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안 받으면 죽어도 못 나간다!”…경매로 떠밀린 세입자들[공성윤의 경공술]
  • 부산·충북=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9 07:3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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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경매 나온 서울∙부산∙충북 부동산 둘러보니…”아기랑 같이 사는데 갈 곳 없어요”

7753건. 최근 1년 동안 경매로 나온 전국 주택 가운데 대항력 있는 세입자가 있거나 임차권이 설정된 건수다. 대항력 없는 세입자 집까지 포함하면 수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집주인이 빚 부담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경우다. 또는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세사기가 그렇다.

전세사기나 빚 부담 모두 세입자에게 고통을 주는 건 매한가지다. 세입자가 끝내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하나. 경매다. 경매는 민사집행법상 임차인 등 채권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반면 채권 관계에 따라 터전을 앗아가는 최악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경매에 운명이 달린 세입자들을 시사저널이 찾아가봤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H아파트(도시형 생활주택)ⓒ시사저널 공성윤·박정훈

처음부터 깡통 위험 드리운 서울 생활주택

9월6일 들른 서울 수유동의 H아파트. 인터넷에는 ‘아파트’라고 나오지만 정확히는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이는 부대시설이 없고 외부 소음에 노출돼 있다는 단점이 있다. 건물은 준공된 지 10년이 안 된 신축급이다. 그러나 외관과 주변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공동출입문에는 보안시스템이 설치돼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아 계속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옆의 우편함에는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다. 앞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근처에서는 고양이들이 먹잇감을 기다리는 듯 서성거렸다.

해당 아파트 144세대 중 그간 경매에 올라온 호수는 약 10세대다. 이를 보여주는 듯 아파트 우편함 곳곳에는 세금 독촉장과 경매 통지서 등이 가득 꽂혀 있었다. 오랜 시간 빈집으로 남아있거나 세입자가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10세대 중 2세대는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이다. 모두 세입자가 직접 강제경매에 부친 건물이다. 이는 임대인이 전세계약 기간이 끝나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세입자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뜻이다. 강제경매는 채권채무 관계를 증명하는 판결문이 있을 때만 이뤄진다. 기자가 해당 2세대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자의든 타의든 경매로 넘어간 집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세입자가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H아파트는 준공 때부터 깡통전세 위험이 있었다고 한다. A씨는 “원래 전세가가 매매가랑 비슷했던 건물”이라고 했다. 이어 “권리 관계도 깨끗하고 사기에 이용된 적도 없지만 건축주가 양도세를 아끼려고 건물을 막 팔아치우는 과정에서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이 건물들이 경매에서 낙찰만 되면 세입자는 묶여 있는 보증금을 낙찰자로부터 받아 이사를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네이버 부동산 등에 따르면, 현재 H아파트의 매매 시세는 경매 감정가(1억4000여만원)보다 낮은 9000만~1억원 선이다. 그런데 경매를 신청한 세입자의 보증금은 그보다 높은 1억4000만원이다. 입찰자 입장에선 시세보다 비싼 아파트를 보증금 반환 부담까지 떠안으면서 매수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H아파트는 불법 건축물이어서 경락잔금대출(낙찰받은 물건을 담보로 받는 대출)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H아파트는 유찰을 거듭해 감정가의 절반 가격까지 떨어진 상태다.

공인중개사 B씨는 “H아파트는 말이 주택이지 크기로 봤을 때 오피스텔”이라며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 누가 오피스텔에 투자하겠나”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굳이 매입하려고 한다면 위험하게 경매로 낙찰받지 말고 매매가도 싼데 직접 사시라”고 권했다.

그래도 H아파트 세입자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적어도 대항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신림동의 4층짜리 S빌라는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나왔다. 여기에 사는 6세대는 대항력이 없다. 경매 낙찰자가 보증금을 한 푼도 안 주고 나가라고 해도 법적으로 저항할 힘이 없는 것이다. S빌라에 2017년 4월 근저당이 잡혀 있는데 그 이후에 이사 온 게 화근이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S빌라ⓒ시사저널 공성윤·박정훈

대항력 없어 모두 쫓겨날 형편인 서울 빌라

세입자 가운데 한 명인 대학생 하아무개씨는 누나와 함께 2019년 초부터 S빌라에 사는 중이라고 한다. 하씨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세한 건 모른다”고 했다. 기자는 하씨 아버지와의 전화를 통해 상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공인중개소에서 근저당 여부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며 “문제가 생긴 걸 알고 (중개소에) 수차례 연락해 봤지만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자가 해당 중개소의 연락처를 받아 전화해 보니 공인중개업과 전혀 관련 없는 ‘스크린골프장’이란 답이 돌아왔다. 사무소도 다른 종류의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하씨 아버지는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다는 걸 알지만 어쩌겠나. 방법이 없지 않나”라고 체념한 투로 말했다. 소송 계획에 대해 물어보니 “그래 봤자 실익도 없이 변호사 수임료만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씨 전셋집에 묶인 보증금은 1억3500만원이다.

