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그런데도 여야는 정쟁만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9 10: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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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통상·경제 질서 지각변동…北 ‘선제 핵타격’ 위협
美·中은 ‘자국우선주의’ 올인, 3500조 부채 시한폭탄
‘공천’에만 목매는 정치…국민 대신 당파정치에 몰두

지각변동.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대내외적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은 법적으로 ‘선제 핵타격’을 명문화하며 한반도의 안보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한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로써 북한은 비핵화 의사가 없으며, 핵무기 실전배치를 넘어 발사 단추도 얼마든지 누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한국 국민을 ‘핵 인질’로 삼겠다는 천명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을 원천 거부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포함한 외교적 프로그램은 당분간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 오히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법제화로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이 됐다”며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다”고 강변했다. ‘핵개발 고도화의 불가역성’을 주장한 북한이 7차 핵실험과 추가 미사일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대결 속에 굳어지는 신(新)냉전 구도가 한반도의 안보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우리 국민을 ‘핵 인질’로 삼겠다는 北 김정은

통상 질서에도 지각변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미국과의 물샐틈없는 공조가 필요한데, 미국은 자국우선주의 기조로 동맹과 호혜의 가치를 흔들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규정된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한국 기업을 배제하며 사정없이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 IRA로 1대당 1000만원 가까운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한국 자동차산업에는 이미 비상이 걸렸다. 

문제는 자동차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이자 핵심 미래 산업인 배터리·바이오·반도체 분야 모두에서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올해 들어 글로벌 공급망의 자국 위주 재편에 ‘올인’하고 있다. 미국의 자국산 우대 입법과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런 흐름은 미국에만 국한되지도 않을 것이다. 3연임을 앞두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도 대외 강경책으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제가 곧 안보인 시대다. 새로운 규범과 질서가 만들어지는 격변의 시대에 변화의 물결에 민첩하게 올라타지 못한다면 ‘전기차의 악몽’을 두 번, 세 번 되풀이할 수도 있다. 

경제 질서에는 새로운 고통의 시간이 찾아왔다. 미국의 고물가 충격파는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다. 멀어진 물가 정점에, 금리 인상도 당분간 불가피해졌다. 일주일 뒤 미국은 기준금리를 다시 0.75%포인트 올릴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그렇게 한국 경제는 시름이 더 깊어지게 됐다. 당장 한미 금리 역전 및 격차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원-달러 환율은 1400원에 근접했고, 주식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이처럼 급격히 떨어진 것은 13년6개월여 만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기준금리 3%대 시대는 당장 우리 기업과 가계를 시험대에 올릴 게 틀림없다. 지금 가계부채는 1859조원, 기업부채는 1609조원에 이른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자 부담만 35조원 늘어난다. 여전한 고물가·고환율 속 25년 만의 6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확실한 상황에서 이자 부담마저 계속 늘면 기업과 가계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민생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데, 정치는 본연의 역할 대신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말로는 여야 모두 민생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이재명 대표 수사’와 ‘김건희 여사 특검’을 주고받으며 ‘대선 연장전’을 치르는 모습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어디 하나 믿을 구석이 없다. 집권여당은 수권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권력암투로 허송세월하고 있고, 대통령실은 임기를 100일 넘게 날려먹고 이제야 진용을 갖추고 있다. 제1야당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여·야·대(대통령실) 모두 ‘협치’를 말하는데, 결실은커녕 협치의 씨앗도 못 뿌리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여야가 탐하는 건 차기 총선을 둘러싼 공천권, 그 권력뿐이다.

국민을 지킬 정치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 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지킬 방안을 갖고 있을까. 북한은 우리 국민을 ‘핵 인질’로 삼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통상 질서는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고,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젠 정말 정파를 떠나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것인지 진짜 대책을 밝혀야 한다. 민생을 지킬 최전방 공격수도, 마지막 수비수도 결국은 정치다. 정치가 자신들의 안위만 챙기는 ‘공급자 정치’를 멈추고, 대신 민생과 국민에 몰두하는 ‘수요자 정치’를 하게 하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할까. 시사저널이 살펴봤다. 

 

사라진 정치, 실종된 협치, 위협받는 민생

정치를 너무 냉소할 필요는 없다. 대선과 같은 굵직한 선거 전후에는 너나 없이 정치의 열풍으로 빠져들어간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승자는 당연히 권력을 쥐고, 패자는 다음 선거에서의 설욕을 다짐한다. 권력의 재편을 두고 진영 논리와 계파 갈등이 표출되는 것도 사실 자연스럽다. 여기까지는 정치가 겪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그럼에도 위기 앞에서는 정치가 내부 투쟁보다는 국민과 민생을 돌봐야 한다. 그게 정치의 본령이다. 총성 없는 글로벌 경제전쟁에 미국 의회는 자국 제조업 지원을 위한 법안 IRA를 2주일 만에 신속 처리했다. 미 의회도 진영 논리가 팽배하지만 국익 앞에서는 하나였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특별법’은 국회에 방치돼 있다. 여야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음에도 반도체 특별법은 아직 9월 정기국회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한 상태다. 

