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대일로의 부채 덫에 걸려든 저개발 국가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6 15: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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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아프리카 국가들, 무분별한 중국 투자 유치로 빚더미에
중국과의 뒷거래 의혹으로 독재자들 배만 불려

7월2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다. 상하이협력기구는 2001년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고 중앙아시아 4개국이 참여하는 안보경제협력기구로 출범했다. 회원국들은 본래 국경선 획정과 국경 주둔 병력 감축을 위해 모임을 시작했다가, 점차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합동군사훈련까지 벌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경제력이 성장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펼치면서 인도·파키스탄·몽골·이란이 옵서버로 가입했다. 스리랑카는 대화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외교장관 회의에는 새로운 대화 파트너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미르 칸 무타키 탈레반 임시정부 외교장관 대행이 참석한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도 중국의 허가를 얻어 토머스 웨스트 국무부 아프간 특별대표와 브라이언 넬슨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이 참석했다. 회의를 주관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무타키 장관 대행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국가 재건을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계해 진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AP 연합Xinhua
8월16일 스리랑카 항만 관계자가 함반토타항에 도착 한 중국 위안왕5호를 맞고 있다.ⓒAP 연합

정권까지 바뀐 스리랑카의 위기

사실 이번 회의에는 스리랑카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7월5일 스리랑카 정부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고, 15일에는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그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는 5월9일 이미 사임한 바 있다. 마힌다 전 총리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뒤이어 동생인 고타바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2019년부터 총리직을 맡아왔다. 스리랑카는 대통령 중심제를 기본으로 총리가 내정에 상당한 권한을 갖는 의원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나라다.

라자팍사 가문의 집권 기간에 스리랑카는 노동집약적 산업과 관광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2009년에는 소수민족인 타밀족 반군과의 내전을 종식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2010년부터 수년 동안 8%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했다. 이러한 호황 덕분에 라자팍사 형제는 장기 집권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면서 위기가 닥쳤다. 관광업은 큰 타격을 받았고 선심성 감세정책으로 외환보유고가 급속히 바닥났다. 결국 올해 들어 1948년 독립 이래 최악의 경제난에 빠져 발전소조차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7월20일 스리랑카 의회는 고타바야 전 대통령의 임기인 2024년까지 국정을 수행할 위크레마싱게 신임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지만 국가부도 상태인 데다, 민심마저 분열되어 국정 관리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스리랑카는 이번 상하이협력기구 외교장관 회의에 불참했다. 원래는 지위를 대화 파트너에서 옵서버로 격상하길 줄곧 원했으나 그마저도 불투명하다. 현재 스리랑카 내에서는 채무불이행을 맞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중국 책임론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라자팍사 형제가 집권하면서 견지했던 친중 정책과 관련이 있다.

내전이 종식된 직후부터 스리랑카는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로 항만·공항·고속도로 등을 건설했다. 자금의 일부는 국채로 발행했지만, 대부분은 일대일로를 앞세운 중국에서 빌렸다. 문제는 건설을 무리하게 진행했을 뿐 수요는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완공된 뒤 경제성이 없어 수익을 내지 못했고 빚만 늘어났다. 그로 인해 2010년 217억 달러였던 외채는 2021년 510억 달러로 불어났다. 반대로 스리랑카의 외환보유고는 지난 3월 19억 달러까지 감소했다. 이 와중에 중국은 최대 채권국이 되어 스리랑카 외채에서 최대 26%를 차지하고 있다.

스리랑카인들이 분노하는 점은 중국이 빌려준 돈의 쓰임새다. 대부분 라자팍사 형제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인 함반토타에 투자가 집중됐다. 하지만 11억 달러 이상이 투자된 함반토타항은 수요 부족으로 외채를 갚기는커녕 적자가 쌓였다. 그래서 2017년 정부가 갖고 있던 항만 지분 80%와 99년간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주었다. 함반토타항 외곽의 마탈라 국제공항도 마찬가지다. 취항하는 항공사가 없어 유령공항이 돼버렸다. 그 밖에 중국 돈으로 건설된 함반토타 열대우림의 크리켓 경기장, 콜롬보의 로터스타워 등은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됐다.

중국 외채는 상대적으로 상환 기간이 짧고 금리도 높다. 스리랑카 시민단체들은 “라자팍사 형제는 일부 인프라 건설에 장기 융자와 저금리로 빌려주겠다는 다른 나라의 제의를 거부했다”며 중국과의 은밀한 뒷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인수한 함반토타항을 상업 용도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8월16일 위안왕5호가 입항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위안왕5호는 측량선으로 정박해 필요한 물품을 보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와 미국은 위안왕5호의 입항을 반대했다. 위안왕5호가 다른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위안왕5호는 중국군 전략지원부대가 운용하고 인공위성 탐지 및 추적용 장비를 갖췄다. 또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로켓의 발사 감시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인도는 위안왕5호를 ‘스파이 선박’으로 보았다. 스리랑카는 인도에 진 부채도 적지 않아 반대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중국에 위안왕5호의 입항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중국은 위안왕5호를 계속 항해시켰다. 결국 8월13일 입항을 허가해 주었다. 함반토타항이 얼마든지 중국의 목적에 따라 사용되고 군사적 용도의 선박이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현재 중국이 놓은 부채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 나라는 스리랑카뿐만이 아니다. 라오스·파키스탄·몰디브·잠비아 등 저개발국에 널려 있다. 이들 국가는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한 공통점도 있다. 실제로 라오스는 지난해 12월 완공한 중국-라오스 고속철도의 공사대금 중 30%를 중국에서 빌렸다. 2025년까지 상환해야 하는데, 현재 고속철을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다. 파키스탄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을 진행하면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았다. 고속도로·송유관·항만 등을 짓고 있지만 경제적 수익을 거둘 날은 요원하다.

ⓒAP 연합Xinhua
2018년 9월4일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베이징 정상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Xinhua

그래도 중국의 손을 놓지 못하는 저개발국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중국의 손을 쉽사리 놓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화된 국제 정세 속에서 자국을 도와줄 나라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최대 채권국인 중국이 채무 상환 기한을 연장해 줘야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내정 불간섭을 내세우며 타국의 국내 문제엔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아프가니스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에 반해 미국과 서구는 독재·인권 등을 문제 삼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을 빌려주는 대가로 강력한 긴축재정, 가혹한 구조조정 등 희생을 강요한다.

저개발국에 빚의 덫을 놓는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월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일대일로가 채무 함정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나라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중국은 파키스탄에 150억 위안(약 3조9300억원)의 차관을 긴급 제공하고, 잠비아의 채무 상환을 연기해 주는 등 비판을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8월18일에는 왕이 부장이 화상으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장관회의에서 “2021년 말이 상환 만기인 아프리카 17개국의 대출 채무 23건을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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