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방지법’ 발의한 이재명에 힘 실은 국회 예산정책처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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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정책처 “정부, 국유재산 현물출자 시 국회의 ‘사전 동의’ 필요”
이재명 측 “‘꼼수 민영화’ 계속…국민재산의 민영화 방지, 계속 강조할 사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입성 후 ‘1호 법안’으로 ‘민영화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대표가 9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입성 후 ‘1호 법안’으로 ‘민영화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대표가 9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정부의 국유재산 매각 방침을 두고 여야가 “민영화로 특권층 배불리기(더불어민주당)” “거짓선동이자 가짜뉴스(국민의힘)” 등 서로 각자의 프레임으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회 싱크탱크인 예산정책처가 국유재산 현물(現物)출자 시 국회의 사전 동의제도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담긴 보고서를 내 향후 관련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 견해가 어떻게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정건전성 강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는 최근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국유지와 정부 소유 건물 등을 향후 5년간 16조원 이상 매각할 방침을 밝혔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부자 감세로 인한 부족한 세수를 민영화를 통해 메우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민주당은 최근 정부가 국유재산을 처분할 때 국회에 사전 동의나 보고를 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연이어 발의하며 정부 방침에 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적극적이다. 이 대표는 국회 입성 후 ‘1호 법안’으로 정부가 공공기관의 통폐합이나 기능 재조정, 민영화 등에 관한 계획을 수립할 때 국회에 보고 및 동의 절차를 받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영화 방지법’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최근 민주당이 정기국회에서 우선 처리 방침을 밝힌 ‘22대 민생입법 과제’에서 제외돼 다소 힘이 빠진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취재 결과 이 대표는 여전히 강력한 추진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표 측은 시사저널에 “‘꼼수 민영화’가 계속되고 있다. 민영화 방지는 단연 계속 강조하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정민주주의 관점에서 국회에 사전 보고 절차 필요”

예산정책처는 최근 발간한 ‘2021회계연도 결산 총괄분석Ⅰ’ 보고서에서 “재정민주주의 관점에서 정부가 현물출자를 실행하기 전에 국회에 사전 보고하는 절차를 마련하거나, 국회가 사전에 동의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재 국가재정법 등에 따르면, 정부의 국유재산 현물출자는 국회에 사전 보고나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 국회는 이를 사후에 확인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예산정책처에서 정부가 현물출자를 하려는 경우 국회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이유는 크게 ①규모의 상당함 ②절차적 문제 등 두 가지다. 

예산정책처는 우선 정부의 국유재산 현물출자 규모가 많게는 연간 수조원에 이르는 데도 국회의 사전 검토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실제 2010년 이후 정부의 국유재산 현물출자 현황을 보면 2016년과 2019년, 2020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현물출자가 이뤄졌으며, 연간 출자가액은 많게는 3조4969억원(2015년)일 정도로 그 규모가 큰 상황이다. 

아울러 예산정책처는 현물출자가 국회의 예산안 심의를 받는 현금출자와 그 효과가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가 사전에 출자의 필요성이나 출자 규모 및 방식의 적정성 등을 검토할 수 없고, 이를 사후 확인하는 것에 지금의 국회 역할이 한정돼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예산안 심의를 우회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물출자를 활용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재정건전성 강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는 최근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국유지와 정부 소유 건물 등을 향후 5년간 16조원 이상 매각할 방침을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재정건전성 강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는 최근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국유지와 정부 소유 건물 등을 향후 5년간 16조원 이상 매각할 방침을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예산안 심의 우회 방법으로 현물출자 활용할 수도”

예산정책처는 최근 정부의 현물출자 사례를 조목조목 들며, 해당 기관들에 토지나 건물 또는 유가증권을 출자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현물출자 외에 다른 합리적 지원방안이 없는지 등에 대한 검토와 의견 제시의 기회가 없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예산정책처가 든 사례는 최근 코로나19에 따라 경영상 손실을 입은 한국철도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지원하기 위해 건물 등의 현물을 출자한 사례, 2021년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자본금 확충을 통한 금융지원 규모 증대를 위해 유가증권을 출자한 경우 등이다. 

예산정책처는 “현행 국유재산법에 명시된 현물출자 요건이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현물출자 시행에 관한 정부의 재량이 큰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점 등을 종합 고려할 때, 정부가 현물출자를 하려는 경우 국회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거나, 적어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현물출자에 관한 사항을 사전에 보고하도록 제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예산정책처는 국회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정파성을 띄지 않는다. 예산정책처도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분석을 제공하는 재정전문기관”이라고 소개한다. 올해 8월에 취임한 현재 예산정책처장도 입법고시 출신의 비(非)정치인이다. 예산정책처가 어떤 정책적 사안에 대해 여야 어느 한 쪽을 들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국유재산 매각시 국회에 반드시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박은숙 기자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국유재산 매각시 국회에 반드시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은숙 기자

민주당 “국유재산은 국민의 재산, ‘특혜 매각’ 제어해야”

‘이재명의 민주당’은 “정부가 국유재산 민영화에 나서고 있다”며 연일 ‘민영화 방지법’ 필요성에 대한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초부자들에게는 감세 혜택을 주면서 정작 국유재산을 매각하려고 한다”며 “국유재산은 국민의 재산이다. 국민의 재산이 누군가의 사적인 이익의 도구가 되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특혜 매각’ 사례로 석유공사의 사옥 매각 후 재임대를 꼽았다. 그는 “석유공사는 부채 축소를 명목으로 사옥을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만든 코람코자산신탁이란 회사에 팔았는데, 석유공사가 재임대로 5년간 480억원이라는 비싼 임대료를 내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국유재산을 특혜 매각하려는 시도를 반드시 제어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의장은 “국유재산 매각시 국회에 반드시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는 당 회의에서 자신의 발언 기회를 양보하면서까지 ‘민영화 방지’에 대한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9월19일 최고위원회에서 최초로 이 대표가 발언 기회를 다른 최고위원(장경태 최고위원)에게 양보했는데, 이 화두가 바로 민영화 방지”였다고 설명했다. 장 최고위원은 이날 “정부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로 재벌과 부자의 배만 채울 궁리를 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며 윤석열 정부가 철도·전기민영화 등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야당의 움직임에 정부여당은 “뜬금없는 지적이자 근거 없는 상상력”(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거짓 선동”(오세훈 서울시장) “‘가짜뉴스’식 발언”(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반응을 내놓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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