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알았던 신당역 살해범, 집요한 스토킹에도 구속 안됐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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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협박 두 차례 고소…법원 ‘주거 일정’ 등 이유로 영장 기각
9월15일 오후 한 시민이 20대 여성 역무원 살인사건이 벌어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추모의 꽃과 혐오 범죄 중단을 촉구하는 글이 담긴 보드판을 놓고 있다. ⓒ 연합뉴스
9월15일 오후 한 시민이 20대 여성 역무원 살인사건이 벌어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추모의 꽃과 혐오 범죄 중단을 촉구하는 글이 담긴 보드판을 놓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피의자는 치밀하게 '보복 범행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반복된 스토킹에도 구속되지 않았던 가해자는 직장 동료였던 피해자의 근무 유형과 시간대별 이동 경로까지 알고 있었고 이를 범행에 활용했다. 스토킹 범죄 처벌과 피해자 보호 방안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아무개(31)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씨는 전날 오후 9시께 입사 동기였던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전씨의 범행은 치밀했다. 그는 전날 오후 6호선 구산역에서 일회용 승차권을 이용해 신당역에 도착한 뒤 1시간10분가량 역사 안에 머물며 피해자를 기다렸고, 순찰을 위해 여자화장실에 들어간 피해자를 뒤쫓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오래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에 쓰인 흉기도 미리 준비했고, 범행 당시에는 일회용 위생모까지 착용했다. 전씨도 서울교통공사 직원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근무 형태와 동선 등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흉기에 찔린 피해자는 즉각 화장실에 있는 비상벨을 눌렀고 동시에 역사 직원과 사회복무요원, 시민들이 합세해 전씨를 제압했다. 피해자는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즉각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약 2시간 반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신당역 역무원이 9월15일 살인사건이 발생한 여자화장실 입구 등 역사 내에 설치된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 연합뉴스
신당역 역무원이 9월15일 살인사건이 발생한 여자화장실 입구 등 역사 내에 설치된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 연합뉴스

스토킹·협박 두 차례 고소에도 구속 안됐던 가해자

전씨는 최근까지도 피해자를 스토킹하고 협박하는 등 집요하게 괴롭혔지만, 일정한 주거 등을 이유로 구속을 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전씨가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고 만남을 강요하자 지난해 10월7일 그를 성폭력범죄 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촬영물 등 이용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피해자 고소 후 이튿날 전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피해자를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등록한 뒤 한달 간 안전조치를 실시했다. 다만 피해자가 스마트워치 지급이나 연계 순찰 등 추가 조치를 원하지 않았고, 한달 후인 지난해 11월 이후 기본적인 안전조치도 모두 해제됐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안전조치 기간 중 특이사항이 없었고, 피해자가 연장을 원치 않아 (1개월 후) 종료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경찰로부터 스토킹 혐의 등 수사 개시를 통보받은 후인 지난해 10월13일 전씨를 직위해제했다. 

경찰 수사와 사측의 직위해제에도 전씨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전씨로부터 계속된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던 피해자는 올해 1월27일 전씨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재차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2차 고소 때는 전씨에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은 두 번째 고소 이후 구속영장이 신청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아 온 전씨는 그 사이 반성은 커녕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고 피해자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전씨는 혐의가 인정돼 올해 2월과 7월 각각 재판에 넘겨졌고, 두 사건이 병합된 재판 선고가 이날 서울서부지법에서 예정된 상황이었다. 전씨의 범행으로 선고는 연기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계획범죄를 입증할 단서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보강 수사 후 보복 범죄로 확인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신변보호 대상 여성이나 그 가족을 살해한 김병찬(35), 이석준(25) 사건 후 여러 개선책이 쏟아졌지만 피해자의 불원 의사만 있으면 모든 제도가 무용지물 된다며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피해자 안전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가해자를 제재하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선진국 중에선 재판 전에도 가해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전자 감시를 하는 곳이 있다"며 "피해자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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