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1인 독재체제로 광복회 사유화”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6 14: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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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김원웅 비리, 지난 정권의 비호 있었을 것”
“보훈처, 보훈부로 승격돼야…확고한 보훈체계가 곧 강한 안보로 이어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첫 정치인 출신 보훈처장이다. 보훈가족이기도 하다. 부친 고(故) 박순유 중령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당시 7세였던 박 전 의원 등 6남매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박 처장은 9월7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보훈은 국가의 책무이자 품격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세우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확고한 보훈체계는 강한 안보로 이어진다”며 ‘보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발표된 김원웅 전 광복회장 비리 특별감사 결과와 관련해선 “우리 사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김 전 회장의 비리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 지난 정권의 비호가 없었다면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훈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보훈처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박 처장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보훈처가 보훈부(部)로 승격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보훈가족이자 첫 정치인 출신 보훈처장이다.  

“베트남전 전사자의 아들로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오랜 소명이었다. 보훈정책의 수장으로 일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귀중하게 여기며 막중한 책임감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직을 수행해 보니 보훈의 역할과 업무 영역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보훈행정이 그간 많이 발전해 왔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니 아쉬운 점도 많이 보였다.”

그간 보훈처장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7월27일 미국 워싱턴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해 대통령 축사를 대독했다. 추모의 벽에는 한국 카투사 전사자 7174명의 이름이 미국 전사자 3만6634명의 이름과 함께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미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을 영원한 우방이자 동맹국으로 바라보는 미국의 의지와 혈맹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폭우 속에 우산도 없이 알링턴 국립묘지에 참배해 화제가 됐다. 

“한국전 참전영웅들이 잠들어 계신 알링턴 국립묘지에 갔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졌다. 알링턴 묘지에선 폭우가 내리더라도 우산 없이 비를 맞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최고로 예우하는 자세가 느껴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알링턴 묘지 참배 때 했던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더라. 영웅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모습에서 국가의 품격이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 실현을 다짐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주요 현안도 짚어보자. 광복회 감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감사를 실시한 이유는.

“전임 회장의 각종 비리 의혹과 단체 운영 전반에 대한 고강도 감사를 한 달 동안 실시한 후 최근 끝냈다. 사업비 과다 견적, 대가성 기부금 수수 및 목적 외 사용, 법인카드 유용, 불공정 채용 등의 문제점이 적발돼 비위 혐의자 5명을 형사 고발했다. 부적절한 단체 운영에 관한 사항에 대해 기관경고 등의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곳이나 마찬가지인 광복회가 전임 김원웅 회장이 저지른 비리로 얼룩진 것에 대해 보훈단체를 관리·감독하는 주무관청의 장으로서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나.

“이번 감사 결과, 저희는 김 전 회장을 통해 통상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김 전 회장이 권한을 남용해 독단적이고 자의적으로 광복회를 운영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1인 독재체제로 광복회를 사유화했다. 무법자의 일당독재 같았다.” 

‘광복회의 불법은 지난 정부의 비호를 받은 비리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관리·감독 기관의 승인이 없음에도 국회 카페가 허가되고, 인력 증원을 위한 예산이 전액 삭감돼도 어디서 인건비를 위한 예산이 만들어져 정원을 증원했다. 수많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광복절 기념사가 3년 연속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한 개인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확인된 김 전 회장의 비리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 지난 정권의 비호가 없었다면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핵심은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 것일 텐데.

“현재 보훈단체의 운영에 대해서는 민법상 일반적 관리·감독 외에는 비정상적인 단체 운영이나 일탈행위 등에 대해 실효성 있는 제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 보훈단체에 소속된 분들은 마땅히 예우 받아야 하며, 보훈단체의 자율성은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는 그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시는 이번 광복회 문제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비롯해 시정조치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하려고 한다. 아울러 국고보조금 교부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 관리·감독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

보훈심사 체계와 기준에 대한 불만과 지적이 계속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복안은.

“보훈심사가 많이 안착됐지만, 심사 기준 등이 희생이나 공헌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를 여전히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보훈심사 기준과 지원 기준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희생과 공헌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정립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 오랜 기간 화재 진압 업무로 발생한 기관지암 등 공무 관련성이 강하게 추정되나 직접 입증하기 어려운 질병에 대해 공무 관련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려고 한다. 아울러 국가가 직접 증거자료를 발굴하는 ‘국가 주도 사실조사’를 2026년까지 2배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보훈 대상자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불편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신체검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최저 등급인 상이 7등급 기준을 개선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다.”

