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억짜리 ‘황금 배추밭’ 김제공항 부지, 20년째 ‘불모의 땅’ 방치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9 16: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 혈세 낭비 현장] 사업 중단으로 방치되거나 ‘배추·고구마밭’으로 전락
“경제성 없다” 이유로 2003년 공항 공사 중단…158ha, 2005년 이후 계속 방치
‘계륵 같은 존재’ 부지 활용 방안 찾지 못해…용도 폐지 속도, 소유권 이전 과제

16일 오후 2시, 전북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 산 159-2번지 일대. 이곳은 한때 국제공항을 꿈꿨던 김제공항 부지(158㏊)였으나 20년째 ‘불모의 땅’으로 방치되고 있다. 현재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종자 시험장(포장)과 국제종자박람회장으로 활용 중인 15ha를 제외하곤 대부분 방치하거나 계절에 따른 배추밭·고구마밭·콩밭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야트막한 야산이 군데군데 보일 뿐 주변이 농지와 태양광시설, 공장시설 등이 둘러싸고 있다.

종자 시험장(포장) 옆 도랑길을 따라 한참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곳곳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아예 아무런 작물도 없이 벌건 흙이 드러난 밭도 있었다. 좌우로 펼쳐진 널리 펼쳐진 밭에는 한창 자라 오른 콩으로 녹색 물결이 교차되기도 했다. 멧돼지 발자국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주민 이항력(76)씨는 “김제공항 공사 중단으로 소음과 재산권 침해 위협에서 벗어나 다행이다”면서도 ”공항 건설 목적으로 농민들의 피땀 어린 땅을 수용해서 고작 한다는 것이 놀리거나 배추 농사라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2시, 전북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 산 159-2번지 일대. 이곳은 한때 국제공항을 꿈꿨던 김제공항 부지(158㏊)였으나 20년째 ‘불모의 땅’으로 방치되고 있다. 정부가 공항을 짓고자 지난 2002년 480억원에 산 이 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2005년 공사가 중단된 이후 줄곧 방치되거나 일부는 농민에게 임대되고 있다. 한 주민이 김제공항 부지를 가르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6일 오후 2시, 전북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 산 159-2번지 일대. 이곳은 한때 국제공항을 꿈꿨던 김제공항 부지(158㏊)였으나 20년째 ‘불모의 땅’으로 방치되고 있다. 정부가 공항을 짓고자 지난 2002년 480억원에 산 이 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2005년 공사가 중단된 이후 줄곧 방치되거나 일부는 농민에게 임대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국토부, 2002년 480억원 주고 매입…임대수익 연 1억5000만원

정부가 공항을 짓고자 지난 2002년 480억원에 산 이 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2005년 공사가 중단된 이후 줄곧 방치되거나 일부는 농민에게 임대되고 있다. 소유자인 서울지방항공청이 농민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임대료 수익은 고작 연간 1억5000만원(2016년 기준)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라면 이자를 빼더라도 원금을 회수하는 데만 300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그래서 전북도민은 이 공항 부지를 ‘황금 배추밭’ ‘배추밭 공항’으로 부른다. 세계로 뻗어 가는 활주로 대신 수백억 원짜리 땅에서 배추가 재배되는 데 따른 아쉬움과 자조가 뒤섞인 표현이다. 이곳을 대표적인 국책사업 실패와 국민 혈세 낭비 현장으로 꼽는 이유 중 하나다. 

김제 공항부지는 국토교통부의 ‘계륵’ 같은 존재다. 480억 원을 들여 매입했지만 마땅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농림축산식품부에 무상 양여하는 것은 쉽게 수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전북도와 김제시는 부지 관리전환(무상양여)을 통해 농림부로 소유권 이전을 국토부에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타 용도로 활용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모양새다. 

김제공항 건설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김제시 백산면과 공덕면 일대에 길이 1800m, 너비 45m의 활주로 1개와 보잉 737급 여객기 3대가 이용할 수 있는 계류장을 갖춘 공항을 200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었다. 전주시~익산시~군산시~정읍시~완주군의 가운데 위치한 김제시가 지리적으로 전북의 항공 중심지 역할을 하기에 최적지라는 판단에서였다.

