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순천시, 때 아닌 경전선 노선 ‘순천 패싱론’ 진실 공방
  • 정성환·박칠석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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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지핀’ 노관규 시장 “아무도 연락 못 받아…패싱 의심할 수밖에”
‘진화 나선’ 전남도 “패싱 없었다…현 노선 결정에 순천시도 참여”
시민단체 “순천 패싱론은 정치적 변명에 불과…책임공방도 나와야”

경전선 전철화사업 노선 결정을 둘러싼 ‘순천 패싱’ 논란이 뜨겁다. 정부와 전남도가 경전선 광주~순천전철화 예비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당시 순천시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기존 도심 노선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는 게 ‘순천 패싱론’의 골자다. 순천시의 이러한 주장에 전남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면서 급기야 패싱 공방이 진실게임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순천 왕조 1동 16개 직능단체가 12일 왕조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경전선 전철화 사업의 도심 통과를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순천시​
​순천 왕조 1동 16개 직능단체가 12일 왕조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경전선 전철화 사업의 도심 통과를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순천시​

‘순천 패싱론’은 노관규 순천시장이 먼저 제기했다. 노 시장은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서 “정말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용역을 맡은 국책연구소(KDI)가 순천 도심 통과 노선 결정 문제에 대해 지역 의견을 듣기 위해 전남도로 공문을 보냈으나 전남도는 순천시에 그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노 시장은 이어 “구두로 알렸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도 연락받은 사실이 없고 누가, 언제, 누구에게 구두로 알렸는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며 “문제 제기가 뻔한 순천시를 건너 뛴 소위 패싱한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름 뒤 노 시장은 패싱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지난 6일 올린 글에서도 전남도와 신경전을 계속 이어갔다. 노 시장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경전선 철도는 각 도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중심에 있는 순천의 사정이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 시장은 또 전남도가 패싱 논란을 두고 ‘문자 메시지’ 공문 발송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며 날을 세웠다. 노 시장의 얘기다. 

“어제(5일) (순천시) 도시안전국장의 카카오톡 보고를 접하고 전남도 행정방식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전남도가)모 순천출신 도의원에게 순천에서 계속 ‘순천 패싱’을 주장하면 문자메시지로 알려준 걸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문자메시지를) 공개해주면 좋겠다. 전남행정이 언제부터 문자메시지로 공문을 대신했는지 아주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규정에 따랐는지 궁금하다. 국책연구기관인 케이디아이(KDI)에서 전남도에 문자메시지로 4개 시군의 의견을 듣고자 공문을 대신해 보냈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에 대해 전남도는 조목조목 반박하며 관련 논란 진화에 힘쓰는 모습이다. 우선 노선 결정 과정에 순천시를 ‘패싱’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설명회·공청회 순천시 참석과 중앙정부 의견 제출 등을 근거로 강하게 부인했다. 이상훈 전남도 건설교통국장은 18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간담회를 갖고 예비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시 순천시의 우회노선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노선을 결정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국회토론회·현장방문·기본계획·전략환경영향평가 설명회·공청회에서 주민의견을 수렴했고 순천시도 이런 자리에 참석하며 경전선 사업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작년 9월에도 기본계획 안 협의 시 순천시에서 요구한 도심구간 지하화 의견 등을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며 “노선 선정 시 순천시 ‘패싱’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순천시가 주장하는 ‘현장설명회 의견청취 문자메시지 통보’에 대해서는 “전자우편과 유선으로 미리 통보했고 회의 장소가 변경되면서 부득이 변경내용을 문자로 알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16일 전남CBS라디오 ‘시사의 창’ 인터뷰에 출연해 “일부에서 전라남도가 순천시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고 그러는데 잘못 이해한 부분이다”며 “앞선 경전선 예비타당성 현장 조사 시 순천시에서 나오지는 않았는데 전남도는 관련 내용을 순천시에 문자로 통보한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순천시에서) 나왔더라도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국회의원도 예타 통과 이상의 요구는 추가적으로 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이후 2021년 두 차례 주민공청회를 열었지만 그때까지도 순천시의 의견은 없었다. 노선 지하화나 우회 요구는 그 이후에 제기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순천 도심 관통하는 경전선 무궁화 열차 ⓒ순천시
순천 도심을 관통하는 경전선 무궁화 열차 ⓒ순천시

일각에선 ‘순천 패싱론’을 둘러싼 전남도와 순천시의 진실공방이 이쯤 되면 시민과 도민들은 도대체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재로선 순천 패싱이든 아니든 경전선의 순천 도심 통과라는 결과는 동일하고, 책임 소재만 다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때아닌 패싱론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되는 소모적인 논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예산 850억원이 이미 확보된 가운데 기본계획이 확정·고시되면 곧바로 발주가 이뤄질 상황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와 순천시에서 요구하는 도심구간 우회노선이 국가계획에 꼭 반영되도록 전남도와 시가 공동 노력하는 게 급선무다”며 “시민들 입장에선 순천 패싱론은 정치적 변명에 불과하다. 패싱론의 진실공방에 이어 책임공방도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양 측에 일침을 놨다. 

경전선 전철화 사업은 광주역에서 부산 부전역까지 연결하는 경전선 가운데 1930년 건설 이후 개량되지 않았던 광주∼순천 구간(116㎞)을 전철화하는 사업이다. 이 구간은 전국에서 가장 느린 철도 구간으로 꼽혀왔다. 그동안 수차례 개선 요구가 있었지만 수익성을 이유로 묵살되다가 2019년 12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며 급물살을 탔다. 전철화 사업은 2028년까지 총연장 122.2㎞에 1조7703억원을 들여 최고속도 250㎞의 준고속열차를 운행하는 철도를 구축하는 게 뼈대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광주~부산 간 운행시간은 5시간42분에서 2시간36분으로 단축된다.

그러나 정부는 예타 조사 당시 경제성을 이유로 도심을 관통하는 기존 노선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사업계획을 통과시켰고, 순천시는 지역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도심 우회와 예타 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임동호 순천시청 도로시설팀장은 “기존 경전선이 개선되기까지 90여년이 걸린 상황을 봤을 때 도심을 3분(分)하는 현 전철화 노선이 확정되면 언제 또다시 개선될지 알 수 없다”고 도심 우회론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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