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청년들, 개천의 용이 되려 말고 개천을 없애려 노력해야”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8 14: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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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하얼빈》 내놓은 김훈 작가
“기득권자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청년들이 이룰 게 없어”
“다음 작품에서 다룰 인물은 내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

대한민국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글과 책 등을 남기고 지난 2월 향년 88세를 일기로 영면한 고(故) 이어령 선생은 생전 ‘타고난 글쟁이’로 불리기를 좋아했다. “책을 통해 글을 읽었을 때 모든 문제에 대해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이해의 폭은 굉장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던 이어령은 이렇듯 글의 힘, 책의 힘에 주목했다. 한 줄의 글이, 한 권의 책이 개인과 사회에 불어넣는 힘에 주목했다.

그런 이어령 선생에게도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던 후배 작가가 있었다. “남의 글을 읽을 때 글쟁이로서 기분 나쁠 정도로 질투를 일으키는 작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김훈이다.” 이어령 선생은 김훈 작가를 ‘어휘의 천재’라고 평가했다.

2022년,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떠나간 후 김훈 작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또 하나의 화제작을 우리 사회에 내놓았다. 《하얼빈》, 제목부터 강렬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기원전의 글귀를 오늘날 적용해도 썩 잘 어울리는 작가답게, 역시 문장마다 특유의 강한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김훈 작가는 이를 부정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건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책을 통해 배운 자들은 고루하고 경험을 통해 배운 자들은 활달하다”며 책의 힘에 대해서도 ‘과찬’을 거부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강함에, 강렬함에 빨려들 듯 그의 책을 펼쳐든다.

김훈 작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글의 소재로 다루면서 우리 사회에 강한 울림을 줬던 그의 작품들은 이어령 선생의 지론처럼 구석구석 스며들 듯 대중과 함께 숨 쉬고 있다. 시사저널이 김훈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가급적 작품 얘기만 물어 달라”는 작가의 간곡한 청에도 지금의 사회와 세태를, 그리고 시국을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렇듯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작가의 시선이 지금 대한민국의 어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문학동네

“약육강식의 지금 현실, 안중근 시대보다 더 위태”

《하얼빈》은 작가께서 대학 시절이던 50년 전 안중근의 신문조서 기록을 처음 접하고 언젠가는 이 내용을 꼭 글로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게 이제야 완성됐다고 했다. 그걸 마치 숙제처럼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안중근 신문조서와 공판 기록은 내 젊은 날에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을 주었다. 거기에는 이 세계의 구조적 악과 홀로 맞서는 젊은 정신과 몸의 생명력이 살아있었다. 신문과 공판 과정에서 안중근이 보여준 말(언어)은 약육강식하는 세계의 핵심부를 겨누고 있었다. 나는 그 충격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50년 후에 쓰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최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읽으시고 또 추천까지 해주셨다니까 참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서 “저는 저의 글을 다른 사람이 읽는 걸 보면 참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했다. 대중을 향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자신의 글이 읽히는 게 부끄럽다고 한 건 왜인가.

“나는 내가 낸 책을 다시는 펼쳐 보지 않고, 되도록 잊으려고 애쓴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면 ‘이게 아닌데, 어쩌자고 이랬나?’ 싶어서 괴롭다. 나는 날마다 노력하고 있고, 날마다 미완성 상태인 나 자신에 대한 울분 속에서 살고 있다.”

문 전 대통령도 주목했지만, 작가는 《하얼빈》에서 특히 ‘동양평화를 절규하는 그의 총성은 지금의 동양에서 더욱 절박하게 울린다’고 했다. 지금의 동양은 안중근 시대의 동양과 비교해서 어떻다고 보는가.

“강대국의 힘이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는 위기는 안중근의 시대보다 더욱 위태롭고, 출구가 없어 보인다. 최근의 대만 사태에서 나는 파국 직전의 위기를 느꼈다. 약육강식의 현실은 더욱 사람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그래서 안중근의 ‘평화’가 더욱 절박하게 울린다.”