오히려 한국 정치는 이전투구로 날을 지새우느라 연일 헛발질을 반복하고 있다. 여야가 서로 다투고, 여당은 여당끼리, 야당은 야당끼리 싸운다. 무엇보다 대선 이후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서로를 인정하는 대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수사와 특검 등을 고리로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허니문 정치’는 실종됐다. 극단의 지지층에 지배당한 양 진영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정치생명을 끊겠다” “대통령 탄핵” “대통령 배우자 특검” 등의 거친 언사를 주고받고 있다.

그렇게 정치의 공간은 줄고 정쟁만이 남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상황”(김택환 경기대 교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이해관계”(채진원 경희대 교수), “극단의 논리에 지배당한 최악의 정치”(박상철 경기대 교수) 등 통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여야의 이전투구가 심각하더라도 대통령실과 집권여당, 제1야당이 바로 서있다면 정치는 민생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정치를 떠받치는 세 축은 지금 자중지란 상태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날려버린 대통령 임기 100일 

대선 이후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을 지배한 키워드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다. ‘누가 권력의 2인자가 되느냐’를 두고 임기 100일을 허송세월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이른바 문자 파동으로 권력암투의 중심에 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집권여당은 상황 타개를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절차적 정당성 등의 문제로 스스로의 운명을 사법부에 맡긴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그렇게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출범 초의 절반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도 더불어민주당에 추월당했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사태 수습을 위해 진용 정비에 나섰지만, 정작 인사 파동의 핵심인 검찰라인은 다 살려두고 애꿎은 실무진에 화살을 돌려 또다시 빈축을 샀다. 국정 능력도 의심받고 있다. 최근 대통령실은 수해 예방과 대응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통일부는 북한의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가 그날 바로 ‘핵 선제공격’이라는 되치기를 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민주당도 제1야당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8·28 전당대회 이후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이재명의 민주당’은 민생에 전력을 다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 지도부는 최근 연일 ‘이재명 리스크’에 대한 방어 메시지와 그 반대급부로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메시지를 핵심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막기에 당력이 집중된 모습이다. 특히 이 대표는 당 체제를 ‘이재명 친정체제’로 구축하며 당을 자신의 리스크를 막는 방패로 활용한다는 비판에 휩싸여 있다. 지금의 민주당에는 그 어디에서도 불과 수개월 전에 집권여당으로서의, 또 현재 국회 다수당으로서의 국정에 대한 책임감을 엿보기 어렵다. 그저 여당이 실수하는 게 뭔지, 그 공격 포인트만 노리고 있는 모양새다.

 

“여야가 차기 공천과 총선만 계산에 두고 있다”

국민 입장에선 지금 두 가지가 이해가 안 된다. 민생은 뒷전으로 한 채 계파 갈등과 진영 다툼만 일삼으면 국민이 등을 돌릴 것이라는 걸 정치권은 과연 모를까. 그리고 이해관계 조정과 갈등 해결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외면한 채 그 역할을 사법부에 맡기는 건 왜일까. 정치권은 지금 국민의 질타를 정말 모르고 있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어느 집단보다 민심에 예민한 이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민심의 질타와 냉소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게 무엇일까. 대체 수요자인 민심을 외면하면서까지 이들이 지금 챙기려는 것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이 자문을 구한 전문가들은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이전투구에 몰두하는 이유의 핵심에는 ‘공천’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야의 끝장 대치도, 여당의 권력투쟁도, 야당의 방탄정치에도 그 근원에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이 있다는 진단이다. 지금 여의도 정치권에 중요한 것은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며, 여야 모두가 공천권 획득을 위해 적대적 공생관계 구도를 더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치 시계가 예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 차기 공천권을 둘러싼 여야의 내부 투쟁이 이전보다 이르고 거칠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여야가 차기 공천, 총선만 계산에 두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국가나 국민이 아닌 자기 권력만 생각하고 있다. 비전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이재명 대표가 제1야당 수장이 되면서 권력의 재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비주류가 처음으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여야 모두에서 내부 권력투쟁이 격화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여야 모두 비주류가 권력을 획득했다.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서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 장악이 중요하기 때문에 당내 갈등의 격화는 불가피하다. 새롭게 주류로 등장한 이들에게는 협치보다는 당장 급한 게 주류의 완벽한 교체”라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더 고착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당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말폭탄이 아닌 칼을 들이밀면 저쪽도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내부는 결속된다. 채 교수는 “내부 투쟁을 위해 외부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용해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이유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당 대표가 쥐고 흔드는 하향식 공천 제도를 상향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정치체제를 ‘원내 정당화’ 중심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많았다. 정당의 주요 권한이 ‘제왕적 당 대표’에서 국회 내 의원총회로 이동하고, 원내대표가 정당의 실질적 대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권을 잡기 위한 이전투구는 줄어들고, 협치의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승자독식 체제를 변화시킬 다당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대다수가 공감을 표했다. 

결국 현재의 꼬인 상황을 풀 장본인은 대통령이라는 시각도 상당했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진영 간 갈등은 결국 대통령이 나서야 비로소 풀린다. 정치에서의 양보는 일방적이지 않다. 대통령이 양보하면 오히려 일거양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양승함 교수도 “윤 대통령이 정치 신인이라 정치권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야당에서도 좋은 인재를 두루 등용하고, 영수회담을 하는 등 야당을 더 다독거리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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