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풍경에 녹아들어 더 빛나는 거장들의 건축 작품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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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이타미 준·승효상의 건축이 ‘작품’이 되는 제주
경관 해치는 설계·난개발에 대한 비판 잣대도 그만큼 더욱 엄격
안도 다다오의 유민미술관에서 보이는 성산일출봉 ⓒ김지나
안도 다다오의 유민미술관에서 보이는 성산일출봉 ⓒ김지나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안도 다다오, 강남 교보타워에 이어 최근에는 경기도의 한 천주교 성지에 대성당을 완성한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재일교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로 꼽히는 승효상·이종호 등, 그 중 한 명의 작품만 있어도 화제가 될 만한 이름들이다. 아름다운 경관 속 거장의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제주도는 거대한 건축 전시장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왜 유독 제주도일까. 건축물이 ‘작품’으로서 각광을 받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다 건축물이 위치한 지형이나 풍경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 조화를 만들어내는 방법에서 건축가의 재능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그런 건축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수 있는 넓은 부지와 뛰어난 경관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누가 그 프로젝트를 책임지는가’란 질문에서 시작된다.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제주도립미술관 ⓒ김지나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제주도립미술관 ⓒ김지나

거장들의 건축 프로젝트 실현할 최적의 조건 갖춰

유명 건축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 때문에 개인보다는 공공이나 민간 기업에서 주관하는 개발 사업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공공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는 ‘공정성’과 ‘경제성’에서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일반 국민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설계비를 요구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공공부문에서 유치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 대상이 외국인 건축가일 경우에는 문화적, 정서적인 문제까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반면 민간 기업은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운신의 범위를 누릴 수 있고, 그들의 취향과 자본력에 따라 얼마든지 뛰어난 건축가를 모셔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제주도에는 도립미술관 중에서도 건축 작품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례들이 몇몇 있다.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제주도립미술관이 대표적이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주변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형태가 인상적인데,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김창열도립미술관도 유명하다. 이곳은 단지 그림을 소장하는 공간을 넘어, 김창열의 예술 철학이 미술관 형태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어 사람들에게 독특한 관람 경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역시나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것은 설계한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소위 ‘거장’의 작품들이다. 안도 다다오는 현대, 휘닉스와 같은 기업의 의뢰를 받아 본태박물관, 유민미술관(구.지니어스 로사이), 글라스하우스를 설계했고, 이타미 준은 재일교포 사업가가 제주도에 구상한 거대한 주택단지 내의 미술관, 교회, 클럽하우스 디자인을 도맡았다. 롯데는 승효상을 비롯해 이종호, 오미니크 페로, 켄고 쿠마 등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을 대거 모셔와 리조트 단지를 완성하기도 했다.

일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서귀포시 타운하우스 단지 내에 설계한 방주교회 ⓒ김지나
일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서귀포시 타운하우스 단지 내에 설계한 방주교회 ⓒ최은정(@highromance)

제주 경관과 주민 공간에 대한 존중 우선돼야

물론 세계적인 건축가가 만들었다고 해서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섭지코지 일대의 개발권을 따낸 휘닉스 호텔앤드리조트는 안도 다다오와 마리오 보타에게 여러 건축물의 설계를 맡겼는데, 제주도의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건축물의 존재보다 제주의 자연과 풍경을 일부 사기업에서 점유하고 독단적으로 개발하면서 주민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각종 개발 사업이 난무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제주도지만, 세심하고 독창적인 공간 기획은 제주도의 매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해주기도 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 이상의 자본과 영향력을 가진 일부 개인 혹은 집단이 지역의 자연, 문화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복불복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 현 제주도 개발의 진짜 문제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좋은 건축 프로젝트가 체계적으로, 공익을 위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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