전은. 

“2008년 미국 대선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 포스터를 그려 유명해진 거리 미술가 셰퍼드 페어리를 존경한다. 그의 그림은 물론 수익금을 순수예술에 지원하는 움직임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열심히 활동해 셰퍼드 페어리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꿈꾸며 행동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전업 작가로 나서기 전에 4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았다. 그중 30년은 선관위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애썼다. 이제는 문화예술계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길 소원한다. 이미 김대년 갤러리를 문화예술인들에게 무료로 대관해 주고 홍보도 돕는 등 조금씩 행동해 왔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돼서다.”

제주 해녀를 주제로 그린 미술작품 옆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는 김대년 전 사무총장ⓒ시사저널 최준필
제주 해녀를 주제로 그린 미술작품 옆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는 김대년 전 선관위 사무총장ⓒ시사저널 최준필

■ 김대년 작가는 누구 

1959년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해 문산고를 졸업하고 1979년 농수산부(농림축산식품부 전신) 9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고교 시절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포기해야 했다. 8급이던 1988년 선관위로 적을 옮긴 뒤 공보담당관, 선거연수원장, 관리국장, 기획관리실장, 사무차장을 거쳐 2016년 1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장관급인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공직생활 중 서서히 차오른 사회 참여 욕구는 억눌러온 예술혼과 함께 분출했다. 1989년 신문과 잡지 등에 만평을 실은 게 시작이었다.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하면서 주말엔 만화학원을 찾아 실기를 배웠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경민대 만화예술학과에 다니며 학구열을 더욱 불태웠다. 만화를 기획하고 그려본 경험은 행정에도 톡톡히 써먹혔다. 그는 선관위의 각종 홍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며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사무총장 때인 2017년 5월엔 ‘투표소 가는 길’이란 제목의 그림을 한 일간지 전면에 게재했다. 이는 우표로 발행되기도 했다. 퇴직 후엔 전업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의 셰퍼드 페어리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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