16일 오후 2시, 전북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 산 159-2번지 일대. 이곳은 한때 국제공항을 꿈꿨던 김제공항 부지(158㏊)였으나 20년째 ‘불모의 땅’으로 방치되고 있다. 정부가 공항을 짓고자 지난 2002년 480억원에 산 이 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2005년 공사가 중단된 이후 줄곧 방치되거나 일부는 농민에게 임대되고 있다. 김제공항 부지 ⓒ시사저널 정성환
16일 오후 2시, 전북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 산 159-2번지 일대. 이곳은 한때 국제공항을 꿈꿨던 김제공항 부지(158㏊)였으나 20년째 ‘불모의 땅’으로 방치되고 있다. 정부가 공항을 짓고자 지난 2002년 480억원에 산 이 땅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2005년 공사가 중단된 이후 줄곧 방치되거나 일부는 농민에게 임대되고 있다. 김제공항 부지 ⓒ시사저널 정성환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공항 건설을 확정하고, 2002년 부지매입과 함께 민간 건설사가 선정됐다. 전북 도내 시민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은 ‘지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추진된 혈세 낭비 공항’이라며 경제성도 없고 환경을 파괴하는 내륙공항 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주장했다. 이에 감사원은 2003년 김제공항의 수요가 과다 예측됐고,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진다며 당시 건설교통부에 공사 중단을 요구했고, 2005년 이후로 공사가 중단됐다. 

2001년 김제공항 건설을 위한 실시설계 때에는 항공수요가 324만명에 달했으나 감사원의 재검토 결과 136만명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항 신설을 위한 항공수요 기준은 300만명이다. 결국 김제공항 건설 사업은 2008년 새만금과 연계한 군산공항 국제선 확장계획에 밀려 전면 백지화됐다. 정부는 김제공항 계획을 취소하는 대신 군산공항의 기존 활주로에서 서쪽으로 1310m를 이격해 길이 2500 m의 활주로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군산공항을 확장, 이른바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제공항 반대투쟁은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지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벌인, 예산 낭비가 확실시되는 일방 통행식 행정을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의 힘으로 막아낸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김제공항은 정확한 수요예측이나 충분한 타당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주민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졸속으로 추진돼 결국 엄청난 예산만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제공항 건설은 단순한 지역 성장개발 논리에 밀어붙이기식의 강압적 수단까지 더해졌으나 지역 주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이나 재분배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 부지는 공항부지로만 쓰도록 용도가 제한돼 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도와 김제시는 그동안 공항부지에 ‘국가종자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줄 것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했으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토지 소유주인 국토부는 활용 방안에 대해 유보적 입장이다. 국토부는 현재 진행 중인 현재 부지 활용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거쳐 결론을 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제공항 위치도 ⓒ국토교통부
김제공항 위치도 ⓒ국토교통부

정부, 종자생명산업 클러스터 조성방안 검토…전북도·김제시 “농식품부로 관리 전환 시급”

이런 가운데 전북 김제 공항부지의 용도 폐지가 관계기관 협의로 속도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농림부가 종자생명산업 혁신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를 김제공항부지에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용도 폐지를 앞두고 있는 김제공항부지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올해 안에 김제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폐지할 계획이다. 전북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김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변경·폐지(안)’을 열람 공고하고, 오는 27일까지 의견을 수렴 중이다.

앞서 지난달 26일 국토부와 서울지방항공청, 전북도, 김제시는 기본 및 실시계획 해지 고시 추진을 위한 기관별 수집자료 검토 및 확인 등을 두고 의견을 나눴다. 농림부는 이 부지를 종자생명을 중점에 둔 농생명산업 혁신클러스터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전북도와 김제시는 윤석열 대통령의 전북 공약인 ‘농식품 웰니스 플랫폼 구축’의 최적지로 김제 공항부지를 꼽고 있다. 국제종자박람회장, 디지털 육종시설, 스마트 원종·종묘단지, 전후방 기업단지 등을 조성해 신품종 개발부터 생산, 홍보, 수출까지 가능한 가치사슬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근의 민간육종연구단지와 연계 효과도 클 것으로 분석된다.  공항부지에서 풀려도 소유권은 국토부에 있다. 

김제시 관계자는 “애초 시민들은 공항건설을 원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공항건설을 놓고 찬반 양측이 갈등을 겪었고 예산은 낭비됐다”면서 “효율적인 국토이용 측면에서 공항부지를 종자산업 클러스터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땅 소유주를 국토부에서 농림부로 이전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그는 밝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