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축제 앞둔 울주 외고산 옹기골, 배꽃과 옹기가 반겼다
  • 이정희 영남본부 기자 (sisa529@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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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박물관, ‘세월을 담는 그릇’ 주제로 4계절 영상 상영
9월 22일부터 10월 3일까지 외고산 옹기축제 열려
7인의 장인 공방 주위로 길가에 전시된 옹기 풍경.  © 이정희
7인의 장인 공방 주위로 길가에 전시된 옹기 풍경 © 시사저널 이정희

국도 14호선을 따라 부산 기장에서 울산 방향으로 20km 정도 가면 길가에 겹겹으로 쌓여 있는 옹기들이 있다. 이곳은 울주 온양읍에 위치한 외고산 옹기골이다. 마을 어귀부터 안쪽으로 걸어가면 민속촌에서 나올 법한 커다란 옹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옹기골에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발효아카데미관이 있고, 민속박물관과 울산 무형문화재 제4호 7인의 장인이 운영하는 공방도 있다. 또 울타리 없는 민가 몇 채 속에서 옹기를 굽는 가마가 자리잡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외고산 마을에 위치한 울산옹기박물관 전경 © 시사저널 이정희
울산시 울주군 외고산 마을에 위치한 울산옹기박물관 전경 © 시사저널 이정희

먼저 옹기 모양으로 지어진 옹기박물관이 이목을 끌었다. 옹기란 자연으로부터 흙·물·바람을 빌려와 만든 질·오지그릇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옹기에 주식과 부식물을 저장했고, 주류발효 도구 등으로 사용해 왔다. 이처럼 옹기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의 삶과 공존했으며, 지역과 계층 구분 없이 널리 사용돼 왔기에 세월을 담았다. ‘옹’이라 부르는 박물관은 지난 1월23일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세월을 담은 그릇’ 주제로 메타버스를 통해 옹기의 제작과정과 일상에서의 쓰임이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함께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우리의 삶과 함께한 긴 여정이 마지막 겨울에 다다르면 하얀 눈이 내리고 깊은 울림으로 채우면서 옹기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도자기가 예술의 혼을 담아내는 작품이라면, 옹기는 일상의 실용성을 담아내는 생활 문화다.

박물관을 둘러보면, 지역별로 옹기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옹기는 몸통이 통통하고 입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경기·강원도는 남부지역에 비해 배가 덜 부르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전라도는 경상도와 경기도 중간쯤이며, 충청도는 전라도와 비슷하다. 제주도는 입과 바닥이 좁고 배가 약간 부른 물동이 형태다.

세월을 담은 옹기의 감동을 품고 발효아카데미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전통옹기와 함께 맥을 이어온 우리 민족 고유의 발효·숙성·저장문화를 접할 수 있는 체험관이다. 발효란 단순저장에서 다양한 효모와 효소를 활용해 인류의 음식문화를 발전시킨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우리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대표하는 장과 발효식품은 숨을 쉬는 옹기가 있어 가능했다. 옛날에는 옹기장사들이 커다란 옹기를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팔았다. 이에 집집마다 옹기들로 모여진 장독대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 몇 해 먹을 간장·된장·고추장 등을 담아 저장했고, 막걸리·젓갈·김치 등을 담아 숙성시켰다. 옹기는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져 세계에서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음식 저장 용기다.

담벼락 없는 길가에 늘어선 옹기는 저마다 웃음으로 표현돼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마을 중간에는 3단으로 길게 가마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보존돼 온 것이 아니라, 옹기골을 홍보하기 위해 새로 지은 듯하다. 그 옆으로 7명의 옹기 장인들이 각자 만든 특색있는 옹기들을 전시해놨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한국 전쟁후 1957년에 허아무개씨가 이곳에 정착해 옹기 장인들을 불러 모았다. 이들은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고, 옹기골로 이름을 얻어 이곳에서 전국 옹기의 50% 이상 만든다.

아카데미관에서는 흙을 만질 수 있는 체험이 가능하다. 옹기의 특성은 통기성, 즉 숨 쉬는 그릇이다. 소멸해도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환원성이 있다. MZ세대는 이 모두가 낯선 풍경이다. 간혹 이들은 할머니댁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 두개 쯤 쌀독으로 사용되는 옹기를 봤을 듯 싶다. 옹기는 숨을 쉬기에 오래도록 곡식이나 식품을 저장해도 부패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옹기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울산옹기박물관 옹, 세월을 담은 그릇 주제로 송출되는 메타버스 영상 © 시사저널 이정희
울산옹기박물관 옹, 세월을 담은 그릇 주제로 송출되는 메타버스 영상 © 시사저널 이정희

이곳이 옹기골로 유명해지기 이전에는 서생배가 인근에서 유명했다. 배의 특성상 음력 9월9일이 지나면 맛이 떨어지고, 저장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선조들은 지혜를 발휘해 맛이 떨어지기 전에 옹기를 땅속에 묻고, 그 속에다 배숙을 만들어 저장했다. 겨우내 저장된 배숙은 음력 설을 지난 후, 살얼음을 깨고 꺼내면 그야말로 원래 맛 그대로 맛볼 수 있었다. 이는 옹기와 배가 만난 환상적인 조합이다. 하지만 각종 개발과 농산물 FTA체결로 배가 생산되는 과수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배 생산량은 줄었고, 그나마 옹기골 주변에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비교적 좁다고 느껴지는 옹기마을을 확장할 수 없는 것 또한 옹기가 더이상 우리 생활에서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 A씨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옹기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나, 무리한 옹기골 확장은 남은 배나무의 터전을 잃게 만들 수 있다”며 “사람들로부터 잊혀져 가는 옹기와 배꽃은 하얀 그리움으로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끊어지지 않는 하모니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동안 답답했던 코로나19를 벗어나 일상회복에서 가을바람이 옹기 속을 울린다. 오는 22일부터 내달 3일까지 외고산 옹기축제가 옹기마을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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