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테스트베드 한국에 전 세계 이목 쏠린다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2.08.26 11: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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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시장 성장률 기록
좁은 지형·밀집된 인구·가혹한 날씨 등 최적 환경

전기자동차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국 정부는 환경 규제를 강화하며 전기차 생산·판매를 독려하고 있다. 완성차 기업들도 이런 기조에 발맞춰 전기차를 빠르게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 판매 확대뿐 아니라, 제품 경쟁력을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이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의 테스트베드로 주목받고 있다. 사 진은 서울 강남의 한 전기차 충전소 모습ⓒ연합뉴스

작지만 큰 한국 전기차 시장

실제로 한국 자동차 시장은 큰 편에 속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판매량은 172만6000여 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 세계 8위권 수준으로 중국, 미국, 유럽, 일본 등 상위 국가들과 비교해 인구수 대비 높은 판매량이다. 특히 전기차 시장의 경우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0만681대로 전년 대비 115% 증가했다. 중국(15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이다.

우선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해 아이오닉5와 EV6, GV60 등 전용 플랫폼 ‘E-MGP’를 탑재한 순수 전기차를 내놓으며 국내 전기차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수입차 브랜드 중에선 아직 절대강자가 없다. 테슬라가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빠르게 전기차를 내놓으며 시장을 선점했으나, 최근에는 기세가 다소 꺾였다. 자동차 시장 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테슬라코리아 판매량은 6746대로 전년 대비 42% 감소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BMW코리아, 아우디코리아, 폭스바겐코리아 등 기존 수입차 강자들이 주력 전기차 모델을 내놓으며 점유율 확대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벤츠는 핵심 모델인 E클래스 기반 전기차 EQE를, BMW는 iX, iX3, i4에 이어 하반기 i7을 출시할 계획이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보급형 모델인 Q4 e-트론과 iD.4를 각각 내놓고 판매 확대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볼트EV, 볼트EUV에 이어 2025년까지 전기차 10종을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도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BYD는 그동안 상용차 시장에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전기 승용차 판매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YD 한국법인은 최근 씰, 돌핀, 아토 등 7개 차종 상표를 출원했으며 이 가운데 씰이 가장 먼저 한국에 출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BYD는 올 상반기 테슬라에 이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2위를 차지한 만큼 국내 시장 진출 시 파급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보조금 확대에 나서며 전기차 판매를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전기 승용차 16만4500대를 포함해 총 20만7500대에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작년(10만1000대)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전 세계 완성차 기업들이 한국을 주의 깊게 보는 것은 비단 판매량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이 전기차 패권다툼을 앞두고 제품의 성패를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거환경이 꼽힌다. 한국은 서울과 경기권에 인구의 절반가량이 밀집해 있다. 좁은 지역에 인구가 몰려 있다 보니 자연스레 아파트, 빌라와 같은 공동주거 방식이 발달했다. 여기에 더해 앞서 언급한 대로 인구수 대비 자동차 보유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는 2507만 대로 인구 2.06명당 차 1대를 보유하고 있다. 대량의 자동차가 한곳에 몰려 있기 때문에 전기차 충전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은 “한국은 아파트와 빌라 같은 집단거주지가 대부분이라, 공용주차장에서 완속충전을 하기 쉽지 않다”며 “고속충전이 향후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의 주거 형태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테스트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고 말했다.

요컨대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보급과 관련해 가장 골머리를 썩고 있는 충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환경인 셈이다. 최근 전기차 주행거리가 400~500km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은 주행거리보다 충전시간을 전기차의 가장 큰 불편함으로 꼽고 있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전기차 구매자 7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기차 실제 운행 후 가장 불편한 요소로 긴 충전시간이 꼽혔다. 결국 완성차 기업들도 전기차 시대에 경쟁 브랜드 대비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충전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고, 한국의 독특한 지형적·주거적 특성이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7월19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으로부터 전기차 배터리 소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여러 악조건이 전기차 테스트하기에 딱!”

게다가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안정적인 충전 인프라를 갖춘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간한 ‘2022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충전기 1기당 전기차 대수는 2.6대로 집계됐다. 수치가 낮을수록 충전기 1기당 감당해야 하는 전기차가 적다는 의미다. 한국은 조사 대상 30여 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 평균은 충전기 1기당 9.6대다.

날씨도 전기차 성능을 확인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효율이 저온에서 급격히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만큼 주행거리도 줄어들게 된다. 통상 전기차 배터리 성능은 영상 5도를 기준으로 온도가 10도씩 떨어질 때마다 30% 가까이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하 5에선 전기차 연비가 30%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은 겨울 날씨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만큼, 한국에서 운행 중인 전기차 데이터가 향후 신차 개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김필수 협회장은 “한국은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이가 크고, 산악지대가 많아 극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K9과 같은 방산무기들이 한국의 극한 환경에서 다양한 시험을 거쳐 전 세계에서 성능을 인정받은 것처럼, 전기차도 국내 환경이 테스트에 유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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