원래 생각했던 이 책의 제목은 ‘하얼빈’이 아니라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고 들었다. 어떤 의미인가.

“내가 제출한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는데 출판사에서 ‘하얼빈’ 세 글자로 바꾸었고, 나는 동의했다. ‘하얼빈’은 낯설고 불친절한 제목이지만, 비극적 완결성이 있다. 그리고 제국주의 세력들이 부딪치던 철도의 교차점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하얼빈에서 만나자’는 친절하고 설명적인 제목이지만 주제를 지나치게 노출시켜 긴장이 풀려 헤벌레하다. ‘하얼빈’은 이 소설에 가장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집필 기간 동안 코로나 팬데믹 등의 이유로 안중근의 족적을 따라 밟지 못하고 쓴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부인 김아려 여사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던 부분도. 혹시 《하얼빈》의 속편이랄까, 안중근과 관련한 후속 작업 계획도 있는가.

“《하얼빈》의 속편을 쓸 계획은 없다. 그러나 《하얼빈》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개정판을 내고 싶은 생각은 있다. 블라디보스톡-하얼빈-장춘-대련-여순의 현장을 답사해 글을 새로 쓰고 그 밖의 여러 대목을 보완하고 싶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 불편해 언제 가능할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나에게 간절한 것들을 쓰려 한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 《남한산성》의 김상헌과 최명길, 《하얼빈》의 안중근 등 소설에서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했다. 다음 작품의 소재로 주목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는가.

“내 소설에서 역사 속 인물과 현실 속 인물은 다르지 않다. 나는 역사 속 인물을 현실 속 인물로 그려내려 애썼다. 다음 작품의 주제로 주목하는 인물은 내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다.”

국민들에게 특히 큰 사랑을 받은 두 작품이 이순신과 안중근을 다룬 소설이었다. 일본의 침략에 맞선 영웅을 다뤘는데, 자칫 애국심만 강조하는 소위 ‘국뽕’ 작품이란 비판을 의식하거나 경계했는지 궁금하다.

“영웅 설화를 쓰는 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인간과 그가 처한 환경에 대해 쓰려고 했다. 애국심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애국심은 인간에 대한 이해 위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에 바탕하지 않는 애국심이 파시즘으로 전락한 역사를 인류는 기억하고 있다.”

작가는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평소 ‘소설은 소설로서 읽히기를 바란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해석하는 편인가. 작가적 상상을 가미해 새롭게 재해석하는 편인가.

“나의 작품은 이미 기록된 역사와는 크게 다르다.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신 그분과는 크게 다르다. 소설 속 인물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하얼빈》보다 한 달여 앞서 출간한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에서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꼭 무슨 철학이나 메시지나 교훈을 말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고도 했다. 매번 작품을 발표하면서 대중에게 어떻게 평가받기를 바라는가.

“나는 인터넷 세계와 절연되어 있으므로 독자의 평가가 어떠한지를 잘 알 수 없다. 내 글 속에는 독자들에게 권장할 만한 ‘철학’이나 메시지나 지혜가 들어있지 않다. 나는 다만 삶을 그려낼 뿐이다. 이것이 독자들에게 전달돼 이해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에게 간절한 것들을 쓰려 한다.”

예전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해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부정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작가께서는 젊은 시절 접한 《난중일기》와 안중근 신문조서를 읽고(비록 문학작품은 아니지만) 책이 인간의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훈 작가의 소설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설을 읽고 인생을 바꾼다는 말은 몽환적이고 문학병적(文學病的)이다. 안중근의 신문조서를 읽고 내 인생이 바뀐 것은 아니다. 나는 뒤늦게나마 그 책의 세계를 따라갔다. 책을 통해 배운 자들은 고루하고 경험을 통해 배운 자들은 활달하다. 인간은 책뿐 아니라 사람, 사물, 자연, 사건, 사태, 상황, 시대를 들여다보면서 더 크고 본질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안중근은 책을 읽고 배워서 거사한 것이 아니다.”

