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살해범’ 전주환은 치밀했고, 법은 느슨했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9 17: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씨, 2차 고소에도 피해자 접근 제재 없어
정부·정치권, 뒤늦게 실효성 있는 제도보완 착수 
신당역 역무원 살해 피의자 전주환 ⓒ 서울경찰청 제공
9월19일 신상 공개 결정이 내려진 신당역 역무원 살해 피의자 전주환 ⓒ 서울경찰청 제공

신당역 스토킹 살해범 전주환(31)의 신상이 공개됐다. 20대 직장 동료를 상대로 장기간 스토킹·협박을 일삼아 온 전주환은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아무런 제재 조치가 없던 빈틈을 노려 결국 피해자를 살해했다. 스토킹 범죄자에 대한 느슨한 후속 조치를 이용한 강력 범죄가 계속되면서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진다. 정부와 수사당국은 또 한번의 참사가 벌어지고서야 현행 피해자 보호 체계와 가해자 처벌·관리 시스템 손질에 나섰다. 

 

속속 드러나는 전주환의 계획범죄 정황

경찰은 19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자신이 스토킹하던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전주환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는 "사전에 계획해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범죄의 중대성 및 잔인성이 인정된다"며 "범행을 시인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증거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14일 밤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피해자를 뒤따라가 흉기로 살해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보복살인)를 받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아무개씨가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아무개씨가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전씨의 치밀했던 범행 계획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씨 자택에서 압수한 태블릿 PC와 외장하드, 휴대폰 등을 포렌식 한 결과 전씨가 범행 전 철저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1차 고소 당시 법원이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전씨는 수 백 건이 넘는 문자 등을 보내며 재차 스토킹과 협박을 일삼았다. 2차 고소 이후에도 구속되지 않은 전씨는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로부터 9년형을 선고 받았고, 이에 대한 선고가 있기 전날 피해자를 살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 14일 집에서 흉기를 챙겨 피해자의 이전 거주지인 6호선 구산역까지 이동해 피해자를 기다렸다. 이동 과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1회용 승차권을 구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거주지를 옮겼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자 구산역 일대를 배회하던 중 다른 여성을 미행하기도 했다. 

이후 전씨는 회사 내부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근무지를 알아낸 뒤 신당역으로 찾아갔다. 전씨는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과 불법 촬영물 협박 등 혐의로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위 해제된 상태였지만,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여전히 내부망 접속은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당역에 도착한 전씨는 1시간10여분을 기다린 끝에 순찰을 위해 여자화장실에 들어간 피해자를 뒤따라가 흉기로 살해했다. 

경찰은 전씨가 범행 8시간 전 자신의 집 근처 ATM기에서 1700만원을 인출하려 한 사실도 확인했다. 전씨는 1회 인출한도가 초과돼 돈을 찾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경찰이 확보한 전씨 휴대폰에는 위치정보시스템(GPS) 정보를 조작하는 목적의 앱도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전씨가 범행을 전후해 이 앱을 깔았다면 수사기관으로부터의 행적 추적을 교란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죽어야만 바뀌나" 한 발 늦은 움직임

신당역 살해 사건이 공분을 사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일제히 개선을 약속했다.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끝내 살해당하는 비극이 반복됐음에도 이제서야 손질에 나서며 '한 발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스토킹 행위가 강력 범죄의 신호가 될 수 있다며 가해자 구속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일 불구속으로 수사 및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전자발찌 착용 등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적극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이 9월19일 추모 메시지 및 꽃들로 가득하다. ⓒ 연합뉴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이 9월19일 추모 메시지 및 꽃들로 가득하다. ⓒ 연합뉴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후 경찰이 접수한 스토킹 관련 신고 건수는 총 2만2721건이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 하루 평균 15건이던 경찰 신고 건수는 법 시행 후 평균 60건 이상으로 4배 증가했다. 

특히 신변 보호를 받던 스토킹 피해자가 스마트워치, 112신고, 고소 등을 통해 재신고한 경우는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7772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가해자가 입건은 1558건, 그 중에서 가해자를 구속 수사 한 경우는 211건에 그쳤다. 전체 재신고 건수의 2.7%만 가해자를 구속한 뒤 수사했다는 의미다. 

또 재신고 건수 중 80%는 현장 조치로 종결됐다. 현장 조치는 경찰관이 도착 시 가해자가 이미 떠났거나, 현장에서 피해자 안전을 확인한 후 종결한 것을 뜻한다. 재신고는 피해자가 경찰에 반복적으로 신고할 만큼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지만, 현실에서는 적극적인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신당역 살인 사건 역시 징역 9년을 구형받은 전씨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던 중 발생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도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원이 스토킹 범죄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 활동 반경 제한 등의 조건을 붙이는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가해자에 대한 능동적 감시가 가능하도록 영장 청구 기각 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 등을 함께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처럼 구속 위기에 몰렸다가 풀려난 가해자가 거리낌 없이 피해자에 접근, 협박을 일삼다 살해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의사 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범죄를 뜻한다. 법무부는 해당 규정으로 인해 사건 초기 수사기관이 적극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장애가 되고,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2차 스토킹과 보복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만큼 이를 폐지해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