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제발 상처에 소금은 뿌리지 말자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2 08: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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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큰 재앙으로 인해 생긴 생채기보다 그 재앙을 대하는 사람들의 부적절한 처신 탓에 다친 마음이 더 크게 쓰라린 경우가 있다. 2020년 여름 엄청난 폭우로 홍수 피해를 입어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기르던 가축을 잃어 슬픔에 잠겼던 전남 구례 지역의 주민들이 그랬다. 당시 이 ‘한강로에서’(시사저널 제1610호)에 실은 글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어느 당 지도부가 전남 구례의 수해 현장을 돌며 촬영이 우선인지, 주민 격려가 우선인지 모를 행보를 보이던 와중에 영상 속에서 들렸던 ‘비 오니까 빨리 돌자’는 말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참혹한 재해 현장에서조차 멈추지 않고 질척이는 ‘이미지 정치’의 끈질김이라니….” 수재민들의 복구 활동을 돕겠다며 현장을 찾아갔던 정치인들의 볼썽사나운 언행이 마음에 거슬려 썼던 글이다.

조효섭 낙동강홍수통제소장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호상 금강홍수통제소장(가운데)과 김규호 영산강홍수통제소장(오른쪽)이 답변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효섭 낙동강홍수통제소장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호상 금강홍수통제소장(가운데)과 김규호 영산강홍수통제소장(오른쪽)이 답변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처럼 수재민의 마음에 2차 가해를 입히는 ‘납득 불가 언어’는 2년이 지난 올여름에도 반복돼, 아니 더 증폭돼 나타났다. 수해 복구 자원봉사에 나선 한 여당 정치인이 불쑥 내뱉은 말은 과연 실제 상황이 맞나 의아해질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방송사 카메라가 켜져 있는 상태에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한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장본인이다. 앞서 구례에서는 ‘비 맞기 싫다’는 생각이 무분별하게 표현됐다면 이번에는 ‘촬영용 비’를 바라는 속마음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그런 심산으로 수해 현장을 찾았다면 거기서 아무리 열심히 삽질을 한들 피해 주민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을 수도, 힘이 북돋워질 수도 없다, 오히려 실제 현장에서 나타났던 주민의 항의처럼 “방해하지나 말아라”는 말이나 듣기 십상이다.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수재민을 돕고 싶다면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의 자원봉사보다 단단한 입법으로 예방 대책을 빈틈없이 세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난번에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 쏟아진 비가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였다고는 하지만 좀 더 철저하게 사전 대비를 했더라면 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었다. 그 대비에는 지하 빗물 터널 같은 거대 시설 등도 포함되어야 하겠으나, 그처럼 거창한 설비를 들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침수 사태 때 폭우를 무릅쓴 채 물이 넘치는 도로에서 빗물받이를 걷어내고 쓰레기를 건져내 화제를 모은 일명 ‘강남 슈퍼맨’이나 ‘의정부 의인’의 작업은 이미 행정 당국이 앞서서 해야 했던 일들이다. 우기인 여름이 닥치기 전에 빗물받이 내부를 미리 정비했었더라면 침수 피해를 충분히 다 막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각 주민센터에서 운용 중인 ‘무더위 쉼터’처럼 ‘폭우 대피소’를 마련해 폭우 사태 때 인명 피해까지 입었던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미리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빗물이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비극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저지대로 몰려들어 들이찬다. 이번 폭우 피해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재난에 취약한 지역이나 계층은 거의 다 예측이 가능한 대상들이었다. 다만 좀 더 주의 깊게 신경 쓰고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예전 조선 시대에 큰물이 나 피해를 입으면 저지대에 살던 백성들을 대피시키지 못한 관리들이 먼저 곤장형에 처해졌고, 재상들은 면직을 자청했으며, 국왕은 먹는 반찬 수를 줄였다. 그 시대 ‘나리’들처럼 면직을 해 달라고 스스로 청원하지는 못할망정 국민들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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