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지난 2년의 시간, 나를 되돌아봤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7 13: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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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으로 2년 만에 공식 복귀

하정우가 컴백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통해서다. 하정우는 2020년 8월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뒤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2년 만에 공식 활동을 시작한 셈이다.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 중 하정우는 수리남에서 목숨을 건 비즈니스에 뛰어든 민간인 사업가 강인구 역을 맡았다.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풀어가는 수완 좋은 캐릭터다. 윤종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하정우 외에도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이 출연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은 그간 수많은 작품을 함께 해온 각별한 사이다. 하정우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등을 함께 하며 충무로에 센세이션을 일으켜온 파트너다.

황정민과 윤종빈 감독 역시 남다른 인연이 있다. 《검사외전》에서 제작자와 배우로 연을 맺고, 《공작》에 이어 《수리남》으로 또 한 번 감독과 배우로 의기투합했다. 하정우와 황정민 그리고 윤종빈 감독,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세 사람이 마침내 한 작품에 출연한 셈이다. 하정우를 직접 만나 그간의 근황과 영화 뒷이야기를 들었다.

ⓒ넷플릭스 제공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2년 만의 컴백이다.

“사실 제작발표회 때 공개적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했는데 그렇게 못 했다. 요즘 비대면 인터뷰가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대면 인터뷰 요청을 드린 건 직접 얼굴을 보고 말씀드리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다. 이 자리를 빌려 관객분들과 시청자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죄송하다.”

이렇게 대면으로 만나서 인터뷰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넷플릭스에서도 대면 인터뷰를 하는 건 3년 만에 제가 처음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영화 《클로젯》 이후 3년 만에 대면 인터뷰를 하는 자리라 상당히 낯설고 어색하다. 생각해 보면 2004년에 《용서받지 못한 자》로 영화 데뷔를 했고, 그다음 해부터는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래서인지 지난 2년은 상대적으로 아주 더디게 지나온 느낌이다. 《수리남》 제작발표회 때도 무척 긴장했었다. 그렇게 떨어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당시 찍혔던 제 사진을 보니 인상이 어색하더라. 나조차도 나의 그런 모습이 낯설었다.”

작품이 공개되고 댓글을 읽어봤나.

“다양한 반응들이 있더라. 읽으면서 오만 가지 감정이 들었다.”

애초에 이 스토리를 윤종빈 감독에게 제안한 것으로 안다.

“맞다. 마약에 대한 이야기를 제안했다. 영화적으로는 극적이고 매력적인 소재니까. 사실 그 얘기를 윤 감독에게 제안했을 때 한 번 거절당했다. 이후 윤 감독은 영화 《공작》를 촬영했고, 이후 한참 시간이 흘렀다. 문득 시리즈로 찍으면 가능할 것 같아 다시 제안을 했다. (황)정민이형이 마약 대부 역할을 하면 영화와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의기투합이 됐고, 하나하나 접근해 갔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읽고 느낌이 어땠나.

“처음 받았을 때는 시리즈물이라 방대하다는 느낌이 우선 들었다. 6개로 나눠 하나씩 읽어나갔다. 특별함보다는 캐스팅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한 명씩 합류하면서 배우들을 떠올리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유)연석이가 능글능글한 역할과도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 (박)해수는 리딩을 하는 순간부터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민이형이나 (조)우진이는 보시는 대로 그냥 찰떡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스틸컷ⓒ넷플릭스 제공

극 중 캐릭터 ‘강인구’는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사용한다.

“생존 영어다. 교육기관에서 영어를 배운 게 아니라 미군부대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어깨너머로 영어를 배운 친구다. 쉬운 단어를 요리조리 잘 섞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는 캐릭터다. 발음에 신경 쓰지 않아 편했다. 물론 제 모국어가 아니기에 반복해서 연습했다.”

극 중 애드리브가 많다.

“애드리브이기보다 윤 감독과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평소에 제가 자주 쓰는 말이나 농담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걸 그대로 썼더라.”

윤 감독과는 17년 지기다. 작품도 5번째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윤 감독이 연출한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영화 연기를 처음 했다. 제가 전공했던 연기를 카메라 앞에서 처음 해본 것이다.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를 같이 찍으면서 공부한 것들이 다시 한번 정립됐다. 영화적으로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분명한 건 그는 매력적인 연출자고, 신뢰 가는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황정민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누구보다 열정적인 선배다.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고 또 성격도 활달한 선배다. 한데 카메라만 돌아가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에너지를 응축해 사용한다. 슛에 들어가기 직전엔 늘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짧게 가지는 것 같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루틴이랄까. 그 모습이 서정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다.”

하정우의 연기 루틴은 뭔가.

“어떤 연기를 하든지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루틴을 똑같이 유지한다. 오열하는 연기를 하더라도 그 감정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그게 나에게 맞는 패턴인 것 같다. 모르는 척 슥 들어가서 집중해 연기한다.”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에너지는 어땠나.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배우이지 않나. 그 에너지, 그리고 영화에 임하는 자세는 실로 엄청나다. 형은 모든 것이 릴렉스돼 있는 배우다. 액션을 찍다 보면 툭 쳐봐도 상대 배우의 운동신경이나 몸 상태, 감정이 느껴진다. 형은 마디마디가 다 릴렉스돼 있는 사람이다. 극 중에서 멱살을 잡고 목을 끌어올리는데도 전혀 힘이 안 들더라. 상대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지만 늘 연기할 때 마음을 써주고 배려해 준다.”

‘프로포폴 논란’이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도 궁금하다(당시 검찰 측은 하정우가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프로포폴을 19회에 걸쳐 불법 투약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하정우 측은 흉터 제거를 위해 수면마취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차명으로 병원을 예약하고, 진료기록을 9회에 걸쳐 허위로 기재한 혐의가 추가됐다. 결국 1심에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고, 항소를 포기하며 1심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엔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만 차리자 싶었다. 때가 되면 분명히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나를 되돌아봤다. 열심히 사는 것만 능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준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고, 시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제가 너무 느슨한 기준을 두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족했다.”

구설도 있고 사랑도 받았다. 어쨌든 하정우라는 배우는 오랜 시간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이 저와 영화 작업을 함께 하겠다는 의지 때문이지 않나. 그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의 제가 있다.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만나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17년 동안 배우 일을 하면서 거창한 성과나 예술작품에 대한 성취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영화를 했던 시간 그 자체가 제게 가장 의미 있다. 그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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