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외면’ 경쟁 펼치는 여야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7 12: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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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 민주당에 대한 기대도 접어…새 정치 세력 등장도 요원하기만

“민주당이 아닌 '개딸' 정당 될까봐 무섭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자리를 놓고 이재명 후보와 경쟁하고 있는 박용진 후보의 말이다. 민주당 당무위원회가 최고의사결정 방법을 전 당원 투표로 하는 개정안을 의결한 데 대해 “한쪽이 독식한 지도부가 결합되면 강성 목소리와 편협한 주장 때문에 당이 민심과 고립된 성에 갇히는 결과가 나올까봐 걱정스럽다"면서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개딸’들의 성원을 받는 이재명 당 대표의 선출은 확정적이다. 이미 ‘확대명’(확실히 당 대표는 이재명)이다. 당 대표뿐만이 아니다. 최고위원 경선에서도 친이재명계 후보들의 약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현재 5위권 안에 있는 정청래·고민정·서영교·장경태·박찬대 후보 가운데 고 후보를 제외한 4인은 모두 친명계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이번 전당대회가 끝나면 민주당은 ‘이재명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의 주류 세력이었던 ‘친문’은 해체 혹은 무력화되면서 ‘친명’으로의 권력 이동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데도 오히려 당의 확고한 권력이 된 데는, 민주당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팬덤 강성 지지층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이런 모습으로 세워진다면, 민심과의 어긋남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쉬지 않고 달리는 이재명 후보의 모습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하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정권교체 여론이 강했던 환경이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배에 대한 이 후보의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여러 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이재명 대통령을 막기 위해 윤석열을 찍었다’는 층의 존재가 한몫했음이 공공연한 사실로 돼있다. 당연히 이 후보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통감하며 뒤로 물러서서 민주당이 다시 태어날 환경을 조성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이 후보는 당내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셀프 공천’을 통해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역시 많은 반대가 당내에 있었지만, 기어코 당 대표에까지 출마하며 다시 ‘이재명당’을 만들려고 나섰다. 자신을 향한 수사들을 막을 ‘방탄’을 위해 그 모든 비판을 무릅썼다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인 이재명 의원이 7월31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시민 토크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또다시 역대급 강성 지도부 탄생

사실 지난해 4·7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3연패한 민주당으로서는, 차라리 폐허 위에서 새롭게 재건하는 것이 의미 있는 길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난맥상과 지지율 추락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작금의 정국에서 그 의미는 더욱 절실하다. 이제라도 민주당이 팬덤과 극단주의 정치에서 벗어나 민심의 눈높이에 맞추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민주당을 떠났던 민심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민주당과 지지층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그냥 가기로 한 것이다. 이재명 당 대표의 탄생은 민주당이 담대한 변화를 시도할 길을 막아버린 셈이다.

민주당의 이러한 선택은 상당 기간 민주당을 ‘이재명 지키기 투쟁’에 가둬놓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검찰과 경찰이 수사 중인 이 후보 관련 사건은 10가지에 달한다. 이 후보는 모두 정치보복이라 주장하지만, 사건들 가운데는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최종 판단이 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후보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지키기 위해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테니 결국 민주당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이번 전당대회가 낳은 또 하나의 문제는 역대급 강성 지도부의 등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 역사에서, 과거 반독재투쟁 시절을 제외하고는, 지난 2년여와 같은 강경 노선이 당을 이끈 적은 없었다.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이후 계속된 민주당의 입법독주는 대선 패배를 낳았고, 그럼에도 반복된 ‘검수완박’ 입법은 지방선거 참패를 낳았다.

균형성을 상실한 민주당의 강경 일변도 노선은 특히 중도층이 민주당을 떠나가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런데 곧 들어설 민주당 새 지도부의 면면을 보면 ‘친명’ ‘비명’을 불문하고 강성 인물들 일색이다. 강성 지지층들이야 열광할 라인업이 되겠지만, 그동안 민주당의 강성 팬덤정치에 염증을 느꼈던 사람들에게는 결코 달라지지 않겠다는 민주당의 오기로 비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8월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이쪽저쪽 다 싫다는 ‘정치혐오층’ 늘어나

지금 윤석열 정부는 출범 수개월 만에 지지율이 추락하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아 국정을 운영하려는 코드 인사와 검찰 편중 인사는, 여권 세력이 그토록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 진영정치의 ‘시즌 2’였다. 정치를 새로 시작한 대통령이니 우리 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해줄 것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윤 대통령이 손잡은 파트너는 ‘윤핵관’들이라는 낡은 정치의 표상이었다. 이럴 거면 대체 정권교체는 왜 한 것이었을까. 정권교체를 했으니 이전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랐던 국민의 기대는 순식간에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게다가 집권여당은 집권 초기의 황금 같은 시간에 이준석발 난투극에 휩싸여 있으니 국민에게 면목이 없게 되었다. 물론 4개월도 지나지 않은 정부이니 민심을 직시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다시 회복할 기회는 열려 있다. 그래도 새 정부의 출발선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윤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 정치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별수 없다는 좌절감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말았다. 그 책임은 무척이나 엄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1야당의 전당대회가 갈 곳 잃은 민심을 다시 끌어안는 계기가 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정부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이동하기에는 그쪽 또한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받들기는커녕, 더욱 강성화돼 팬덤정치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 민심이 뭐라고 한들,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비친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설혹 정치적으로 사망한들, 그것이 민주당이 사는 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 모두 민심의 외면을 받는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형성에 대한 요구가 등장할 법도 하다. 그런데 정치권은 조용하기만 하다. 새로운 정치적 흐름의 싹이 될 만한 대안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라는 프레임에 갇혀 국민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기득권화된 내부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동력을 찾기 어렵다.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정치인이 너무도 적어진 결과다.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다는 정치혐오층이 다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1년여 동안 그 큰 선거들을 떠들썩하게 치른 결과가 고작 이런 현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 정치는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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