국민 체감도가 높은 보훈사업도 필요하다.

“‘국가유공자 전용 주차구역’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장애인 주차구역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고려하듯,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정책도 단순 복지 개념을 넘어 예우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지자체장들과 논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국토부 장관에게도 이야기를 해뒀다. 각 지역의 주요 가로등에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의 네임태그(이름표) 등을 달아볼 계획도 하고 있다. 가로등은 어두운 길을 밝히는 빛인데, 우리 전쟁영웅과 순국지사들이 어두운 시절에 희생하고 헌신한 빛이자 별 아닌가. 콘셉트가 비슷하다. 자치단체장들과 협의가 필요하지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추진해 보려 한다.”

박민식 보훈처장이 7월25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 국립 묘지를 방문해 빗속에서 참배하고 있다.ⓒ국가보훈처 제공

용산 호국보훈공원 조성 계획을 대통령 업무보고로 했다. 어떤 내용인가. 

“용산공원은 지난 100여 년간 육군본부, 미군기지 등으로 사용돼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상징광장으로 용산공원에 가칭 ‘용산보훈메모리얼파크’를 조성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겠다. 용산 보훈공원 조성을 통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부터, 남산 안중근기념관, 용산 전쟁기념관과 보훈메모리얼파크, 한강 이남의 서울현충원을 잇는 역사와 보훈의 길을 마련해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세계적 명소로 구축하는 데 보훈처가 실질적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최근 독립유공자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 민족을 조선족이라고 표기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현재의 가족관계등록부는 일제강점기에 창설된 호적을 근간으로 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이주하거나 호적 창설을 거부했거나, 또 광복 이전에 사망한 경우 대한민국의 공적서류상 적을 한 번도 가질 수 없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윤동주 지사, 홍범도 장군 등 직계 후손이 없는 무(無)호적 독립유공자 156분의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정부 직권으로 최초로 추진해 독립기념관에서 창설 완료 행사를 가졌다. 향후에도 무호적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단 한 분의 독립유공자도 무적으로 남지 않도록 하겠다.”

광복군 17위(位)도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한국광복군으로서 일제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뒤 서울 수유리 합동묘소에 안장돼 있던 선열 17위를 최고의 예우를 갖춰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이는 정부가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후손 없는 광복군 선열을 국민과 함께 기리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직접 추진한 첫 사례다.”

보훈부 격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만약 ‘왜 보훈부가 되어야 하나’라고 묻는다면 ‘왜 여전히 보훈부가 아닌지’를 되묻고 싶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 선진국에선 보훈 주관부처를 ‘부’로 설치·운영해 보훈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보훈처에 해당하는 ‘제대군인부’가 국방부 다음 두 번째 규모다. 대통령이 신년 예산을 발표할 때도 보훈 예산을 가장 먼저 발표한다. 전쟁을 경험한 주요 선진국이 보훈 부처를 부로 운영하는 것은 국가 정체성 확립, 즉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보훈과 국방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대통령의 말씀처럼 확고한 보훈체계는 강한 안보로 이어진다.”

현재 보훈처의 위상은 어떠한가.

“1961년 원호청 출범 이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 단위 기관이다. 현재 장관급이지만 부서권과 독자적인 부령 발령권이 없는 등 국무위원에 비해 권한이 제약되어 있다. 이는 원활한 보훈정책 추진에 한계로 작용한다. 10대 경제대국에 걸맞은 수준 높은 대국민 서비스 제공과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명확한 신뢰를 주기 위해서라도 보훈처의 부 승격은 꼭 필요하다. 보훈부 승격이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 반영되고 국회에서도 잘 논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퇴임할 때 어떤 보훈처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보훈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보훈처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초심도 같다. 보훈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를 위해 소중한 청춘과 목숨을 바쳐 헌신하신 분들의 희생과 공헌에 보답하는 보훈이 ‘국가의 책무’이자 ‘품격’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떳떳하고 당당한 보훈, 국민 가슴에 문화로서 뿌리내리는 보훈, 일류 보훈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현재 여권이 위기 상황이다. 대통령에게 딱 한 가지만 조언한다면.

“저는 선거 때 하도 조언을 많이 했다(웃음). 지금은 공직자니까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려 한다. 지금 저는 첫째도 보훈, 둘째도 보훈, 셋째도 보훈이다. 대한민국의 보훈을 잘 자리매김 시키는 게 지금 제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이고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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