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 맞지만 인정할 순 없다?…성전환 대응 쫓아가지 못하는 법률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8 12:00
  • 호수 17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의 정자로 낳은 두 딸,
日 법원에서 첫째만 친자 인정되고 둘째는 인정 안 돼

8월19일, 일본 사회에 커다란 숙제를 안긴 법원 판결이 나왔다. 도쿄도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그는 과거 동결해 두었던 자신의 정자를 이용해 사실혼 관계의 여성 파트너 B씨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다. A씨는 이 두 딸에 대해 ‘친자인지’(혼외 출생자를 생부나 생모의 자녀로 인정하는 행위) 요구 소송을 했고, 2심 재판에서 도쿄 고등법원이 성전환 이전에 태어난 첫째 딸에 대해서만 법률상 친자관계를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성전환 이후 태어난 둘째 딸은 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세중

1심에선 두 딸 모두 친자관계 인정받지 못해

그보다 앞서 지난 2월 실시된 1심 재판에서 두 딸 모두 A씨의 친자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온 것에 비해선 그나마 다소 진일보한 셈이다. 당시 도쿄 가정법원은 성전환으로 여성이 된 A씨가 ‘부친’이 될 수 없으며, A씨가 자녀를 직접 분만해 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친’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므로 A씨와 두 딸의 ‘친자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던 A씨는 2018년 11월 일본의 ‘성 동일성 장애 특별법’에 따라 남성에서 여성으로 법률상 성별을 변경했다. A씨의 성전환 이전부터 사실혼 관계에 있던 파트너 B씨는 A씨가 과거 동결해 보존해 두었던 정자를 이용해 첫째 딸을 2018년 여름 출산했다. 첫째 딸이 태어난 이후 A씨의 법적 성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후 B씨는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A씨의 정자를 이용해 2020년 여름 둘째 딸을 출산했다. 두 딸 모두 A씨의 정자와 B씨 난자의 결합으로 태어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A씨가 부친, B씨가 모친에 해당한다.

그러나 A씨와 B씨가 도쿄도에 두 자녀에 대한 인지신고를 한 결과 두 딸을 직접 낳은 B씨와 딸들 사이에는 법률상 친자관계가 인정된 반면 A씨 본인과 딸들의 친자관계는 인정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동성 커플의 인지신고서를 수리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A씨 커플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두 딸과 A씨의 친자관계를 인정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법적으로 모친이 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해 부친이 돼도 상관없다. 친자로서 인정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밝혔다.

제소 후 약 8개월이 지난 올해 2월28일, 도쿄 가정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오가와라 야스시 재판장은 “법률상 친자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현행 법제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민법에서 ‘부친’은 남성, ‘모친’은 여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상 여성인 A씨가 부친으로 인정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A씨는 “생물학적으로 부모와 자식 관계이며 실제로 양육도 하고 있는데 친자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것에 모순을 느낀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의 변호인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임신 및 출산 방식이 다양해진 현대의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한 경직된 사고라며 판결을 비판했다. 또한 성 동일성 장애 특례법에 따라 성인 자녀를 둔 부모가 성별을 정정해 호적상 여성이지만 부친으로 기재되거나 남성이지만 모친으로 기재된 경우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번 사례는 단지 미성년 자녀라고 해서 친자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일본은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의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명문 규정을 둔 유일한 국가로, 만약 이번에 법원이 두 딸을 A씨의 친자로 인정했다면 미성년 자녀의 부모가 성별을 정정한 예외적 사례가 될 수도 있었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을 제기했고 6개월 뒤인 8월19일, 도쿄 고등법원은 A씨의 첫째 딸에 대해서만 친자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성전환 이후 태어난 작은 딸의 경우, 생물학적 부자관계는 인정되지만 출생 당시 A씨의 법률상 성별이 여성이기 때문에 부친이라고 할 수 없으며, A씨가 직접 둘째 딸을 분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친으로 인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판결에 대해 A씨는 첫째 딸과의 친자관계가 인정돼 기쁘다면서도 자신의 성전환 시기에 따라 친자관계 인정 여부가 갈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상고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호인 또한 “같은 부모, 같은 동결정자로 탄생한 자매임에도, 자매간 공평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항소심 판결을 비판했다. 도쿄산업대학 와타나베 야스히코 교수(가족법)는 “생물학적 성과 법률상 성을 정리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성과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되는 가운데, 현행 법률로는 성전환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률로는 한계”…법 정비 필요성 제기돼

일본에서는 법률적으로 혼인 관계에 있는 남녀가 제3자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아 임신해 출산한 경우 직접 아이를 낳은 여성을 모친으로,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출산한 경우에는 남편을 부친으로 인정하고 있다. 2013년에는 성전환을 통해 남성이 된 남편이 결혼 후 제3자의 정자를 받아 출산한 아이에 대해 부부 모두에게 친자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성전환 이후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커플의 경우, 제3자의 난자 혹은 정자를 제공받아 출산한 자녀와의 친자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와세다대학 다나무라 마사유키 교수(가족법)는 “보조생식기술의 발달로 인해 A씨의 경우와 같은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행 법률로는 법원이 사안별로 개별 판단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법 정비 및 사회적 지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판결에 따라 A씨와 첫째 딸의 친자관계가 인정됨으로써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의 성전환을 금하는 일본의 현행법과 현실이 부합하지 않는 모순도 노출되었다. A씨의 사례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향후 한국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에 따라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의 성전환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나 올해 7월부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의 성전환 허용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 사법부가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에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