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할인’해도 안 팔리는 물건이 있다? [공성윤의 경공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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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마스크 생산설비’ 경매 중 18건이 절감률 80% 넘어…1억원짜리가 900만원 됐다

[편집자주] 무협지를 탐독하신 분들은 ‘경공술(輕功術)’에 익숙하실 겁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땅이나 물 위를 날아다니는 기술이죠. 그 경지에 오르면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를 공부하는 분들도 이처럼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도 경공술이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의 기술’입니다. 무협지는 그 터득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꼼꼼한 현장 취재로 경공술을 발굴해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경매로 나온 동산 중 10번 넘게 유찰을 거듭하다 가격이 90% 이상 떨어진 물건이 있다. 수원지방법원에서 담당하는 이 물건의 최초 감정가는 5억4000만원. 지금 최저 입찰가는 1330만원(98%)에 불과하다. 이 물건의 정체는 ‘마스크 생산설비(6대)’다. 아직도 팔리지 않아 오는 9월26일 또 한 차례 공개매각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 직후 급증했던 마스크 제조업체가 줄줄이 생산을 중단하면서 생산설비가 경매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시사저널이 9월16일 현재 전국에서 경매가 진행 중인 모든 동산 매각건 중 절감률(감정가 대비 최저입찰가) 80% 이상인 48건을 살펴봤다. 이 가운데 18건이 마스크 생산설비였다. 평균 절감율은 91%. 마스크 생산설비의 대당 가격이 약 1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경매시장에서는 겨우 900만원에 팔리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3월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소재의 마스크 생산업체 우일씨앤텍을 방문, 생산 공정 시찰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3월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소재의 마스크 생산업체 우일씨앤텍을 방문, 생산 공정 시찰을 하고 있다. ⓒ 청와대

 

1년 넘게 경매 중이지만 아무도 안 찾아

법원 관계자는 “아무리 많이 유찰돼도 가격이 집행비용(법원과 채권자 등이 경매를 위해 쓴 비용)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경매를 반복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즉 법원과 채권자가 경매에 들어간 돈을 최소한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팔리지도 않는 마스크 생산설비를 계속 내놓고 있는 셈이다. 생산설비 18건 중 절반 이상인 11건은 작년부터 입찰자를 찾고 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매에 부는 찬바람은 마스크 관련 업계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는 2019년 131곳에서 코로나가 터진 2020년 상반기 238곳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올 3월 들어서는 1500여 곳으로 6배 이상 폭증했다. 식약처 인증을 받지 않은 마스크를 만드는 업체까지 포함하면 5000여 곳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온다.

하지만 마스크 품귀현상이 해소되고 중국산 제품마저 들어오면서 설비가 점차 가동을 멈췄다. 지난 5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마스크 생산 실적을 보고한 업체는 1500여 곳 중 30%에 그쳤다. 나머지 70%는 설비만 갖춘 채 쉬고 있는 것이다.

공장마저 통째로 경매 나와…”폐업도 힘든 상황”

마스크 생산설비가 주인을 찾지 못하면서 제조업체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개인 채권자는 손실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생산설비 부피가 크다 보니 그에 따른 보관료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예 보관돼 있는 공장이 통째로 경매에 나오기도 했다.

전북 익산시에 마스크 생산설비가 있는 7000여㎡ 규모의 공장은 지난해 말 임의경매(채권자가 담보권을 실행하기 위한 경매)에 부쳐졌다. 이마저 두 차례 유찰돼 지금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기 파주시의 H마스크 제조공장 역시 임의경매에 넘어간 뒤 9개월째 경매가 진행 중이다.

법원경매 정보사이트 옥션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전국 공장의 낙찰률은 32.5%를 기록했다. 지난해 낙찰률(68.1%)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금리 인상에 따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빚 부담까지 더해져 공장 경매 매물이 연말에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제조합에 마스크를 납품했던 정아무개씨는 “마스크 품귀가 심했을 때 수억원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갖췄는데 경쟁이 심해져 손해가 막심하다”며 “폐업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마스크 생산설비 일부 ⓒ 블로그
마스크 생산설비 일부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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