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민주주의의 꽃인가 자본주의의 꽃인가
  •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9 10: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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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당비 내서 공천받고 당선됐다” 소문 도는 선거판
“선거보조금은 청년정치 지원·민주시민 교육에 써야”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작됐고 현대 스위스 칸톤에서 실시되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선거는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불가결하다. 유권자는 선거에서 대표를 뽑아 정해진 임기 동안 자신의 이익과 이해를 대변하도록 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는 의회를 구성하고 정부를 이끈다.

선거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늠자다. 선거가 공정한 경쟁 속에서 주기적으로 실시되고, 그 결과가 패자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면, 민주주의가 그 동네의 유일한 게임이 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민주화 이후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다시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민주주의의 붕괴가 없다면, 이제 권위주의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다는 게 정치학계의 정설이다.

물론 선거권위주의라는 정부 형태도 있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실시되지만 실제로 경쟁은 불공정하고 유권자의 참여도 제한적이며 결과는 조작될 수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증거에 불과하고 선거 결과는 의심스러우며 정권교체는 언감생심이다. 선거권위주의에서는 선거라는 절차의 최소한만 지켜지고 실질적인 내용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선거는 절차적 민주주의 수준에서 최고이고 내용적 민주주의 수준에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월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구의회에 마련된 이태원 제1동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돈 없어도 출마 가능하지만 돈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요새 한국의 선거와 정당을 보면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꽃이 돼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공영제를 실시하면서 돈 없는 사람도 출마할 수 있게 바뀐 지 오래지만, 돈 때문에 출마 의사를 접는 인재가 아직도 적지 않다.

최근인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예로 들면, 아무리 안 써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내는 기탁금과 당에 내는 후보 등록비 또는 심사비는 반드시 내야 했다. 기초와 광역 의원 후보의 기탁금이 각각 200만원, 300만원이다. 기초와 광역 단체장 후보는 각각 1000만원, 5000만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방선거 직전 국회에서 만 29세 이하가 내는 기탁금을 50% 줄여주고, 39세 이하는 30% 낮췄다는 점이다. 또 기탁금 반환 기준의 경우 39세 이하가 전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득표율이 기존 15%에서 10%로 하향 조정됐다. 반액을 돌려받는 기준 득표율은 5%로 완화됐다.

출마 희망자에게 선거가 곧 돈인 이유는 이 밖에도 많다. 선거에 출마하면 선거사무소도 마련하고 선거운동도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선거사무원을 쓰고 홍보용 현수막이나 간판에다 명함, 홍보물, 선거 문자를 수시로 제작·배포해야 한다. 나아가 유세차량까지 빌려야 한다. 이게 다 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실시된 제7회 지방선거에서 후보 1인당 평균 지출비용은 △광역자치단체장 7억6200만원 △기초단체장 1억1900만원 △광역의원 4000만원 △기초의원 3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지방선거부터 피선거권 나이가 18세로 낮춰졌지만 뜻있는 청년들이 돈 때문에 좌절해 출마의 뜻을 접지 않을 수 없었고, 누구나 선거에 몇 번 지면 길거리에 나앉게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선거가 일부 지역위원장에게는 4년마다 서는 장이 되었다. 아직도 선거마다 공천권을 쥐고 돈을 받는 일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다. 2년 뒤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는데 아직 자금이 충분하지 못한 일부 원외 지역위원장에게는 이번 지방선거가 대목이었다는 말이다. 일부 현역 의원도 비슷한 유혹을 쉽게 물리치기는 힘들었을 터다. ‘이번 선거에서 특별당비를 냈는데도 공천을 못 받았다’는 말이 들렸다. 반대로 ‘이번에는 특별당비를 내서 공천받고 당선됐다’는 말도 들렸다. 적잖이 놀랐다. 이번에 정치와 무관한 신인이 많이 등장해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던 차에, 이들이 대체 어떻게 정치에 발을 들이고 공천을 받았는지 궁금해하는 눈초리가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소문도 돌았다.

이러한 소문은 아마 선관위나 검찰·경찰이 이미 접했을 것이다. 선거 부정은 공정한 경쟁을 막고 선거 결과를 왜곡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관계 당국은 선거 부정을 철저히 발본색원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지방선거의 공천제도를 개혁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민적 여론에도 지역위원장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느라 국회나 정당에서 공천제도를 바꾸는 데 앞장서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남은 건 검찰·경찰이 선거 부정을 적발하고 일벌백계하는 일이다.

 

선거보조금·보전금 이중 지원 철폐해야

마지막으로 선거가 양대 정당에는 자본주의 장사가 돼버렸다. 각급 선거마다 정당에 선거보조금이 나오고 선거 뒤에는 선거보전금이 주어진다. 선거보전금이란 당락과 무관하게 15% 이상 득표한 경우 선거비용의 전액, 10~15%를 득표한 경우 절반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양대 정당의 후보들은 대체로 최소 10%의 표를 얻으니 선거비용을 거의 돌려받는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부터 두 당이 선거보조금과 보전금으로 챙긴 돈이 모두 약 2000억원이라고 한다. 정치자금법상 선거보조금은 선거사무소 설치와 운영비 등으로 쓰는 게 가능하다. 이 돈으로 양대 정당은 여의도 금싸라기 땅에 당사를 샀고, 이제 임대수익까지 올릴 것이다.

신성한 선거에서 이렇게 장사를 해도 되나 싶지만 양대 정당이 선거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더 있다. 정당은 100억원대 예비후보 등록비와 그 이상의 경선기탁금, 또 그 외의 여론조사 비용도 걷는다. 게다가 지난 지방선거 때 양대 정당은 여성, 장애인, 청년 등의 공천에 보태라고 모두 3억원 정도의 보조금을 추가로 받았다.

선거보조금과 보전금의 이중 지원을 받는 것과 관련해 중앙선관위는 2013년 “선거보조금에서 보전금만큼 빼자”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냈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정치관계법을 뜯어고쳐 선거보조금과 보전금의 이중 지원을 금지해야 한다. 선거보조금이나 정당의 등록비, 심사비, 기탁금 등 선거와 관련해 걷은 돈은 정당의 인건비나 경상비 대신 청년정치 지원이나 민주시민 교육에 쓰게 해야 한다. 당사 재테크를 통해 버는 임대수익도 무주택자 지원용으로 내놓게 해야 한다. 국민은 압력을 넣고 언론은 감시해 더 늦지 않게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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