S빌라의 또 다른 세입자인 회사원 장아무개씨는 2017년 8월 전세를 구했다. 모든 세입자 중 가장 빨리 전입했지만 근저당 설정일 이후라 채권이 후순위로 밀려난 상황이다. 돌려받아야 할 보증금은 세입자 중 제일 많은 2억2000만원이다.

장씨 부인은 “갓 태어난 아기도 같이 살고 있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공인중개사가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어도 시세가 전세금보다 비싸니 팔려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안심시켰다”고 전했다. 경매로 넘어가면 상황이 다르다.

근저당 설정일보다 늦게 전입신고한 세입자가 있는 건물은 경매에 부쳐질 경우 근저당권 상환이 우선시된다. 때문에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기 힘들다. 만약 근저당 액수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되면 보증금을 전부 떼일 수 있다. 장씨 부인은 “경매 절차는 잘 모르지만 대항력이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씨와 장씨 집을 포함해 S빌라의 6세대가 낸 보증금은 총 7억8500만원에 달한다. 또 S빌라에 설정된 근저당 액수는 8억4000만원이다. 이 둘을 합한 금액(16억2500만원)은 건물 감정가인 14억93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흔히 부동산업계에서는 선순위 채권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의 80%를 넘으면 전세계약을 하지 말라고 권한다. 깡통전세로 전락할 위험이 있어서다. 이 기준대로라면 S빌라는 세입자들에게 ‘덫’이었던 셈이다.

ⓒ시사저널 공성윤·박정훈
부산진구 부전동 R오피스텔ⓒ시사저널 공성윤·박정훈

“100억대 전세사기” 부산 오피스텔

절박한 세입자는 지방에도 산재해 있다. 부산 부전동의 R오피스텔은 지난해 7월 102세대가 통째로 경매에 나왔다. 여기서 세입자가 살고 있는 100세대 중 대항력을 갖춘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모두 근저당 설정일 이후에 이사 왔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이들 세대의 전·월세 보증금을 모두 합해 보니 84억여원에 달했다.

이 중 보증금 7000만원 이하 소액임차인 5세대는 대항력이 없어도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95세대는 보증금을 오롯이 날릴 위기에 처해 있다. 세입자 중 대다수는 공인중개사로부터 근저당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사 중에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얼굴을 알린 사람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중순까지 R오피스텔에는 ‘회사보유분 특별 임대!’ ‘중개수수료 ZERO!’ ‘완벽 풀옵션’ 등 세입자를 모집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9월10일 시사저널이 R오피스텔에 찾아가 보니 새로운 플래카드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에는 ‘전국 최대 규모 2030 청년 100억대 전세사기’ ‘전세금 돌려받기 전까지 우리는 죽어도 못 나간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사저널 공성윤·박정훈
충북 음성군 D아파트ⓒ시사저널 공성윤·박정훈

보험 들어도 소용없는 충북 아파트

충북 음성군 D아파트는 지난해 말 3세대가 경매로 나왔다. 집주인은 모두 같다. 시사저널이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집주인이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산 당일 또는 다음 날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되면 은행은 그날 바로 근저당을 설정한다. 그런데 세입자가 전입신고로 대항력을 얻는 날은 그 다음날 0시부터다. 즉 근저당 설정일보다 늦게 대항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세입자의 채권(보증금 반환 권리)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D아파트 3세대에 설정된 전세보증금은 각각 1억원씩이다. 세입자는 모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들었다. 하지만 소용없게 됐다. 보험에 가입해도 대항력을 갖추지 못하면 보증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HUG가 보증금을 미지급한 경우가 8건 있었다.

D아파트에 대한 경매 진행 상황과 현장 취재 등을 통해 살펴본 결과, 3세대 중 한 곳은 세입자가 시세에 가까운 금액으로 낙찰받았다. 또 다른 한 곳은 세입자가 8개월째 집을 비운 것으로 확인됐다. 그사이 입찰 최저가는 근저당 액수에 가깝게 떨어졌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사례 1만3961건을 경찰청에 제공했다. 이에 따라 반환되지 않은 보증금은 1조581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9월1일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을 내놓으며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세입자의 대항력이 발생할 때까지 임대인이 매매나 근저당권 설정을 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임대인의 체납 세금과 선순위 권리 등에 관한 정보를 세입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단 임대인이 정보 제공을 거부해도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임대차계약의 특약사항도 마찬가지다. 결국 세입자가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현실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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