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갔나”…尹대통령, 이번엔 ‘조문’ 없는 ‘조문 외교’ 논란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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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상황 반영해 계획 바꿨다지만…해외 갈 때마다 논란
‘엘리사베스’ 오타도 재점화되며 대통령실 인적 쇄신 물음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월19일(현지 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월19일(현지 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두 번째 해외 일정을 소화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엔 '조문' 없는 '조문 외교' 논란에 휩싸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후 대통령 공식 SNS 계정에 여왕 이름을 잘못 쓰는 아찔한 실수를 한 데 이어 현지를 방문하고도 조문을 하지 못하면서 '외교 참사'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실은 영국 측 '홀대'도, 한국 측 '결례'도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해외 순방 때마다 잡음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실 운영은 물론 국격과 직결되는 외교 전반을 둘러싼 우려가 커진다. 

 

尹대통령 조문 일정, 주먹구구로 대응했나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오전 9시께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공군 1호기를 타고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영국으로 출국했다. 윤 대통령 내외는 10시간 넘는 비행 후 현지 시각으로 18일 오후 3시가 지나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여왕 조문과 참전비 헌화, 찰스 3세 국왕의 리셉션  3개의 공식 일정을 계획하고 있던 윤 대통령은 영국 도착 직후 2개 일정을 취소했다. 급작스레 취소한 일정에는 이번 순방의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이던 여왕 조문도 포함돼 있었다. 

전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조문 및 장례 일정에 맞춰 영국을 방문, 모두 계획대로 소화한 뒤 출국했지만 윤 대통령은 현지까지 가고도 '조문 외교' 성과를 거두지 못한 찜찜한 마무리를 한게 된 셈이다. 

런던 교통상황과 왕실 요청을 반영해 윤 대통령 조문을 '불가피하게 취소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이다. 윤 대통령 내외의 공항 도착 후 찰스 3세 국왕 리셉션까지 불과 2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문과 참전비 헌화까지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통령실 해명에 논란은 더 커졌다. 윤 대통령 내외의 영국행을 두고 대통령실은 물론 정부·여당도 앞다퉈 '조문 외교' 명분을 내세워 큰 의미를 부여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실의 사전 준비가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왕 조문 인파가 몰리면서 런던 교통이 극심한 정체를 빚는다는 것은 출국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와 왕실도 사전에 각국 정상의 전용기 및 전용 차량 이용 자제를 통보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극심한 교통체증을 피해 걸어서 이동, 조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의 조문 취소 결정과 더 대비를 이루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거듭 현장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급박한 사정으로 조문까지 취소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조문 취소 논란이 커지자 '폄훼하지 말라'며 경고성 발언까지 내놨지만, 야당은 출발 시간을 앞당기거나 사전 준비 및 현장 대응을 철저히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교 참사' 공세 수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조문 외교를 하겠다며 영국에 간 윤 대통령이 교통통제를 이유로 조문을 못하고 장례식장만 참석했다”며 “교통통제를 몰랐다면 무능하고, 알았는데 대책을 안 세운 것이라면 더 큰 외교 실패, 외교 참사"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19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한 뒤 조문록을 작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월19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한 뒤 조문록을 작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 트윗에 '엘리사베스' 오타도 재점화

이번 조문 취소 논란은 대통령실 인력 전문성에 대한 우려로 점차 확산하는 모양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후 윤 대통령의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이미 '외교 참사'가 한 차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9일 오전 11시께 윤 대통령 트위터 계정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글이 올라왔다. 윤 대통령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업적을 평가하며 추모의 뜻을 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왕의 이름을 'Elizabeth'가 아닌 'Elisabeth'로 잘못 표기해 국제적 망신을 샀다. 또 선행을 의미하는 'good deed'를 deeds가 아닌 단수로 표현해 고인과 영국에 대한 결례를 범했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대통령실을 향한 이 같은 우려가 확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때도 각종 의전 논란이 빚어진 데 이어 두 번째 해외 순방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반복하고 있어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영국에 여왕을 조문하러 가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조문을 못했다"며 "외교부와 대통령실, 의전팀의 무능은 뭐라고 얘기할 수가 없다"며 참담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는 것마다 펑크가 난다"며 "조문하러 가서 조문 못했으면 왜 거기 계시느냐"고 꼬집었다.

박 전 원장은 전날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른 오후에 도착했던 정상들은 조문할 수 있었고, 전날 오후 2~3시 이후에 도착한 정상들에게는 오늘로 조문록 작성이 안내됐다'고 설명한 것에 대해서도 "민항기도 아니고 전용기 타고 가는데 미리 갔으면 될 것 아니냐"고 쓴소리를 냈다. 그는 윤 대통령이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3개 일정이 있는데 잘못하면 둘 밖에 못할 수도 있다'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서도 "시골 이장이 장에 가는 일정이 아니다"며 "좀 똑똑했으면 좋겠다"고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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