“기득권자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방식으론 청년들이 이룰 게 없어”

《하얼빈》에서도 ‘청년 안중근’에 주목했고, 또 작가 스스로 ‘고단한 청춘’으로 표현할 만큼 젊은 시절 대학을 중도 포기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안다. 지금의 이른바 MZ세대라고 하는 청년들의 특성이나 고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천의 용이 되라’는 말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조롱하는 말이다. 젊은 세대는 개천의 용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개천의 수질을 개선하고 마침내 개천을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저마다 개천의 용이 되려 한다면 이 시대의 개천은 정화할 수 없는 시궁창이 될 것이다. 인간은 연령에 따라 진보하지 않고, 현명해지지도 않는다. 기득권자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오래 산 노인의 말이다.”

최근 사회적 현상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MZ세대에서의 남녀 갈등이다. 특히 20대층의 남녀 갈등은 첨예한 상황이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정돈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취업 기회의 불평등, 임금격차, 사회적 처우의 차별 같은 문제를 놓고 젠더 간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갈등을 증폭시켜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세력의 작동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이 당파성의 간롱에 휘말리지 말고, 상대방 젠더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생각을 전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007년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란 에세이집을 낸 바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청년 갈등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점점 통합보다는 갈등과 대결 구도로 가는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이의 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여러 계층 간 먹이 피라미드의 관계가 적대적인 사회에서 국민 통합을 말하기는 어렵다. 민족주의, 애국심, 당파성, 이념 같은 원리로 통합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통합 쪽으로 조금이라도 접근하려면 이 먹이의 적대 관계를 완화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의 일탈적 특권 행사가 일상화된 사회는 결코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여기에 저항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작가께서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분법적 분류에 부정적인 듯하다. 한 인터뷰에서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보수주의자는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20여 년 동안 이런 질문을 받아왔다. 한국 사회에는 인간을 계통별로 분류해 딱지를 붙이는 야만적 악습이 있다. 이 악습은 참으로 보수적이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나는 ‘보수’의 딱지가 붙는다고 하는데, 나는 나 자신을 이 같은 방식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이 분류법은 한국 사회의 시야를 차단하고 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여러 당파가 이 장애물 위에 정치권력을 세우고 있으므로 이 장애물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념의 원리에 따라 논리정연하게 살 수는 없다. 나는 일관되게 살 수가 없다. 나는 내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 그 방향이 선한 것이기를 나는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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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이념·당파의 언어 버리고 사실의 언어로 돌아와야”

작가 이전에 오랜 기간 기자로도 활동했다. 최근 미디어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간다. 지금 언론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의 언론은 대체로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고, 자신들의 당파성을 정의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언론 종사자들이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정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념의 언어, 당파의 언어를 버리고 사실의 언어로 돌아오길 바란다.”

많은 인류학자가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도 2년 전 KBS 인터뷰에서 “코로나 이후 사람들은 예전보다 덜 신바람 나고 더 고통스러운 세계를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

“코로나 이후에 불평등 구도가 심화되어 가는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금 ‘자유’라는 테마가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기업과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불평등 구도의 완화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나는 회의를 가지고 있다.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는 조건들을 제거한 마당에서 강자와 약자가 자유경쟁을 한다면 그 결과로 자유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인지를 나는 의심한다. 이 공정 경쟁의 결과가 공정한 약육강식이 되지 않을는지를 나는 걱정한다.”

지금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연필로 원고지에 쓰는 것으로 안다. 디지털 시대에 이른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셈인데, 대중과 소통하는 작가는 시대의 흐름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중, 특히 젊은 층과 소통하고자 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

“나는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지 못한 편이다. 아날로그는 나의 자랑이 아니고 나의 생리다. 대중의 취향을 따라가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는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아름답다. 소통은 떨어져 있는 존재들끼리의 교신이다. 나는 글쓰기 이외에는 소통의 수단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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